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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Jan 25. 2023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다이하츠 무브 신문광고 (2017)

방송인 전현무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지이 있다. 바로 '초딩입맛' 이다. 그가 자주 등장하는 관찰 예능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방송에 나오는 전현무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수요미식회'의 MC였던 그는 이 유명한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초딩입맛'을 선보이며, 어른스러운 음식 취식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검색사이트에 '전현무 초딩입맛'을 치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사와 동영상들이 응답한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초딩입맛' 보유자로서 반가움과 민망함이 교차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내가 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스러운' 맛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볶고 굽고 튀긴 음식의 고소하고 달고 짜고 매운맛 말고, 담백하고 슴슴한 재료 본연의 맛을 점점 더 찾게 됐다.


꾸며지지 않은 것에 반응하는 것은 음식뿐이 아니다. 여전히 화려하고 꽉 찬 음악도 좋지만 여백이 많은 음악이 주는 여유로움도 좋아졌다.  짜릿한 쾌감을 주는 블록버스터도 좋지만, 느긋하고 담백한 영화가 주는 즐거움도 찾게 된다.


사람도 그러하다. 어린 시절에는 잘 꾸며진 외양, 화려한 스펙에 압도당하는 경험도 많이 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탄 사람을 동경하기도 했다. 해외의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고, 엄청난 경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 움츠려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광고를 만들어 보니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것을 거둬 내고 만나는 실체는 예상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명함에 박힌 회사이름과 직책에 비해 업무능력이 초라한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언변이 뛰어나 처음에는 대단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알맹이가 없었다. 학위나 다른 경력이 그 사람의 능력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스펙은 장식일 뿐이었다.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화려한 경력과 지위를 보고 선입견을 가졌는데, 진짜 실력과 함께 겸손한 자세로 주변을 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출신학교, 최종학력, 거쳐온 회사 등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놀라운 통찰과 실력과 품성을 보여주는 존경스런 이들도 있었다. 스펙은 정말 장식일 뿐이었다.


인생에서 꾸며지지 않은 것들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은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아직도 나는 부족함이 많지만, 어른이 되면서 찾아오는 변화는 확실히 체감하게 된다.  




2017년에 게재된 자동차 광고는 그런 면에서 공감 포인트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차 중 하나인 다이하츠 무브 광고이다.


광고의 모델은 이시다 유리코(石田 ゆり子). 1969년생인 그녀는 1987년에 데뷔를 하여 순수하고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도시적 여성미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배우이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속도위반결혼>,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등을 통해 낯이 익은 배우다. 수필가, 라디오DJ, 가수로서도 활동했고,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목소리역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동물애호가로 대중적인 이미지도 좋은 일본여성들의 워너비 스타 중 하나이다. 


바닷가에서 수수한 경차 옆에 선 스타. 여백에 쓰인 카피 한줄이 그녀가 나오는 경차광고답다.




飾らない美しさを
愛せる大人になってきた。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왔다.



본문 카피 "어른이 되어왔다'를 '어른이 되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きた"가 '왔다'는 뜻이지만 문맥에 따라 '왔다'는 어감을 살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굳이 '어른이 되어 왔다'라고 적어봤다.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은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니까. 한가지 더 눈길을 끄는 건 '사랑하는'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愛せる)이란 가능형이다. 어른이 된다고 저절로 그런 사람이 되는게 아니란 이 담겨 있다


왠지 이시다 유리코라면 그런 어른이 되어 왔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 정도의 스타라면 프리미엄급 자동차의 모델을 한다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잘 맞는다. 그런데 그녀 옆에 서 있는 것은 한화로 1,60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경차 한대이다. 7~8천만원은 기본이고, 억대의 비용도 놀랍지 않은 고급브랜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수함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핸드백이나 의상을 입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 하차감(!)을 위해 굳이 유럽의 고급브랜드 로고를 차에 박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이시다 유리코 같은 어른이 선택하는 차가 바로 다이하츠 무브라는 메시지이다. 모델의 이미지와 카피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광고다. TV광고로도 제작되어 광고 속에서 이시다 유리코가 흥얼거리는 80년대의 노래 "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꾸미지 않은 것의 가치를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난 진짜 어른이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수많은 형용사의 포장에 연연하지 않고 고유명사로 담백하게 서려면 얼마나 지나야 할까.






동영상 보기: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etiJVAJSc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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