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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n 26. 2020

겨울나비. 25 반전  

어제는 회사 부장, 오늘은 정화조 청소원

월악산 이정표를 따라 조금 들어서니 우리 목표 민박집이다. 너른 마당의 잔디가 대단하다 싶었다. 한때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박 사장은 하자 보수를 하러 왔다. 나는 참 얼떨결에 예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서 함께 미사일 발사대 공사를 했었다. 나는 관리 주임, 그는 토목 대리였다. 나보다 두 살 위다. 귀국 후 한 부서 근무를 한 토목 기술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회사를 차렸다. 공사가 끝나면 귀국한 직원들에게 보직을 주지 않으니 소리 소문 없는 해고가 이루어질 때였다.

전국 오지 산골이나 마을에 화장실 정화시설을 하는 작은 규모 회사다. 주로 관급공사를 하면서 대금 결제는 현금이라서 견딜 만하다고 했다.

더구나 작년 봄에 그는 내게 작은 현장 하나 안 맡아보겠느냐 했다. 이번의 내 처지가 백수 인생이니 그가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에 자석이 끌리듯 그를 찾았다.

아침에 전화를 거니 지방 현장 하자 보수 공사를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월차를 얻었습니다.”

정화조 처리 순서는 이랬다.

정화조는 3단계로 되어 있었다. 첫째 맨홀은 오물을 걸러서 부패시키고 있고, 둘째 맨홀은 한 번 더 거르고, 마지막 맨홀은 거의 원래의 수준의 깨끗한 물이 나온다.

나는 시골 화장실은 재래식 처리로 퐁당퐁당 하는 줄 알았다. 웬걸 이런 것도 다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번 하자 내용은 집 화장실에서 물이 잘 안 내려간다고 군청으로 항의가 들어갔다. 시공자 박 사 장 네 회사로 연락이 왔다. 직원 몇 명 되지 않는 회사라서 사장이 직접 내려온 것이다.

공구는 들고 온 망치와 가스통 하나. 그걸로 뭐 하나?

첫 단계 정화조 배관에서 공기가 꽉 차는 증세라고 박 사장은 진단한다. 공구가 부족하다. 주위를 돌아보니 철근 동가리가 있다. 가스통으로 철근을 달구었다. 10분을 달구고서 배관에다 구멍을 뚫어도 별로 흐름이 고르지가 않다.

첫째 맨홀에는 음식물 오물이 둥둥 떠 있다. 긴 장대를 주위에서 주워서 안을 휘저으니 마대가 걸린다.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 차 트렁크에 가서 일회용 비닐장갑을 꺼내 끼고는 박 사장이 겨우겨우 들어 올린 마대를 내 손으로 꺼낸다.

내심 좀 켕겼다. (이거, 무슨 토막 시체 들어 있는 것 아냐?) 그러나 마대는 마대였지. 내가 겁먹은 대로 엉뚱한 내용물이 든 마대는 아니었다. 박 사장이 이 노릇하고 다니는 게 그에게 만족을 주는지 궁금했다. 배관에 구멍 하나 뚫고 공기 빼는 일에도 열성을 다하는 그가 새삼스러워 보였다.

사업이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 공사를 철저하게 해도 사용자들이 잘못 다루어 문제가 생기면 시공자 책임이라 탓하니 떼법 민원에 누가 당하랴. 오물 하나 치워주러 3시간을 달려오고 돌아가는 걸음에 이 댁 주인 노인은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없다.

월악산을 지나 문경새재를 넘어 예천 비행장이 바라다보이는 철로를 따라 마을에 들어서니 준공이 거의 다 된 오수처리장에 도착했다.

그곳 현장은 극동건설에서 함께 박 사장과 근무하던 한 부서의 과장이었던 양 씨가 소장이다. 회사 근무 당시 박 사장은 대리였고, 양 소장은 박 사장 직속상관인 과장이었다. 작년에 박 사장이 내게 함께 일하자고 권할 때 나는 그이 양 소장을 추천했다.

거의 1년 동안 양 소장은 2개의 현장을 준공했다. 박 사장은 꼼꼼하게 공사 준공 상태를 점검했다.

"양 소장님, 울타리가 높낮이가 안 맞습니다. 다시 치십시오. 울타리에 철사로 횡으로 두 줄을 치게 되었는데 본사에서 보낸 철사는 어디 갔습니까? 치십시오. 전기실 철판에 흙을 걸레로 닦으십시오. 전기팀에게 시키십시오. 지지대의 철 부분에 녹에 '후끼'를 매기십시오…."

내가 들으니 말마다 다 옳다. 전임 상관은 지금 상관에게 꼼짝 못 한다. 박 사장은 정말 제대로 안 된 공사에 대하여 아주 엄격했다.

나는 시골 곳곳을 찾아다니며 분뇨처리를 하는 정화조 공사 현장을 보니를 갈등에 빠진다. 양 소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집에 못 간다고 하니 아내 사랑이 끔찍한 그이기에 사람 사는 일이 무엇인가 혼란스럽다.

"황형. 정신 차려. 문경의 새 현장 보러 가자고…."

박 사장 말에 제정신이 든다.

박 사장이

"황형 어때요. 함께 일해 볼래요."

"생각 좀 해 보고…."

나는 내가 오늘 월차라고 그에게 말했던 사실을 깜빡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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