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종원 Jun 21. 2020

겨울나비. 21 갈대는 바람에 휘날려도

떠난 자리를 돌아 보지 않으렵니다

이제 며칠 뒤며는 이 회사에서 10년간 함께 했던 책상과 헤어진다.

초등학교 졸업식 노래

"잘 있으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가슴 울먹였던 감정이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있구나.

부장들을 모아놓고 이사는 말했다.

"도저히 사표를 내가 정리할 수 없소. 따라서 월요일 10시까지 시간을 줄 테니 그때까지 명퇴를 결심한 사람들은 가지고 오도록. 그때까지 사표를 낸 사람은 위로금 조로 3개월치 급여를 더 줄 것이지만 다음에 구조조정이 걸린 사람들은 원칙 그대로 적용을 해서 받아 갈 것이니까 개인적인 판단을 하도록 전 직원에게 알려주어요. 내가 그만두고 직원들이 근무를 계속할 수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만두겠지마는 그것도 아니요. 오늘 중역회의에서 사장이 강하게 말합디다. 자기가 그만두어도 구조조정은 이루어져야 한다 하니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까지 왔소"

부장들은 말을 않고 있다.

침묵이 내려앉고 내가 먼저

"더 할 말 없지요? 그럼 일어납니다."

일어서자 다른 부장들의 눈빛이 놀란다.

내 자리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이사가 전화를 내게 걸었다.

"잠깐 봅시다."

이사의 응접세트에는 홍보담당 김 부장이 이미 앉아 있었다.

이사는 아주 망설이면서 말했다.

"월요일 오전까지라고 시간을 정하고 수수께끼 하듯 했지만 두 분은 부장이니까 솔직하게 말하겠소. 이번에 두 사람이 대상입니다. 황 부장은 함께 죽 근무를 했었고, 김 부장은 한 동네에 오랫동안 정감 있게 살아왔고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여야 하니 참 답답합니다. (나는 J 과장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지금 이사가 말하듯 하는 말을 참 괴롭게 꺼냈었다. 인생에는 역할 분담이 이렇게 바뀐다.) 먼저 나가고 나중 나가고 차이가 있지 무슨 다른 차이가 있겠습니까?"

김 부장은 아주 어색하게 웃고 있고 나는 때맞춰 말한다.

" 마음 두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나가고 지금 나간다고 남보다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며 나중에 퇴직금도 못 받고 나가는 불상사가 생기기 전에 지금 나가는 일이 오히려 행복 찾기가 될지도 모르지요."

부장들이 개발 1부 회의용 탁자를 싸고 앉았다. 개발 1부 장인 김 부장에게 말했다.

" 우리 부서 인원을 받게 되면 1부가 너무 비대해진다고. 부의 인원을 조정해야 해. 나중에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자기 부서 직원들은 자기 손으로 잘라내야 해. 오 이사가 내게 지시하기를 우리 부서에서 2명 명단을 내라는 거요. 죽을 맛이지."

주택 사업부 이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 그만둘 마음 각오를 집사람하고 단단히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내가 근무를 하게 되면 회사가 가는 길까지 갈 참입니다."

"좋았어. 그 마음가짐이 …."

한 사람의 부장이 나가니 남은 부장들의 마음은 다시 터 다지기를 한다. 내 가슴은 텅 빈 항아리 같다.

대학 졸업 후 ROTC 소위로 임관하고, 대위 제대를 하던 다음 달로 취직하고 먼저 근무하던 극동건설에서 과장으로 그만두고 한 직위 높여 여기 신동아건설에 특채 입사하여(재개발로 붐이 일던 그해 1987년 4월부터 오라는 것을 극동의 잔무 처리와 회사를 옮기게 되는 갈등 때문에 12월이 되어서야 과장에서 차장으로 한 직위 높여서 옮기게 되었다) 이제 그만두면 20년 동안을 쉬지 않고 뛰어왔던 세월의 문이 닫힐 참에 왔다.

서울시에서 재개발사업 1번 구로 1구역 재개발을 시작으로 나는 '사부님' 소리를 들으니 업계의 재개발 역사요 전설이었다. 재개발을 뒤따라 시작하는 건설 각사의 실무자에게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친해왔다.

말없이 그만두기보다 전화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한 군데, 두 군데

" 황 부장같이 능력 있으신 분이 어찌 이런 일이…(듣기는 간지럽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군)"

동아건설에 있는 오 부장이 있는 현장사무소에 전화를 거니

"이 전화는 잘못된 전화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본사에 전화를 거니

"오 부장은 다른 곳에 근무합니다. 오늘은 안 나왔습니다."

사실 그도 보직 해임 상태였다.

대우건설에서 재개발을 맡은 노 차장에게 전화를 거니

"보직을 못 받고 붕 떠있습니다."

나는 다른 회사의 직원 명단이 들어 있는 주소록을 덮으며 이제 전화를 걸 일이 두려워졌다.


나는 내 뒤 창가로 의자를 돌려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아버님”

나는 유리에 반사되는 내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겹친다.

"한 채 가지고 계시던 집을 어렸을 때부터 형이라 부르던 이에게 몇 푼 빚에 빼앗겼었지요. 내 집에 세 살던 긴 세월 동안 검버섯 가득해도 가족 위해 너털 웃으며 사시던 아버님의 마흔과 쉰의 나이를 생각합니다. 우환이 끓는 집안 식구 병치레에 한이 되시어 한의원 출입하시고 약도 썰어주시며 때로는 탑골공원 앞의 고약 장수의 신묘한 처방을 스스로 터득하십니다. 뜻 맞는 어른과 한의원 차리시어 약효가 대단하다 하여 살림이 날로 피니 어머니와 저희 삼 남매는 다닐 대학 다 다니며 아버님 살아생전에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고생은 길었고 남은 삶도 옹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생활이 괴롭고 어려워도 아버님 당신은 절대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님, 제 나이 이제 쉰 하나입니다. 단단하고 굳세게 사시던 당신 세월과 견주어 볼 때 저는 너무 연약하고 무력합니다.

아버님.

오늘 새삼 아버님을 부르니 아버님의 피가 제 혈관에 흐르듯 아버님의 정신을 제 얼에 다시 심고자 함입니다.

거의 이십 년 세월 동안 저는 외길 직장 생활을 하며 청춘과 장년을 보냈습니다. 나가야 할 때 저는 이제 나갈 채비를 합니다.

버티고 있자 한들 버틸 자리도 이제는 다른 이 손에 넘어갈 참입니다. 나가라 하는 직장에 한은 없습니다. 제가 나가 다른 사람 하나 일자리가 구해졌기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직장도 이제 제 명을 다해가고 있음을 저는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버님, 이제 저는 새로운 제 길을 가게 됩니다. 힘없고 무기력하지 않게 살고자 합니다. 절망의 끝을 희망의 시작으로 삼으셨던 당신의 의지를 이어받고자 합니다.

아버님,

새삼 머리를 이렇게 조아림은 당신의 고달프셨던 세월을 저는 이제 깨닫는 회한 때문입니다. 아버님이 제게 힘을 주셨듯 저도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힘을 주게 하여 주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결혼 기념일 43년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