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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24. 2020

겨울나비. 13 도마뱀의 아내

사람의 봄은 언젠가 온다

토요일 점심으로 함께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나더니 조퇴했던 양 과장이다.

월요일 아침이다. 양 과장 부인이 전화를 걸어와

"십이지장에서 출혈이 심해서 응급실에 와있습니다."

응급실 복도까지 환자들이 꽉 차 있다.

양 과장은 링거 꽂고 온갖 검사에 초주검 된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평소 건강 1등이라고 자신만만하던 사람이다. 간암 말기라니 웬 말인가.

입원 일자가 계속된다.

우리 부서 내 이름으로 사내 공람을 돌려 위로금을 모았다. 그 돈이 작은 도움은

되려나.

그 후, 양 과장은 입퇴원을 반복한다.

문병 갔다 온 총무부 김 과장은 양 과장이 사람들이 오면 말대답하기 힘드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회사 부서가 합쳐지고, 직원들 줄 사표 냈다.

회사 그만두면 문병 가기가 쉽지 않겠다.

나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가는 길에 작은 꽃집이 있어 둘렀다.

양 과장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 이 건 부인께서 남편 간병에 수고가 정말 고맙다 하는 감사 표시로 남편인 자네가 드리는 꽃다발이네. "

"… 감사합니다. “

나는 부인에게 D 시인 수필집을 건넸다.

두 사람이 진지하게 들어주기 바라며 수필집 속에 있는 에피소드를 찬찬히 말한다.

"동화 같은 이야깁니다. 배경은 일본입니다. 올림픽 때였죠. 경기장 보수를 하려고 지붕을 거두고 있을 때 목수들이 벽에 못이 박혀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보았답니다. 3년 전에 공사가 있었으니 꼬리에 못이 박힌 녀석이 3년 동안 살아남은 현실을 목수들은 도저히 이해를 못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가롭던지 도마뱀을 사흘 동안 지켜보았답니다.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못에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수시로 가져가서 먹이는 것입니다. 도마뱀 둘의 관계는 부모 자식 사이일 수 있고, 부부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일 수도 있겠지요. 꼬리를 자르고 달아날 수 없는 어둡고 긴 세월 3년을 갇혀 지낸 못 박힌 도마뱀과 그 도마뱀을 돌봐주는 또 다른 도마뱀을 우리가 어찌 미물이라고 하겠습니까? 하물며, 사람임에야 내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찾아와도 못에 박힌 나, 그 나인 양 과장을 돌봐줄 또 다른 도마뱀은 바로 부인입니다."

병실은 조용해졌다.

구원받은 도마뱀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도마뱀이었으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 도마뱀 이야기는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검증 안 된 실화가 아니고 동화다. 그러나 동화 속에 교훈 이 있다. 다소 힘이 되었으면...


양 과장의 구레나룻이 파릇한 것으로 보아 아내 손길이 지나갔으리라.

볼이 깎이고 얼굴색은 진노랑 물감을 풀은 듯하다.

아직 생각은 또렷하여 내 사표 소식을 듣고 섭섭하단다.

한동안 자주 오던 문병객들 걸음도 뜸해진 듯, 침상 아래에는 마실 거라고는 내가 방금 들고 온 깡통 식혜만

있다.

내가 병실을 다녀간 지 두 달이 될 무렵에 38살 양 과장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딸 삼 남매와 아내를 두고 눈이나 편하게 감았겠는가?

상 주래야 큰 딸은 초등학교 1학년이고, 줄줄이 어린 자식들이 상주 노릇 하는 대신 과장 부인과 미혼 누이

둘이 문상객을 맞는다.

“부장님. 제가 도마뱀을 못 지켜냈어요.”

부인의 눈시울이 나를 보자마자 바로 젖는다.

그가 떠나고서 한 해가 지났다.

양 과장 부인과 어렵사리 통화하면

“ 안녕… 하세요.”

전화를 금세 눈물로 젖 신다.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집을 찾아간 우리 부부를 맞이하면서

" 안 들고 오셔도 돼요."

부인이 망설이며 사과 상자를 받는다.

부인은 시부모와 산다. 조리사 자격증과 컴퓨터 교육까지 배웠다고 했다.

" 부장님, 얼른 자리 잡으셔서 저 좀 써주세요. "

“내가 음식점을 얼른 차려야겠네요. 하, 하.”

어느 해 가을 부서 단합 모임에서 내가 찍었던 비디오테이프를 부인에게 건넸다.

" 여기, 양 과장 모습과 목소리가 있어요. 건강하고 좋을 때였죠. "

" 도마뱀이 살아왔네요. 고맙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디오 맨이 온 줄 알았어요. 부장님이면 어렵고 엄숙할

줄 알았거든요."

환하고 밝은 목소리다.

겨울의 끝은 봄이다.


어느 날 전화가 연결되었다.

"약국에서 자료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부장님 잘 지내시지요. "

세월이 흐르면 사람의 봄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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