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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25. 2020

겨울나비. 24 최후의 오찬

자, 훗날 보세는 참 기약 없는 약속

사장이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사장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퇴직금도 못 받고 그만두는 살벌한 세상이다. 받을 것 다 받고 나갔으니 행운이다. 그만큼 배려해준 사장에게 고맙다.

사장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후임 사장까지 이미 왔다. 회사는 한시적 쌍두 조직이다. 후임 사장이 업무 파악할 때까지, 한 달 정도?

"나도 그만둡니다. 내일부로 회사 등본에 대표이사에서 빠집니다. 얼굴 한 번 봅시다. 점심이나 합시다."

평소에 반말과 거친 말투가 싹 바뀌어 있어서 '거 참 신기한 일이로군'

사장과 나는 평시에도 함께 점심을 가끔 했었다. 사업부 오이사와 내가. 우리 부서가 사장에게 무게감이 있는 재개발, 재건축 조합, 직장 주택 수주 영업 부서이고 나는 그 부서 책임자다.

다른 중역들보다 사장은 우리를 아꼈다.

점심은 사업부 오 이사와 옆 부서 김 이사와 사장과 함께 사장 차를 타고 이태원 입구 캐피털 호텔 앞에 있는 음식점에 갔다.

사장은 가기 앞서

"아, 황 부장은 보신탕을 못하지."

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거기까지 왔다.

대낮에 술 먹을 일은 하지 않는 사람과 술 한 모금에 꼴깍 가는 오 이사가 섞여 있으니 족발 맛은 참 한심했다. 입맛 맞는 점심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다. 사장이 점심 한 그릇 하자는 초대를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감사한 마음 가지고 왔던 참 이디. 입맛 운운할 것은 아니었다.

다들 고기에 손대다 말고 추가로 시킨 비지 백반이라든지, 춘천 막국수며 선지 해장국을 먹다가 만다. 다들 점심을 부실하게 끝냈다. 밥 먹으면서 한 이야기도 별로 없다.

다시 사장실로 갔다. 비서가 차를 끓여냈다. 사장은 말문이 터지면 자신의 인생사가 줄줄 이어 나온다.

그에게는 할 때마다 새삼스럽고 우리는 벌써 몇 번째 들었지 모른다. 누구나 막론하고 같은 이야기 반복은 자신에게 중요해서다. 남이 꼭 들어주었으면 해서다.

그는 중령 출신이었고 장군 전속 부관 노릇으로 얻은 인연으로 정부 모처에 근무하다가 이 회사에 이사로 들어왔다. 입사 13년 만에 사장 노릇까지 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한때 세력자였던 이들 영욕에도 그는 이목을 마다치 않고 교도소 면회를 다녔다. 전무 시절에 사표를 썼으나 그룹 회장은 그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작년 겨울에는 순식간에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는 고등학교 나와 군 생활 중에 야간 대학을 나왔다. 그는 윗사람을 만나기 전에 상대방이 무엇을 물어올 것인가를 스스로 질의응답을 해왔고, 철저한 준비에 상대방은 그를 대단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고, 아침 먹는 시간과 산책하는 시간과 머리 감는 시간도 10분 이상의 틈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책상 유리판 아래 깔아놓은 ‘행복할 때 긴장하고 불행할 때 대비한다’라는 글같이 늘 긴장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한 분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시집갔고 배고프고 춥게 컸고, 죽으려고 갔던 월남에서 살아왔다. 군대 생활할 때 열심히 모셨던 이가 감사원장이 되자 추천받아 이 회사에 입사했다. 열심히 노력했다.

사장이 되고서는 6시 10분이면 회사에 나왔고, 저녁 7시가 되어 퇴근하였다. 일요일에도 회사를 나와서 회사의 전체 업무 보고를 미리 보고 점검하고 월요일 회의 때는 담당 중역들이 깜짝 놀라게 조목조목 따졌다.

여기 이 회사 사장들은 다들 모가지가 잘리듯 쫓겨나갔으나 그이만은 그만두겠소 해도 회장은 그를 놓지 않고 있다. 사람은 많아도 그만한 사람은 없는 탓이다. 이제 그는 그만둘 참이다. 지치고 피곤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건강도 지금은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아니 5년을 ….

자수성가하여 사장까지 한 사람에게도 그늘이 있는 법이다.

"사장님, 그만두시고 일요일에 산에 가시걸랑 함께 가시자고요"

나는 사장이 진작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던 말을 일깨운다.

이제 백수가 될 사장에게 백수 선배 내가 한마디 한다.

"당장 명함이 필요하실 거예요. 대한민국인 누구누구 하시고 광화문 사서함 하나 번호 따서 넣으시라고요"

나는 맥 빠지고 서글픈 정보를 제공한다.

사장은 진지하게 들어준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내 등 뒤에 사장은

"우리 서로 경실련 동지네.”

나를 웃긴다. 경제 실업자 연맹 동지라는 말이다.

산에서 만날 사장 출신 백수를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사장실을 나왔다. 정상에 올라갔다가 이제 들녘에 나갈 시간을 기다리는 사장은 과연 사장다운 면이 있구나 하고 존경의 마음을 함께 달고 나섰다.

이제 산 정상에 백수를 날리는 백수가 숫자를 하나 더 채우게 되었다.

사장은 얼마 안 되어 명퇴했다.

내가 떠날 때 내 부서를 맡았던 김 부장도 몇 달 뒤 그만두었다. 나와 함께 여의도에 있는 표준 협회에서 실직자 교육을 함께 받았다.

영업부 이 부장은 세상 사람이 다 알아주는 월간지 사장이 친구라서 관리 본부장으로 있다가 몇 달 뒤 그만두었다.

주택 사업본부에 사업 담당 부장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함께 그만둔 홍보담당 김 부장은 노원구에서 한식 식당을 한다. 그는 자기 음식점을 어떤 식으로 홍보하고 있는지.

공사부 부장이 주택 사업부를 맡고 업무부 부장이 1년 만에 상무까지 고속 특진하는 특진 사태가 생기면서 사업본부장을 맡았다.

내 뒤따라 그만둔 한 과장은 동문 건설로 가고 나중에 상무가 되었다. 누구는 어디 가고 또 집에 있고.

명퇴 바람이 불 때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양 과장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어찌 지내십니까?”

"컴퓨터를 배워서 약국에서 처방전 받아 돕는 일로 매일 바빠요."

현장 자재 차장으로 있다가 사업부에서 진급하여 재개발 한 구역을 담당했던 김 부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1년이 지났어도 아직 걷지도 못하고 있으나, 어쩌랴. 세월이 약인 것을. 10여 년 뒤 그도 세상을 떠난다.

한 번 만나자 기약하고 천지가 고요 속에서 인연이 있었던 이들의 전화 한 통화가 뜸할 때, 내가 먼저 한다.

"황 형, 명퇴 메들리 이야기 끝난 거야. 실시간으로 재미있었어."

사업부 오이사 전 근무자는 안이사였다. 다른 회사 회사에서 특채되어 온 나를 동생처럼 대해준 분이었다. 그분이 떠나고 나와 같은 부장이었던 오 부장이 이사가 되어 사업부 이사가 되었었다.

“형님 같던 안 이사님 이제 휠체어 그만 타시고 일어나세요. “

소중했던 인연들. 그들이 내게 전화를 안 걸면 무슨 일이 있어서겠지.

내가 먼저 걸어 안 부하고 때로는 추억 속에 목이 멘들 누가 탓하랴.

우리는 다시 저마다 내 길을 지금 가고 있다.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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