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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Aug 24. 2023

그 힘든 응원법,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오츠카제약 칼로리 메이트 인쇄광고


사전은 ‘잔소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1. 명사.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놓는 것, 또는 그런 말

2. 명사. 필요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여기서 논점은 ‘쓸데없이’ 혹은 ‘필요이상’이다. 잔소리를 하는 입장에선 모두 ‘쓸 데 있는’ 이야기이며 ‘꼭 필요한’ 말들이다. 듣는 입장은 다르다. 필요이상의 참견이라고 느끼기에 갈등이 생긴다. 자녀를 키우거나, 후배를 지도하거나, 부하직원을 통솔하는 입장에 서면 잔소리 없이 지나가기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아쉽고 부족하다.


누군가의 자녀였고, 후배였고, 부하직원이었던 나는 알아서 척척 잘 해 온 것 같은데, 왜 나처럼 안될까. 내 반만 해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투머치토커라서가 아니다. 정말 상대방이 잘 됐으면 하는 충정에서 하는 말이란 걸 알아주면 좋으련만, 하고 가슴을 치는 소리가 전국 각지에서 들리는 듯 하다.


특히, 부모가 되면 잔소리는 숙명과도 같다. 잔소리의 내용을 보면 틀린 말도 없다.


지각 하지 마라.

아침 먹고 가라.

방과 책상은 깨끗이 정리해라.

계획에 맞춰 공부 해라.

학원 시간에 늦지 마라.

게임은 정해 놓은 시간만큼만 해라.

자기 전에 양치질 해라.


보라. 다 좋은 얘기들 뿐이지 않은가. 쓸데있고 필요한 말들 아닌가. 결국 이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높은 조언들이 ‘잔소리’가 되고 마는 것은 내용보다는 전달되는 태도나 타이밍의 문제이다.


아이가 스스로 해 볼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실패하거나, 문제에 맞닥뜨리기 전에 부모가 개입해서 이야기하고, 야단치고, 반복한다. 대개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부모와 알고 있지만 금방 변하지 않는 아이간의 갈등은 집마다 거치는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특히, 아이가 자라 대입이라는 관문에 다가갈수록 불협화음은 더 커진다.


이런 일을 겪고 있는 부모들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정답을 제시하는 광고가 있다.



見守る。それは、
 一番むずかしい応援だ。


지켜본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응원이다.





오츠카제약(大塚製薬)이 만드는 에너지바 칼로리 메이트의 인쇄광고 카피이다. 칼로리 메이트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많이 만들고 집행해왔다. 입시의 압박을 받는 학생들에게 영양과 에너지를 주는 간식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그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많이 전달해왔다.


이 인쇄광고는 가방을 메고 가고 수험생 아들을 먼 발치에서 안쓰럽게 바라보는 한 어머니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미지의 왼쪽 하단에 쓰여진 헤드라인의 첫 단어가 눈에 와 박힌다.


見守る(みまもる:미마모루). 우리말 뜻인 '지켜본다'처럼 본다(見:볼 견)와 지킨다(守: 지킬 수)는 의미의 한자가 어우려져 있다. ‘지켜 서서 본다’는 뜻일까. 그런데, 안타까운 엄마의 눈빛과 어우러져 있으니 상대방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것처럼 다가 온다. 헤드라인에 이어지는 바디카피는 이 마음을 잘 설명해준다.



아이에게는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싶어진다.

수험생의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헤드라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본문 카피를 읽으며 마음속을 들킨 듯 멈칫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그냥 믿고, 지켜보자.

그런 자세야말로 가장 강하게

아이를 밀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훈육이란 이름으로 그간 해왔던 이야기들이 정말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내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잔소리한 적은 없었을까. ‘믿고 지켜본다’는 어려운 길 대신에, 손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마음에 걸리는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당연히, 앞에서 말로 이끌어줘야 할 때는 해야한다. 하지만, 뒤에 서서 긴 호흡으로 믿고 지켜봐야 할 때는, 어렵고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 그것은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부모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 이 카피는 그 믿고 지켜보는 일을 힘들게 배우고 있는 17년차 아빠의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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