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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09. 2020

러브레터

소년이 사랑한 선생님


소년은 선생님을 사랑했고 사랑합니다.

선생님께 '러브레터'를


어느 날 아침에 원경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지요.

" 접니다. 종원이. 제 전화 기다리셨지요. 하하하."

" 그럼. 고마워. 별일 없지. 딸내미 시집보내고 기뻤지. 딸이 참 고와. "

선생님 아드님께서 우리 집 딸 결혼사진을 출력하여 어머니께 드리고 그 어머니이신 나의 선생님을 그 사진을 마치 당신 손녀처럼 품고 계십니다.

살아계신다면 마치 우리 어머님처럼.

다시 어느 날 아침 시간 휴대전화가 올리면서 액정 화면에 뜨는 이름, 원경자.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십니다. 팔순의 연세이시라 가슴이 뜨끔합니다. 혹시나

놀란 가슴이었다가 선생님 당신 목소리라서 마음이 놓입니다.

" 선생님, 수술받으셨던 무릎 좀 어떠세요. 별일은 없으시고요?"

 별일이 없다고 하시며 이런 청을 넣으십니다.

" 내가 이제 팔순이 됐어. 아이들이 잔치해준다네. 거기서 자네가 한마디 말을 해주었으면 해서. 시간이 있겠나."

그날 모임에 갔습니다.

칠순 나이에 선생님은 짝 잃은 기러기가 되셨습니다. 축하연이 시작됩니다. 제자가 말할 시간이 왔습니다.

" 원경자 여사님께서 꽃다운 나이에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뵙고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아이가 인제야 선생님께 사랑 고백을 드립니다.

저는 준비해온 선생님에 대한 러브레터 읽겠습니다.

제 마음의 소년은 선생님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생전의 아버님 역시 꼭 한번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기에 저는 황혼의 나이까지 선생님을 잊지 못하였나 봅니다.

전쟁 후 1953년 폐허 같은   교정에서 선생님은 나비춤을 가르치실 때 나비 같으셨고 산토끼 춤을 가르치실 때 산토끼 같으셨습니다.

선생님을 그리면 쓴 글이 잡지 좋은 생각에 실려서 '원경자' 선생님 함자를 본 조카분이 선생님 소식을 흥부네 제비처럼 물어다 주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잠시 읽기를 멈춥니다.

" 앞쪽 오른쪽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 계신 조카분. 손 번쩍 들어주세요. 바로 저분이 제 사랑을 전화 통화를 하고 을지로 입구에 있는 한 장소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벌써 8년 전이되었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가 선생님께 여쭙지도

"자네가 아무개인가? "

묻지 않으셔도 세월의 강 건너 스승과 제자는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초등학교 6살 배기는 50이 훌쩍 넘었고요, 20대 청춘 선생님은 칠순 할머니가 되어 계십니다.

만나 뵈니 반갑고 기뻤습니다. 교직 생활을 끝내고서 당신을 찾아준 제자가 저 혼자랍니다. 3년 동안만 교편을 잡으셨기에 제자들도 얼마 아니 되어서였겠지요. 그러나 저 말고도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잘한다. 착하다"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으니 제게만 그러지는 않으셨던 분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선생님, 뵙고 싶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는데 참으로 길게 봄바람 가을비에 세월이 지났습니다.

" 아버님께서 생전에 자주 선생님에 대해 말씀을 하셨어요. 한 번 꼭 뵙고 싶다고요. "

" 그래, 아버님께서 내게 잘해주셨어. 내가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칠 때 아버님께서 자네를 기다리시다가 나를 지켜보시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지. 내가 결혼 후 교직 생활을 그만둔다는 소문을 들으시고는 내게 찾아오셔서는 선생님 같은 분이 아이를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고 말리기까지 하셨단다"

그때 제 어머니께서는 바로 제 아래 태어난 갓난아이를 보시느라고 학교 출입을 아버지가 어머니 노릇을 하셨었지요.

아버지께서 코흘리개 저를 데리고서 학교를 오가셨지요.

30대 청년 아버지가 아들의 학교에 아들을 데리고 와서는 나비처럼 춤추는 선생님을 홀린 듯 보던 모습이 제게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의 눈빛 초롱초롱한 소년이 되며, 선생님은 빛나는 청춘이 되십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팔순에 제자 황종원이가 올립니다. 선생님에 대한 러브레터를 다 읽었습니다.

소년은 선생님을 품에 안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눈가를 손수건으로 누르고 계십니다. 떠나간 당신의 청춘과 어린 학생들이 추억의 눈물 속에서 그리우시겠지요.

선생님 팔순 잔치는 노래와 덕담 속에 이어져 갑니다.

다시 그 후 해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건강이 염려되는 연세에 예전만 건강이 못하십니다.

어느 날 아침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첫눈이 왔어. 자네 생각이 났어. 눈이 눈에 들어가서 눈물이 난다는 말이 생각나서..."

선생님께서는 눈을 보면 어린 제자 생각이 나시듯이 늙은 제자 역시 눈이 오면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선생님 눈 오는 날 조심하세요. 언 땅 밟을 때 조심조심하세요.

어린 시절에 소년의 첫사랑이셨으나

이젠 선생님을 품에 안아드리면

"네게서 아기 냄새가 난다. "

하시던 어머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해가 바뀝니다.

어느 날 아침입니다. 

선생님 어떠신지요.

나는 그만그만해. 자네는...

여러분은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다른 분은요.

제 이야기에  좋았나요. 좋아요와  구독 단추를 눌러 우리 함께 세월 여행 가시자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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