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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Jan 01. 2023

"훗날, '그때 그랬다면'의 그때가 지금입니다."

토오카이대학(東海大学) 지면광고 

이진아. 

오마이걸의 효정, 캐스커의 융진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가수다.  K팝스타 4에 처음 나왔을 때의 그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리바리한 얼굴로 등장해 재즈 피아노를 어마무시한 실력으로 치면서 귀여운 멜로디의 노래를 헬륨가스 머금은 목소리로 부르는 저 소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회를 거듭할 때마다 그녀의 음악에 빠져 들었다. 결국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전화투표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https://spn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14/11/PS14112400024.jpg
사무실 내 방 벽에 붙어있는 이진아 공연포스터.


프로그램 출연 이후 2017년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첫 공연부터 2022년 4월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공연까지 모든 단독콘서트를 관람했으니 이 정도면 찐팬인증이 가능하리라. 당연히 그녀의 모든 앨범, 심지어 K팝스타 출연 전의 앨범(2013년 발매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소장하고 있다.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 하면 주옥같은 명곡이 너무 많아서 열손가락을 다 써도 모자랄 것이다. 그중에서 가사 때문에 특히 좋아하는 곡이 하나 있다. Random 앨범에 수록된 '오늘을 찾아요'. 일반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이다. 


동영상보기: 이진아 '오늘을 찾아요' 라이브 https://youtu.be/-3vcNxeBKcE



그때가 온다면 한다고 했던 게 많았는데

그때가 지금으로 이 순간으로 찾으러 오면 

나는 또 다른 그때를 떠올리며 바라고 있네요.



이 가사를 듣는데 오래전 메모해 놓은 한 일본의 대학광고가 문득 떠올랐다. 2000년대 초반, 우연히 일본잡지에서 본 광고였는데 카피가 좋아서 메모해 둔 것이었다. 


 훗날, '그때 그랬다면'의 그때가 지금입니다.



요즘엔 맘에 드는 광고가 있으면 광고자체를 저장한다. 그런데 이 광고 카피를 발견했던 당시에는 발견한 일본광고의 카피를 번역해서 광고주명과 함께 엑셀파일에 기록해 두곤 했었다. 당시 파일을 찾아보니 광고주가 '동해대학'으로 되어 있었다. 원 광고를 찾기 위해 일본 토오카이대학(東海大学) 홈페이지를 비롯해서 각종 일본광고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원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번역문을 토대로 거꾸로 복원해보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将来、「あの時そうだったら」のあの時は今です。



관점은 다르지만 이진아의 노래나 이 광고 카피는 결국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이진아는 '그 때가 오면 하겠다'는 말로 지금의 일을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 과거에 얘기했던 '그때'가 바로 지금이니 '지금'을 바꾸라고 한다. 대학 광고에서는 먼 훗날이 되어 지금을 되돌아 보며 '그때 그랬다면' 이란 말로 후회하지 말고 '지금'을 바꾸라고 이야기한다. 시작점은 다른데, 결론은 같다. 지금을 바꿔라.    


이진아의 가사도, 토오카이(東海大学) 대학의 광고카피도 담백하다. 특별한 기교가 없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말로부터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말해준다. 그래서 강력하다.


그때 그랬다면...


그때 공부를 더 했더라면. 

그때 더 놀았더라면.

그때 그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친절히 대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 잡았더라면. 

그때 한번 해봤더라면.

그때 한번 더 해봤더라면.

...


우리는 수많은 "그때 그랬다면"을 안고 살아간다. 심지어 90세의 노인의 이런 후회를 읽은 적도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에 은퇴를 했고, 그 후엔 그저 덤이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면서 큰 병이나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희망 없고 덧없는 삶을 30년이나 보냈습니다. 30년의 시간은 내 인생의 3분의 1입니다. 은퇴할 때 30년을 더 살 줄 알았으면 그리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헤럴드경제 2013년 4월 17일 자 세상 속으로 칼럼 중에서)


어디선가 읽은 이 이야기의 다른 버전에는 이 노인이 100세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90세인 지금 공부를 한다고 했다. 90세가 된 노인이 '60살에 그랬다면'을 후회한다. 100세 때 '90살에 그랬다면'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노래와 격언, 전해지는 사연들뿐 아니라 모든 부모세대, 선배세대가 나중에 '그때 그랬다면'을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우리는 또 '그때 그랬다면'을 단골 레퍼토리로 삼아 후회를 한다. 90세 노인도 후회를 한다. '지금'의 소중함은, '지금'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지금'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더 커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 지금을 돌아보며 '그때 그랬다면' 할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우린 아직 기회가 있다. 90세까지는 아주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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