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종원 Jun 30. 2020

겨울나비. 26 해바라기

태양 같은 남자를 찾아 나섰다

아차, 싶다. 전화를 탓하느니 내 탓이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전 직장 동료 김 부장이다. 

나는 한 수를 놓쳤다.

그는 매달 전화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보다 앞서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그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지난달에는 내가 먼저 걸었기에 이번에는 하루 앞에 전화를 걸었다며 껄껄 웃는다. 유쾌한 패배이다.

직장 생활을 그만 둔지 한참 되니  이제는 남도 나를 잊고 나도 남을 잊고 산다.

전화가 올 때는 누구 아들딸이 결혼이오. 혹은 누구 부모 장인 장모 중 돌아가셨소. 하고 마치 밀린 세금 걷듯이 오는 고지의 전화뿐이다. 다른 날을 정해 만날 일이 없다. 가끔 애경사에 참석해서 안녕하셨오 하면  족하지 따로 만나 술 먹고 노래방에 갈 형편도 아니다. 나는 골프채도 없는 사람이니 내기 골프로 함께 다녔던 동료가 있던 것이 아니며, 나처럼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농담 따먹기를 할 때 회사 건물의 서점에 코 박고 있던 내게 술친구며 고스톱 동료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김 부장은 유별나다.

내가 맡았던 개발 사업부가 재개발부와 재건축부로 나누였다.

현장사무실 차장인 그가 내가 부장으로 있든 개발부에 와서 얼마 뒤에 부장 진급을 하여 부서가 나뉘어 나는 재건축부를 맡았고, 그는 재개발부를 맡았다.

그가 맡은 곳은 장승박이에 있는 상도 구역이었다.

그는 특별한 부장이었다.

그는 업무를 인간관계에서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아주 인심 좋은 큰형처럼 그의 부서원과 어울렸다. 술을 앉은 자리에서 소주 2병을 물 마시듯 하면서 안주는 김치 하나였다.

담배는 줄담배였다. 그의 몸은 술과 담배로 만들어진 듯했다.

자신의 부하직원은 고기를 먹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월급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돈벌이에는 학창 시절부터 눈은 뜬 그에게 회사일이 아닌 증권투자 쪽에 동물적 본능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주식으로 줄초상이 나도 그는 기세 등등이었다. 회사의 봉급은 그에게는 용돈도 안되었다.

나는 소주 한 잔이면 족하다. 나는 담배를 못한다. 나는 증권을 못한다. 나는 부서원들에게 술인심이 좋은 부장이 아니었다.

나는 부서원에게 밥을 사주어도 내 돈으로 못 사준다. 조합 사람들에게 접대했네 하면서 나는 부서원에게 고기 먹고 술 먹이는 약간의 요령은 부릴 줄 아는 월급쟁이 전형의 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회사 사람들에게 초상이 나면 호상 지기 같은 사람이었다.

워낙 회사의 초기부터 있었던 사람이라 다들 호형호제하는 사이기는 했으나 그는 누구네 초상이 났다 하면, 불원천리 찾아간다.

상주와 함께 초상을 치른다. 나는 때때로 그가 회사의 장의사인가 생각을 할 지경이었다.

그는 재개발부의 부서장이 아니라, 사우회의 회장인 듯했어도, 그를 탓하는 상급자들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이 회사에 중간에 간부직으로 온 사람이니, 회사의 이런 분위기에 아주 불가사의했고. 이런 김 부장은 월급쟁이 생활만 한 내게는 도대체 이해 못 할 위인이었다.

막상 내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김 부장이 영안실에 1등으로 도착을 하고, 나중에 발인을 끝내고, 꼴등으로 되돌아갔을 때, 나는 정말로 눈물 나도록 그가 고마웠다. 감동을 했다고 하여야 나의 감정은 진정한 표현이 된다. 

그러니 한 번 초상을 치른 이들은 그를 각별하게 보는 이유를 알겠다.

그는 회사의 중역들이 회사에서 내주는 소나타 2000씨씨를 탈 때. 자신의 돈으로 2400씨씨를 타는 괴짜고, 누구 뭐라 해도 끄떡 않는 강심장이었다.

그에게는 그를 밀어주는 부자 어머니가 계셨고, 나는 내가 용돈을 드려야 하는 어머니가 계셨다.

그와 나와는 세상살이 차원이 달랐다. 

어느 날, 김 부장이 회사를 떠났다.

누가 그를 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떠났다.

그는 떠나서 죽어 살지 않고 회사에서 얻은 인심으로 회사에서 내준 회사 상가의 한 쪽을 그의 능력과 그의 힘으로 거저 얻어서 그의 놀이터를 삼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주식 투자를 컴퓨터와 전화로 하였다.

