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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Aug 17. 2023

한계를 두지 않으면 더 놀라운 일도 생긴다

JR 청춘18 티켓 (2007)

初めてに、
年齢制限はありません。

처음에,
나이제한은 없습니다.

- JR 청춘18티켓 신문광고 (2007) -




뉴욕의 중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소녀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됐다. 그러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에 실패한 후 운동을 그만둔다. 그녀는 대학 졸업한 후 패션잡지의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7년간 일한 잡지사를 떠나 패션브랜드에서의 짧은 경력을 가졌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독립을 한것이 40세. 세계적인 스타들이 사랑한 디자이너,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명단에 오른 베라 왕(Vera Wang)의 시작이었다.  

 

출처: 노팅험포스트(https://www.nottinghampost.com/news/uk-world-news/fashion-designer-vera-wang-wows-855535)

광고회사에서 20여년 일을 했던 한 중년남자. 대학시절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그는 만화가의 꿈을 접지 않고 40세에 신인만화 공모에서 수상을 한다. 이후 만화잡지의 '땜빵'원고용으로 부정기적으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훗날 일본,한국,대만 등 아시아권은 물론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아베 야로(安倍夜郎)의 만화 <심야식당>이다. 이 만화는 여러 시즌의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영화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출처: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ang28&logNo=221737929409


소설가 박완서 작가 역시 가정주부로 지내다 40대에 등단한 이력 때문에 많은 전직 문학소녀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40대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성공한 이야기는 조금만 찾아봐도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 보니 40대의 뒤늦은 도전이 별로 늦은 나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평생 가정부와 농장일을 하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떤가. 그녀는 76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를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었다. 92세에 출간한 자서전 제목이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이다. 모지스 할머니로 잘 알려진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는 93세에 타임지 표지인물이 되었고,  100세에는 세계적인 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전까지 1,600여편의 작품을 남긴 그녀는 현재까지도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출처: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44804#link_guide_20160413124404_9759


이쯤 되면 왠만한 나이로는 '뒤늦은 나이에 하는 새로운 도전'이란 말을 얹기가 어려울 정도다. 모지스 할머니의 책 제목처럼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어 보인다.


여기 이런 이야기들을 정확히 떠올려 주는 광고 카피가 있다.


初めてに、
年齢制限はありません。

처음에,
나이제한은 없습니다.



2007년에 게재된 JR의 청춘18티켓 광고이다. 청춘18 티켓은 표 한장으로 5일 동안 신칸센과 급행을 제외한 보통등급의 열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게 한 상품이다. 실제로는 모든 연령의 고객이 다 사용할 수 있지만, 청춘18이라는 컨셉과 네이밍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생, 사회인이 되는 젊은이들을 타겟으로 한다. 그래서, 광고 캠페인도 젊은 시절 세상을 마주하고 여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내용이 많다.



“정해진 룰은 없는 편이 좋다”(1995)

“자신의 방안에서 인생따위 생각할 수 있을까” (2002년)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 (2002년)

“어른에게는 좋은 휴가를 가지라는 숙제가 있습니다”(2007년)

“처음 혼자한 여행을,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2014)


JR 청춘18티켓 광고는 동경 카피라이터스 클럽이 그 해에 발표된 우수 광고카피를 모아서 엮은 카피연감에 거의 매년 등재되는 명작 시리즈로 유명한다. 많은 작품들이 한국에도 소개되어, 광고인들이 좋아하는 일본카피 리스트에 올라있다.


이 카피가 실린 광고도 이제 막 성인으로 자신의 삶을 걸어갈 청춘들을 응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든,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면 용기를 갖고 시작해보라고. 처음이라는 도전에 적합하지 않은 나이는 없다고.


한참을 지나와 돌아서 보면, 20대는 무엇을 새로 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정작 그 나이로 지낼 때는 그런 여유를 갖는 건 쉽지 않다. 진학이나 사회진출이 또래보다 1,2년 늦은 시작이 크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나이다. 경쟁을 강요하며 젊은 실패를 넉넉하게 포용해주지 못하는 일본이나 한국같은 사회에서 20대들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30,40대가 넘어가면 더욱 도전이 두려워진다. 자기 스스로나 가족의 경제적 책임을 져야하는 부담을 져야하는 나이다. 그동안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압박도 받는다. 성공하지 못했을 때 가지는 위험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 된다.


그렇기에 , 이 짧은 문구는 광고의 핵심 타겟인 청춘들 외에도 모든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그저 세간의 기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도전을 제한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준다. 새로운 시작과 결실은 그저 상상속의 일만은 아니다. 박완서 작가나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나이의 한계에 가둬두지 않으면 더 놀라운 일도 가능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고령 소설가 등단자는 '로나 페이지'이다. 첫 소설 <위험한 약점>을 출간한 것이 93세이다.*  
 



 *기획회의 590호(2023년 8월),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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