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규영 Jan 03. 2023

"순서대로네, 인생은"

맥도널드 TV광고 (2022)

"굴 먹으면 한 개에 100원씩 줄게."


그래도 굴을 안  먹었다. 10대 초반이던 1980년대의 내 이야기다. 자료를 찾아보면 1980년대 짜장면 가격이 700~800원이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 회사 근처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 업소에 따라 7,000~8,000원 정도다. 소비자 물가가 대략 10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굴 1개를 먹을 때마다 1천원을 주겠다고 어머니가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몸에 좋은 해산물을 먹이려고 애를 쓰셨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10개만 먹으면 거금 1만원인데!


나를 닮아서, 아들도 해산물 비린내를 싫어한다. 익히지 않은 해산물을 잘 안 먹고, 요리한 것도 비린내가 나면 절대 손대지 않는다. 닮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닮는다. 싫어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음식도 그렇게 닮을 수가 없다. 나를 닮아서 그러니 편식을 한다고 나무랄 수가 없다.


다른 집을 봐도 엄마, 아빠의 식성을 그대로 자녀들이 따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부자가 대를 이어 김치를 싫어한다거나, 모녀가 대를 이어 밥에서 콩을 골라내는 일을 자주 본다. 이런 풍경은  국경을 넘어 일본의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일인가 보다.  



2022년 여름에 온에어된 맥도널드의 TV광고 "피클의 릴레이"는 바로 세대를 따라 닮은 식성을 소재로 잔잔한 여름날의 한 장면을 그려 보여준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마을의 어느 집. 3대가 함께 하는 시간이다.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고 할머니와 젊은 엄마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며 옛이야기를 꺼낸다.


"피클 먹어줄까?" 하며 웃는 할머니. 젊은 엄마가 어린 시절 피클을 싫어해서 자신이 먹어주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농담을 한다. "내가 지금 몇살인 걸로 생각하는거에요?" 젊은 엄마는 요즘 자신의 딸도 피클을 싫어해 자신에게 준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順番やね, 人生は。
순서대로네, 인생은.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아이. 자기 몫의 햄버거를 먹다가 큰 선심을 쓰듯이 피클을 할머니에게 주려고 한다. 모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여름날의 하루가 지나간다.



가까이서 보면 인생은 모두 딴판이다. 백만 명이 있으면 백만 개의 인생이 존재한다. 같은 인생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인생은 모두 비슷하다. 다른 삶을 산다고 아웅다웅하는데, 결국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같은 일에 행복해하고, 같은 일을 실수하고, 같은 일에 눈물을 흘리며 산다.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닮는다. 먹는 모습도, 자는 모습도 닮는다. 어려서는 닮은 것 투성이다.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잠자는 모습이 닮은 부자는 한국이나 일본 광고에서 행복한 가족의 단면으로 셀 수 없이 많이 그려지는 모습이다.


TV광고에 그려진 부모와 아이의 같은 잠버릇들. 


어느덧 아이가 자라면  아이는 부모와 다른 점을 더 많이 발견한다.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가치관도 어긋난다. 갈등하고 부딪힌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라 또 부모가 된다. 부모가 되어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게 되지만, 또 그 다음 세대와 자신이 겪은 일을 똑같이 겪게 된다. 사랑하고, 닮고, 갈등하고 또 이해하는 그 인생은, 차례대로 사람들을 찾아온다. 


"순서대로네, 인생은" 이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저 피클을 싫어하는 입맛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입맛이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모양이 닮아가는 것을 관조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한 것을 아이가 좋아하고 싫어한다. 내가 부모와 갈등했던 레퍼토리로 아이와 내가 갈등한다. 내가 부모와 행복했던 장면들로 아이와 내가 행복해한다.


이렇게 인생이 순서대로 흘러가다 보니까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도 생긴다. 이를테면, 나와 격렬히 갈등하던 그 시절, 나를 보던 아버지의 눈빛 같은 것이다. 그저 화가 심하게 났거나, 실망해서만은 아니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이번 설, 묘소에 찾아가면 살짝 말씀드려야겠다. 그때 아버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내 아들이 묘지로 찾아와 나를 이해하게 됐다고 뒤늦게 고백하지 않도록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고.


동영상보기:

출처: 일본 맥도날드 공식트위터 (https://twitter.com/i/status/1556611266181046273)


매거진의 이전글 "훗날, '그때 그랬다면'의 그때가 지금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