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딸 모건이 잠을 재워주는 아빠에게 한 말이다. 영화 개봉 후 제일 화제가 된 것이 바로 이 대사였다. 3,000을 무한히 큰 숫자로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귀여운 표현이 사랑스러웠다. 많은 패러디도 뒤따랐다. "3,000만큼 사랑해"의 임팩트에 묻혔지만, 바로 그다음 장면 역시 공감 가는 재미를 준다.
2010년에 나온 일본어 어감사전이라는 책의 광고다. 사과한다는 말을 실례[失礼]부터 사죄[謝罪]까지 6단계로 나눠 이미지화했다. 사과한다는 말의 어감을 이렇게 완벽하게 도식화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광고를 보면서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사과들을 떠올렸다. 정치인과 공인, 기업, 운동선수 그리고 연예인의 사과. 요즘엔 유튜브나 SNS 인플루언서들의 사과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매체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사과를 하나의 통과 의례로 삼게 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사과는 이것이 진짜 사과인가 싶은 마음이 든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한다." 상대방이 불편하다고 밝히지 않았다면, 사과를 안 하려고 했나 보다.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는 마음이 강하게 깔려있다. 대개의 경우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사과한다"가 옳다. 겉으로 드러난 자세는 어감사전 광고의 대략 1단계 [失礼]나 2단계 [御免] 정도의 느낌이다. 속마음은 사과의 범주 안에 없어 보인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사과한다." 본인이 잘못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만 느껴진다. 사과하는 문장은 거의 4단계[申し訳ない]인데, 속 마음은 1단계 정도나 되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김종인씨가 "진정한 사과는 이유를 불문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 적 있다.
"무조건 사과한다"는 연예인들의 사과도 봤다. "잘못을 한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사과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렇게 납작 엎드려 사과를 하고 시간을 조금 보내야, 이후 문제없이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문장은 6단계[사죄]인데, 속마음은 1~2단계 정도 느낌이다. 그래도 애써 사과했는데... 내가 좀 삐뚤어진 건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도 한다. 문제는 "그다음 어떻게 하는가"이다. 어떤 단계로 사과하는가 보다, 그 사과에 진심이 담겼는가가 중요하다.
사실, 형식적으로라도 사과를 하는 건 그나마 나은 경우인데, 너무 딱딱한 잣대로 트집 잡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끔씩 소속사가 대신 사과문을 발표하게 하고, 얼굴도 내비치지 않는 연예인들도 있다. 사과문은 사과문인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법률전문가의 조율을 거쳐, 문제의 요소를 교묘하게 피해 가는 경우도 있다. 뻔하게 드러난 잘못을 해놓고도, 사과는 커녕 발뺌하고 거짓말하는 정치인도 있다.
마이크 앞에서 거짓말하거나 전화로 변호사나 매니저에게 시키지 말고, 펜을 들어 종이 위에 진심을 담아 미안한 마음을 적어 보면 어떨까. 잠시만이라도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흔히들, '글쓰기에는 자아성찰의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자필 사과문이 효과를 보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