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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Oct 23. 2017

아마추어에겐 현대미술이 오히려 더 쉽다(1_9/17)

사진은 할 수 없는 것, 그림이 할 수 있는 것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구현한 미술 기법들이 있는데, 고흐의 소용돌이 기법은 대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Vincent van Gogh "Church of Auvers" 1890

 ‘쇠라의 점묘 기법’의 이론은 차치하고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고 서정적인 효과에 집착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한쪽만 바라보아 대화 없는 로봇처럼 묘사하여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Georges Seurat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그려 진한 서정성과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오치균’의 일부 작품에서는 사진 냄새가 난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그린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생략과 과장을 통해 특유의 손맛이 나게 된다. 그의 일부 작품에서 카메라의 냉정한 시선을 느낀 것은 어색한 일이다.



오치균 "감3 中 4" 2013


한 때 카메라에 미쳐 멋모르고 유월항쟁기념 사진을 찍다가 프락치로 오인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카메라의 시선에 예민하다. 중세시대에는 옵스큐라라는 바늘구멍 사진기가 있었는데 이 기구를 사용하면 세부 스케치가 수월하다. 지나치게 세부 묘사가 충실한 몇몇 화가들은 이 기구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Camera Obscura

 옵스큐라를 사용한 화가는 시커먼 장막 속에 들어가 스케치 과정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 괴팍한 화가로 알려졌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기법상 극사실주의처럼 디테일을 강조하지는 않으나 오브제 간의 비례를 오차 없이 맞춰 내는 것에서 카메라의 객관적 시선이 느껴진다. 사진을 베끼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슬라이드 필름과 환등기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화면을 비추어 스케치하는 방법과 역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한 확대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작업을 지금은 디지털카메라와 프로젝트를 사용하면 간단히 할 수 있다. 


‘오치균’은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지니고 오브제 간의 비례를 오차 없이 맞출 만큼 스케치 실력이 뛰어나든지, 기법 상 감정 과잉이 될 우려로 카메라의 냉정함을 일부러 담든지, 백오십여 년 간 사진과 회화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하여 붓 대신 손끝으로 사진스러운 표현을 해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치균 "Empire State" 1994
오치균 "Elizabeth St." 1994


 사진과 회화는 평면인데 입체감을 주는 방법은 무엇을 덧붙이면 된다. 사진의 경우 풍경사진에 살짝 입체감을 주는 예가 있고 그 외에는 입체물을 입체사진으로 찍는 방법밖에 없다. 

그림은 상상력이 허용하는 한 그리고, 프레임이 버티고 캔버스가 찢어지지 않는 한 무엇이든지 붙일 수 있다.

실험적(지금은 아방가르드도 아니지만)이라는 미명 하에 잡동사니를 덕지덕지 붙여 심미적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모 화백은 백색 바탕에 백색 작은 오브제를 붙여 미묘하고 섬세하고, 우아한 음영을 드리운다. 이 작품을 한참 보다 보면 미묘하고 섬세하여 명상하는 느낌까지 난다.

사대강 사업 같은 거치고 정제되지 않은 정책입안자에게 이 섬세함을 배우라고 선물하고 싶다.


또, 사진이 할 수 없는 것은 시점의 이동이다.

피카소, 브라크의 큐비즘(Cubism, 입체파)은 대상을 큐빅 형태로 분해하는 과정을 거치고 시점을 분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Pablo Picasso "Seated Woman" 1927
George Braque "Houses at l'Estaque" 1908

보어의 원자 모델은 아마 큐비즘의 큐빅 형태로 분해하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 아닐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시점의 분해에서 관찰자에 따라 같은 현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에 착안한 것이 아닐까?

 쇤베르크의 12음 기법도 시점의 분해에서 착안한 것일 것이다. ‘미파, 시도’ 사이가 반음이고 다장조부터 나단조까지 스물넷의 조성이 있는 것은 음계가 독일 민속 음계이기 때문이다. 쇤베르크가 십이음 기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계기는 한 점에 절대시점을 집착하지 않고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을 한 화면에 욱여넣는 피카소에게서 영감을 받아 하나의 절대조성에 의지하지 않는 대신 십이음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한 작품을 써서 조성에 없는 무조주의(십이음 기법)를 완성한 것 같다.


뒤샹은 피카소가 시점을 공간적으로 분리한 것을 보고 시간적으로도 분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를 마치 영화 필름을 겹쳐 놓은 것 같이 그렸다.

Marcel Duchamp "Nude Descending a Staircase" 1912

 왕가위 감독이 주인공의 외로움이나 고뇌나 첫눈에 반한 등의 상황을 표현할 때 조리개를 줄이고 노출시간을 길게 하여 꼼짝 않는 주인공은 선명하게 찍고 주변의 움직이는 사람들은 흐릿하게 하는 기법은 직접적으로는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와 관련 있고 간접적으로는 피카소와 연관된다.




Vincent van Gogh "Church of Auvers"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an_Gogh_-_Die_Kirche_von_Auvers.jpeg

Georges Seurat "A Sunday on La Grande Jatte" : https://en.wikipedia.org/wiki/A_Sunday_Afternoon_on_the_Island_of_La_Grande_Jatte

Camera Obscura : http://www.essentialvermeer.com/camera_obscura/co_two.html#.We331hOCxTY

오치균 "감" : http://www.galleryhyundai.com/?c=exhibition&s=1&mode=past&op=&past=&year=2011&gbn=slider&gp=1&ix=291&start=4

오치균 "Empire State", "Elizabeth St." : http://ohchigyun.com/archives/portfolio_page/new2

Pablo Picasso "Seated woman" : https://www.wikiart.org/en/pablo-picasso/seated-woman-1927

Marcel Duchamp "Nude Descending a Staircase" : https://en.wikipedia.org/wiki/Nude_Descending_a_Staircase,_No.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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