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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23. 2020

겨울나비. 22 줄사표

너도 나도 선착순

과장급 이상을 모아놓고 나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로 그들에게도 한다.


"각자가 라면 가게를 하든 김밥 장사를 하든 최소의 자본을 들여서 할 수 있는 것으로 하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주택 개발에 전념한 경력이 있으니 각자 헤어질 때 우리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연락하자고 축의금 돈 만 원 낼 능력밖에 없다고 피하지는 말자고.


 사실 우리가 한 직장에서 10년 이상을 보냈는데 얼마나 긴 세월인가? 

어느 면에서는 학교 동창이나 형제보다도 더 함께 있었던 시간이 많았지 않은가? 

엊그제 우리 회사 이사로 계셨던 안 이사께서 박 과장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부의금으로 3만 원을 내셨다고. 우리 직장인들은 3만 원을 가볍게 부의금으로 낼 수가 있지.

 비디오 대여점 하시는 그분은 비디오를 개당 500원씩 빌려주니 60개를 빌려주어야 벌 수 있는 돈을 부의금으로 낸 것이라고. 

정성을 준 사실에 감사하고 정성을 주려고 우리는 헤어져서도 함께 있듯 하자고. 필시 쉽기야 하려고. 애쓰자고…

아침 7시 반에 있던 부서장 회의는 참 건조하고 추웠다. 

거의 이십여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할 말 없다 없습니다 없어 요하고 넘어간다.


여기서 좌장인 내가 한마디 한다.

"아마도 누구랄 것 없이 오늘이 마지막 부서장 회의 일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표를 내고도 이렇게 며칠씩 나와서 근무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총무부 유 차장은 이렇게 합시다. 나가는 사람들의 건강보험의 후속 조치는 어찌하는가? 보험금 타는 일정과 방법은 정리해서 줍시다. 

이번처럼 2~30명이 한 번에 나갈 때 대답하기도 수월치 않을 거요. (다 해놓았습니다 하고 총무차장이 답한다.) 했다면 이번 기회에 전사적으로 공람합시다. 

남은 직원들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니 상황을 알게 합시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런 말도 했다.

"그래도 퇴직금 준다 할 때 나가는 것을 행복으로 압시다. 봉급도 나오지 않고 퇴직금을 못 주는 회사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누가 나가든 행복하게 퇴장합시다."


다들 침묵 속에 다시 빠져들었다.

표정들이 말한다.

어차피 선착순 선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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