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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l 02. 2020

겨울나비. 27 명함

그 한 장 위해  인생을 던진다

퇴사했다고 회사와 인연이 금세 마감되지는 않는다. 괜히 쑥스럽고 망설여진다. 퇴직금 정산 처리하니 오라는 소집이니 안 갈 수가 없다.

내가 아래 직원들을 보내고 그들이 회사를 방문할 때였다. 상대방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다 부질없는 노릇이었구나. 회사에 가니 홍보부의 김 부장이 벌써 와 있다. 이사 방에서 만나자 했던 데로 이사 방에 있었다.

김 부장은 기획회사에 연결되어서 벌써 다니고 있다. 사장이 추천했다고 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실직자를 위한 교육을 받아보라고 헛된 말을 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궁리하는 것이 있어서 못 간다더니 일자리를 잡았구나 끄덕 끄덕.

회사 5층 식당 겸 모임의 방에 퇴직자들이 모여 있다. 작년에 이 방에서 나는 10년 근속을 했다고 근속 상으로 행운의 열쇠를 받은 곳이다. 이제 나는 퇴직자로서 퇴직금 정산서를 받는다.

서로 만나 악수를 한다. 어디를 나가느냐고 묻는다. 벌써 다니는 사람은 그래도 몇몇 있다. 아직은 줄 명함이 아직 인쇄가 안 되었다지만 새로운 일터를 만든 자리가 먼저 있던 자리보다 실팍할 리는 없다.

다들 어딘가 허둥대고 가슴에 담긴 억울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도 왜 당한 지 모르겠다는 직원도 있고 인사명령 당일 알게 된 직원은 아직도 제 처지가 혼란스럽다. 그는 마침 고등학교 후배 과장이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라. 퇴직금이 1억이 넘지 않느냐. 어느 날 회사가 잘못되어 퇴직금도 못 받는 불상사가 생길 때를 생각해 봐라. 얼마나 좋은 기회를 얻은 거냐. 선택받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라."

연락을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날이 내일이 될지 모래가 될지.

회사 안 온실을 떠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생활은 이제는 저마다 현실이 되었다. 굴복하여 패배하기도 현실에 적응하기도 하리라. 다만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 남은 생애를 보내기 어디 만만하랴.

한 장의 명함을 다시 가지려고 우리는 이제 또 떠나야 한다. 나는 후배 잔등을 두드려준다. 자, 또 만나자고….

사장을 만났다. 사장도 이제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주에는 그동안 한 달여 공동 근무한 새 사장 정식 취임식이 있다.

“내가 밥을 다섯 번 사면 황 부장이 한 번은 사야 한다.”

하는 사장 말에 내가 응수를 했다.

“물론이지요. 잡수시는 것이 된장찌개만 맛나면 될 거 아닙니까?'

직원을 정리해고 한 사장 자신도 자신이 명퇴를 결정했다고 말하지만, 그 자신도 새로운 명함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

서로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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