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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May 28. 2020

겨울나비. 4 커피 한 잔

이제 그만

건설회사는 부도 직전이다.  땅을 사서 하는 자체 사업은 자금이 없어서 할 수 없다. 재건축. 재개발사업도 초기 투자가 엄청나서 포기상태이다. 규제가 올가미처럼 묶으니 수주지역도 진행이 어렵다. 손 들고 발 든다.

사업은 줄고 한때 제 직원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손을 놓고 있다. 회사로선 만만한 것이 인건비 절약이다. 내가 맡은 재건축 부서에도 과장 한 명 이름을 짚어서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그 직원에게 ‘사표 내라’ 고   못한 채 며칠이 지났다.

주택사업부장을 사무실 입구에서 잠시 세웠다.

"J 과장 때문이에요?"

그는 내 속을 다 안다. 동병상련이었다. 그의 부서에도 한 명이 걸려 있다. 과장 진급이 되어서 과장 턱을 낸 지 얼마 안 되었다. 지금은 명퇴 대상자로 분류되어 사표를 내야 한다. 전혀 모르는 듯 제 일에 코가 빠져 있다. 아니 빠진 듯이 보였다.

우리 부서의 J 과장도 빗속을 헤치며 단 한 채 철거가 안 되어 골치 썩이는 재건축현장에 나가 있다. 다들 한몫하는 친구들이지만 바람 앞의 촛불들. 너나 나나.

주택사업부 이 부장은,

"한 20%를 확 자르면 불만이 덜해요. 본사 관리직에서 댓 명 정리를 해야 무슨 티가 나겠어요. 내가 왜 당하는지 속 불 터질 거 아닙니까? 계급 정년에 걸린다든지. 나이 몇 살이면 직위 불문 나간다 하는 사규를 몇 년 전부터 적용했으면 또 몰라요. 봉급 많이 나가면 정리하고 남은 자가 2~3개 현장을 맡는 거예요. 능력 없으면 내보내고요. 그리고 신입사원을 뽑아서 순환은 시켜야지요. 고민이에요. 과장 진급을 턱 시켜 놓고는 나가라 해야 하니 그 말을 총무에서 하겠습니까? 이사가 하겠습니까? 내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택 사업부장은 전번 인사부장 출신이다.

J 과장에게 내가 말했다.

"커피 한잔하러 잠깐 나가지."

그의 얼굴은 백납처럼 바뀌었다.

찻집에서 커피를 놓고 , 나는 말하는 쪽이었고 그는 듣는 쪽이었다.

내가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는 동안 그의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다.

"J 과장, 아침 중역회의 때 말이 드디어 나왔어. 사장이 이사에게 심하게 했다는 거야. 당신은 사표를 안 받고 뭐 해. 사장이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받으라는 거야 하면서. 말은 며칠 전에 있었던 모양인데 이사는 고민이 많았다는 거지. 아는 회사에 청을 넣어서 J 과장에게 일자리 마련하려고 애를 썼는데 쉽지가 않았대. 실패했지. 월요일까지는 중역들도 사표를 다 내라고 지시를 받았어. 직원들을 정리하는데 중역들도 정리하겠다는 의지야. 상무들을 태우고 다니던 기사들도 정리하겠고, 차량도 사장은 회사 차가 아닌 자기 개인차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공용차 기름 표도 사장이 직접 관리를 하겠다는 거라.

J 과장, 우리 모두 오늘내일이야. 하루 차이라면 차이지. 다음 주엔 내 차례가 될지도 몰라. 먼저 나가는 사람이 퇴직금 제대로 받고 그나마 대접받고 나가는지도 몰라. 나중에 나가는 사람은 퇴직금이고 뭐고 없을 수도 있어. 알잖아. 지금 회사가 돈 꿔대기도 얼마나 어렵다고. 돈 들어가는 수주는 일체 하지 말라는 거고…. 그렇다면 나도 이 회사에 더 있을 이유가 뭐 있겠나."

그는 한잔의 차를 독약처럼 마셨다.


한 시간 뒤, J 과장의 사표가 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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