그의 사무실 냉장고에는 양주가 있고, 오는 사람마다 그와 있으려면 함께 취해야 했다.

나는 그와 취향이 같지 않았고, 조니 워커 블루 맛을 아는 술꾼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찾을 일이 없었고, 그 또한 나 같은 샌님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는 그대로 행복했고, 나는 나대로 행복했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그는 떵떵거리고 잘 살았다.

그것은 그의 복이고, 월급만 가지고 사는 나는 내 복이었다.

김 부장은 그러기를 두 해.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쓰러졌다.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죽는다고 했고, 이제는 식물이 되었다고도 했다. 

내가 그가 입원했던 경희대학 병원 입원실에 갔을 때,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흐릿하고, 그의 입은 굳은 듯했다.

쓰러지기 전 전날까지도 술을 퍼마셨다고 했다.

그러나 술병은 아니라고 했다. 원인은 되었을지라도.

그 뒤, 4년이 지났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왔다. 식물인간도 되지 않았다. 다만 장해가 그를 꼼짝 못 하게 묶고 있다. 

이제 그는 술 한 모금, 담배 한 모금 못한다.

그동안 그의 이빨은 다 빠져 그의 이는 다 틀니이다. 그에게 온 당뇨 합병증으로 그의 다리 한쪽은 썩어가기까지 했다. 그는 머리를 여는 수술도 받았다.

그가 한 일은 남에게 해코지를 한 일이 없고, 남자답게 본때 있게 살아왔는데 이것은 도대체 알 수 없는 형벌이었다. 

그는 이제 휠체어를 타고 겨우 움직인다.

몸무게 80킬로 이상인 그는 이제 40킬로 나간다. 그의 배에는 수박 하나가 매어 달린 듯했는데, 이제 참외 하나도 있지 않은 듯하다. 

그의 얼굴은 이제 칠순 노인처럼 주름 가득하다.

그는 이제 할아버지가 다 되었다. 이제 쉰다섯 나이에.

그는 외로운가. 

외롭다. 그는 자신은 팔다리를 못 쓴 대신 머리와 마음을 쓴다. 성한 사람도 남들을 집에 부리려면 신경을 쓰기 마련이지만 그는 수시로 옛 부하직원과 친구와 옛 동료들을 집에 불러 모아서 밥을 먹인다. 명절이면 상품권을 사서 힘든 친지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그는 무슨 협회에 나가거나 벼슬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은 힘들어도 다른 이의 불행을 마음에 두는 탓이다.

몸 성할 때는 운동이라면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는 배구나 축구의 국가 선수들과도 친구였다.

그런 친구들도 가끔 그의 집에 온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힘으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대신 남에게 전화를 먼저 건다.

한때의 상사가 대장암으로 입원하자, 촌지를 보내고, 함께 근무하다가 이제 장님이 되어버린 다른 동료에게 그는 이런 약속도 한다.

“ 수술비를 내가 다 못 대도, 내가 일부는 도와주겠습니다.”

아무도 찾아오거나 전화 한 통화 없는 장님 동료는 얼마나 울었을까.

그는 큰 부자가 아니다. 집 한 채와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약간의 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도 억만금일 수는 없으리라. 긴 병과 비싼 병원 치료비에 그의 형편도 이제는 어려울 터였다. 

그런 그가 사지 멀쩡한 내게 매달 전화를 건다.

한때는 한동네 살았고, 한때는 그가 나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마누라가 불구라며 일찍 집에 가야 한다며 자주 술자리 피하고 모임 피하던 나를 그는

곱지 않게 보았다. 

이제는 그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그의 아내 도움 없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 그는 이제 나를 이해한다.

그는 자신만을 위해 산다고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주식투자로 돈을 좀 벌었다고 그에게 늘 행운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 힘들게 번 돈을 한 푼 두 푼 아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자신도 알고 있다.

그가 지금 옛 직장 동료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무슨 도움을 받자고 전화를 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는 지금도 남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있다.

자신은 뜻밖에 불구의 몸이 되고서도 남의 불행을 더 가슴 아파하는 그는 태양 같은 남자이다. 자신을 태워서 남에게 희망을 주려는 사나이다.

전화를 걸어 그는 나를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 내가 지금 좋은 치료를 받아서 발가락도 움직이고, 관절도 풀리는데 황 부장님 사모님에게도 좋은 거니 오세요. 책도 보여드리고 정보를 드릴 테니…….”

내 아내는 한 손 한 발을 못 쓰고 절뚝대면서도 두 발로 걷지만 그는 걷지도 못하는 중증이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그의 집으로 향한다.

나는 태양 같은 남자를 만나러 가는 사시사철 해바라기다.

그는 진짜 사나이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나비. 25 반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