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맛집 이름이 수제비와 보리밥이다.
수제비는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날씨가 쌀쌀하거나 비가 오면 유난히 더 먹고 싶어 진다.
손으로 뜬 두꺼운 수제비도, 기계로 뜬 얇은 수제비도 진한 멸치 국물에 끓여 청양고추 살짝 넣으면 온 몸이 금세 따뜻해진다. 국수보다 맑은 국물이 더 잘 어울리고 호로록 먹기 좋다. 수제비는 가난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지만 찾아보니 그 역사는 국수보다 더 이전이고 밀가루가 귀했던 시절 특별한 날 양반들이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거에 감사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봤는데 열에 일곱은 밀가루로 된 음식이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데 맨날 쌀밥만 먹고살아야 했으면 나의 삶은 불행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집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경복궁역 근처 체부동에 위치한 ‘수제비와 보리밥’이라는 곳이다. 정말 수제비와 보리밥만 있다. 곁들일 전 종류도 있지만 이 집은 이 두 가지가 전문이다. 처음에 가게 된 계기도 ‘얼마나 자신 있으면 상호가 수제비와 보리밥인가’ 궁금해서였다. 이름 잘 지은 것 같다.
수제비는 감자 수제비, 미역 수제비, 들깨 수제비 이렇게 있다. 항상 감자 수제비 또는 들깨 수제비만 먹어서 미역 수제비는 어떤 맛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베이스 국물로 만드는 거면 무조건 맛있을 거다. 국물은 투명한 색을 띠고 있지만 굉장히 진하고 깨끗한 멸치맛이다. 여기에 고추 절임을 넣어 먹으면 국물이 더 시원해지고 감칠맛이 더해진다.
수제비만 먹어도 충분히 배부르지만 보리밥도 궁금해진다. 이 집은 그런 손님들의 마음을 아는지 수제비를 주문하면 맛보기 보리밥을 주신다. 떠먹을 수 있게 된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약간 넣고 비벼 먹으면 수제비 나오기 전에 입맛이 확 돈다. 열무김치와 고추장이 맛있으니 보리밥이 맛있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열무김치는 따로 판매도 한다.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밥 단품을 잘 안 시켜 먹는 건 보리밥이 생각나서 이 집에 가는 경우는 없어서다. 항상 궂은 날씨에 찾았다. 비나 눈이 오거나 유난히 추운 날이면 생각난다.
오늘은 너무 더웠다. 밥맛도 안 나는데 열무김치 생각하니까 군침이 돈다. 내일은 비 온다고 했다. 오랜만에 수제비 한 그릇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