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새벽에 깼다. 2시반이었다. 언제부턴가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중간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들 방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서 잠은 잘 자는지, 방이 덥거나 춥지는 않은지, 창문이 열려있지는 않은지 등등을 살펴본다. 아들이 새벽에 다리에 쥐가나서 고통을 호소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이후로는, 새벽에 작은 소리만 들려도 재빨리 일어나 아들 방으로 향한다. 실제로 다리에 쥐가 나서 고통스러워 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이의 잠꼬대나 밖에서 난 엉뚱한 소리였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아빠가 이렇게 신경 썼다는 걸 나중에라도 알게는 될까’하고 투덜거리다가 자연스럽게 생각은 나의 어린 시절로 향한다. ‘아,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러셨겠구나.’
눈을 뜨고 일어나면 갈아입을 옷이 옷장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화장실에 가면 치약이며, 비누며, 샴푸와 화장지가 언제나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밥상 위에 밥과 반찬이 놓여져왔다. 냉장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우유가 들어 있었다. 학용품이나 참고서를 사기 위해 손을 내밀면 지갑이 열렸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 앞에 놓여진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명확하게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해 온 시간과 노력이 있었음을, 내가 부모가 된 먼 훗날에서야.
평소에는 늘 잊고 지내는 이 사실을 콕 짚어주는 카피가 있다. 2011년에 게재된 미쓰이스미토모은행(三井住友銀行)의 신문광고의 문구다.
日用品なんて 自動的にそこにあった。 実家暮らしのときは。
일용품 같은 건 자동으로 거기에 있었다. 부모님과 살 때는
문구의 느낌상 이 광고의 화자는 부모의 품에서 막 독립한 20대 초중반의 청년인 것 같다. 호기롭게 시작한 나만의 생활. 처음엔 아무런 간섭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하루하루가 달콤했을 것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늦게 집에 들어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늦은 시간에 TV를 켜고 영화를 보며, 과자봉지나 맥주캔을 치우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안에 있다가 배달음식을 시켜도 눈 흘기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인생은 늘 이렇게 만족스러운 시간만 준비해두지 않는다. 화장실 벽에 걸려있던 화장지가 보이지 않는다. 화장지를 사 두어야 화장지가 집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누군가 양말과 속옷을 빨아서 개두지 않으면, 옷장에 입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냉장고에 언제나 있던 사과와 우유도 누군가 준비해두어야 먹을 수있다는 준엄한 사실도 알게 된다. 내가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와 관심 속에서 가능했음을 예상치못한 순간에 통감하게 된다.
최근에 나온 한 광고가 부모의 보이지 않는 사랑법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해 눈길을 끈다. 일본의 가전업체 후지츠가 만드는 에어콘 ‘노크리아’의 TV광고다. 노크리아는 에어콘의 상식을 뒤집는다는 의미에서 aircon의 영문 철자를 역순으로 써서 만든 브랜드명이다.
‘엄마의 고백’이라는 커다란 자막과 함께 엄마 역할의 배우 이시다 유리코가 등장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과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간식을 먹고 있는 사춘기 아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말걸지 말라는거야?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슬쩍 에어컨을 켜 놓았어요.
밖에서 긴장했을 네가 집에서는 편하게 쉬라고
엄마의 혼자말에 이어서 자막이 화면 중앙에 정립된다.
エアーというエールをおくる。
에어라는 응원을 보낸다.
이것이 엄마의 응원이다. 무뚝뚝하게 엄마를 대하는 아들을 보이지 않게 배려하고 챙기는 마음이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아들이 엄마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뭐라고 얘기했어요?“ 하고 묻는다. 엄마가 조용히 웃으면서 혼자말을 이어간다.
이런 응원을 알아채기에 아직 10년은 이르구나
짧은 광고가 끝나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춘기 아들들은 어디가나 다 똑같구나. 보이지 않게 이들을 챙기는 엄마들도 세상 어느 곳에서나 다 똑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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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속의 아이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편안하게 집에 들어와 누리는 식사와 쾌적한 시간 뒤에 엄마의 사랑이 곳곳에 묻어 있었음을. 엄마의 넋두리대로 10년이 걸릴지, 그 이상이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몰라도 엄마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엄마들의 사랑법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