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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Jan 08. 2023

아빠는 너의 지금도, 미래도 아니다

산토리 환경보호 캠페인 영상 (2022)

아이는 미래다.

우리는 그 미래가 늘 걱정이다. 잘못될까 봐, 그릇된 길로 갈까 봐 늘 걱정이다. 그래서 바람직한 미래를 보여주고, 그 바람직한 미래로 이끌어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어른들은 그 '미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걸까?   


아들이 중학생때의 일이다. 우연히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뭘 좋아하는 지, 뭘 하고 싶어하는 지 몰랐다. 자신의 적성이나 원하는 미래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무렵, 나는 아이를 이과 계열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은 온통  4차산업혁명시대를 떠들고 있었다. 뭐가 됐든 일단 이과로 가야 그 흐름을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생각엔 그랬다. 내가 읽고 듣는 바에 의하면 그랬다.   


"앞으로는 이과 쪽이 낫지 않겠니? 앞으로는 공대쪽을 나와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왠지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지? 


"가고 싶은 학과를 어디든 지원해라. 단, 경영, 경제, 법학 중에서. 앞으로는 거기를 나와야..."


대학 지원을 앞두고 던져진 아버지의 최후통첩이었다. 이것이, 내가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다.  아버지는 만화가가 되거나,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나의 꿈이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의 희망이라고 생각하셨다. 취직이 잘 되는 학과를 보내야, 나중에 먹고 사는 걱정이 없을 것이라 굳게 믿으셨다. 아버지는 날 사랑하셨고, 아버지의 세상 안에서 가장 안전한 미래로 나를 이끌어주려 하셨다. 하지만 머지않아 만화가 유망산업이 되고 역사 같은 인문학이 사회의 중요한 니즈가 되는 시대를 예상하지 못하셨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이가 정말 원하는 길을 모르면서 길을 이끌어 줘도 괜찮을까? 내가 보고 믿는 것을 기준으로 미래를 제시해줘도 괜찮을까? 아버지가 나의 세상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나도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되진 않을까? 명령형이 질문형으로 바뀌었을 뿐, 의도는 똑같은 것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까지 이르자, 나는 아이의 미래를 이끌어주려는 생각을 멈췄다.




이 기억을 다시 꺼낸 것은 산토리의 환경 캠페인 광고 때문이다. 시리즈 광고 중 한 편인 이 영상에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귀여운 아이들을 위해 깨끗한 물을 미래에 전달해주자는 전형적인 공익 메시지가 전해진다.




사회공헌 철학을 말하는 평범한 영상이었다. 그 내용 중에, 내가 꽂힌 한마디가 있었다.





この子の素晴らしい過去になろう。
이 아이의 훌륭한 과거가 되자.  



과거? 과거가 되자고? 미래가 아니고? 갸우뚱하던 고개를 바로 세우고 이 광고의 카피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에 닿게 된다. 광고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오늘 내린 비가 천연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도달하는데 20년이 걸린다"고 .


아하,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미래에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될지, 오염될 물을 마시게 될지 오늘 우리가 한 행동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구나. 20년 후의 미래에서 보면 나는 지금 그들의 과거를 만들고 있는 셈인것이군.


광고카피는 물과 환경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역사 같은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지금의 최선으로 아이들의 훌륭한 과거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 아이들이 기억할 훌륭한 과거를 만들어, 그 과거를 딛고 아이들이 나아가게 해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카피가 아이의 진로 이야기를 하던 때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나도 모르는 미래로 이끌어준다는 명목으로 내가 원하는 오늘에 아이를 가두는 것이 아니겠구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최선을 다해주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겠구나.


과거가 되자.

훌륭한 과거가 되자.




시간이 지난 후, 아들은 역사와 정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를 깊이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기쁘다. 아들이 계속 그 꿈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나는 당분간 더 싸워야할지 모른다.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망과. '아빠가 생각할 때 정치는... 아빠가 생각할 때 역사는... 아빠가 생각할 때 그 공부를 하려면...' 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나는 조급한 마음에 아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자주 내는 편이다. 나는 아들의 미래를 내 손으로 보여주고 이끌어주겠다는 욕심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될까.


아빠는 너의 지금도, 미래도 아니다. 너의 멋진 과거가 될 수 있게 응원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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