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화랑 방문기, 이발소 그림 = 트로트?
이십여 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관광지인 어부의 부둣가(Fisherman's Wharf) 인근 화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의 유행인 오프아트나 난해한 미국의 첨단 유행작이 가득할 걸로 기대하고 들어섰는데 주인장이 반색하며 나오더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묻는 눈치라서 ‘이 화랑의 수준을 알아보러 왔소’하고 말은 영어가 짧아서 못하고 ‘I am just looking’(그냥 둘러보러 왔소)라고 하니‘Take you’re time’(알아서 둘러보고 가슈)하며 실망스런 표정으로 돌아서는 것이었다. 돈 되는 고객인 줄 알았는데 일반 관광객인 걸 알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림을 둘러보니 추상화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밀레 풍의 사실주의 풍경화만 가득했다.
밀레, 터너, 모네, 고흐의 도록을 보던 안목에는 못 그린 그림이었다. 혹시 감동을 놓친 부분이 있나 싶어서 찬찬히 살펴봤더니 구도도 평범하고 표현력도 미흡해서 한국의 화랑 수준보다 낮아 소위 이발소 그림 수준이었다.
주인장의 품위 넘치는 말투로 볼 때 안목이 그 정도는 아니고 빌어먹을 미국의 실용주의 때문에 팔리는 그림만 진열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돌아보면,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이 어릴 때 집에 있었는데 산봉우리에 살짝 입체감을 주고, 삿갓 쓴 강태공도 있는 산수화가 있었다. 어떻게 그리 잘 그렸는지 어린 마음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아이에게도 감탄을 살 정도로 대중성과 호소력을 갖춘 점이 이발소그림의 재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발소 그림의 대중성은 마치 트로트 가요가 구조가 단순하고 멜로디 전개가 뻔하여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멜로디가 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트로트 가요라니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재즈의 폭스트로트를 줄인 말이 트로트다. 여우의 가벼운 발걸음을 흉내 낸 네 박자의 경쾌한 리듬에다 재즈 특유의 블루스 스케일(Blues scale)을 얹으면 폭스트로트가 된다.
폭스트로트가 춤 반주기악곡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댄스스포츠의 한 종목으로서 보고 들을 수 있고 클래식으로는 우울한 왈츠로 유명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왈츠가 왜 재즈모음곡에 들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 당시 소련(소비에트연방, 지금은 러시아)에서 재즈란 말은 일반적인 미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했다고 한다.
한국 트로트는 일본 특유의 두 박자를 이은 네 박자(뽕짝 뽕짝 뽕자자 뽕짝하는 반주 의성어가 단적인 증거이다.)로 되어 있고 일본의 민속 음계를 따라 멜로디가 구성되므로 명백히 일본 민요가 그 뿌리이다.
폭스트로트와 트로트가요는 같은 네 박자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마치 같은 세 박자인 왈츠와 미뉴엣과 세마치장단에 밀양 아리랑이 전혀 다른 분위기인 것과 같다.
트로트가요의 시조인 코가 마사오(1904~1978)가 어린 시절에 서울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트로트가요의 한국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이있는데 일본이 기원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코가 마사오는 아마 독일 민요와 일본 민요를 조화시키려고 화혼양재(和魂洋才, 일본의 정신에 서양의 물질문명을 이용한다.)라는 구호에 따라 평균율*에 최대한 일본 고유의 장조와 단조를 찾아 일본 리듬을 따라 작곡한 것이 엔카의 시초인 것 같다.
일본 음계는 한국에 단단히 뿌리 내려 ‘진짜사나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군가가 왜풍이고 심지어 ‘임을 위한 행진곡’도 일본 군가풍이다.
한국의 트로트가요도 백여 년의 시간 동안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남인수’가 클래식 창법을 도입하고, ‘현인’은 이탈이아 유명 오페라 가수인 ‘티토스키’파의 발성을 도입하고, 독특한 창법으로 유명하고 락적인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고, ‘주현미’는 경서도 민요창법을 도입하였는데 그래도 엔카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일본 음계를 사용하는 한 트로트가요와 폭스트로트는 전혀 상관이 없어 트로트라는 말을 쓸 수 없고 대신 한 때 전통가요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한국의 전통가요는 ‘노들강변’ 같은 신민요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이 말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성인만 알 수 있는 사랑과 애환을 담았다는 이유로 성인 가요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있으나 19금 야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도 부를수 있고(어릴 때 약간의 가책을 느끼면서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을 부르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한 때 ‘Easy Listening’으로 불렀던 백인 팝을 지금은 ‘Adult Contemporary Music’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직역한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뽕기(뽕필)가 있다(꺾는 목을 쓰는 등 민요창법을 사용하고 대중성과 중독성이 있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트로트가요는 엔카에서 시작했고 발전 도중에 왜정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사미센과 비슷한 음색의 악기가 등장하는 반주와 정통 왜풍 창법으로 부르는 ‘미스고(https://youtu.be/10cgjCww5BQ)' 같은 노래도 나왔다. 하지만, 주류 트로트 가요들은 복고풍에 빠져있지 않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담아 트로트가요를 뽕짝가요로 부르자는 게 내 생각이다.
백기완 선생이 클럽, 서클 등의 외래어를 쓰지 말고 동아리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하여 이 말이 일반화 되었듯이 뽕짝가요라는 말도 묘한 중독성이 있어 널리 사용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각설하고 한국 화랑의 수준이 높은 이유는 실용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경쟁문화 탓도 있으나 경영자의 '좋은 것만 소개하겠다'는 문화적 사명감이 그 원인일 것이다. 한국의 서울과 시골 화랑은 수준차이가 거의 없는데 샌프란시스코의 한 화랑은 지금 생각해보니 안내 팜플릿도 없고 포장된 캔버스 그림이 수두룩해서 기획전을 하는 화랑이 아니고 고객이 그린 그림에 액자를 맞춰주는 표구사와 화랑을 겸한 곳이므로 그림수준이 낮았던 것 같다. 뉴욕에 갔을 때 잘 나가는 화랑을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쉽다.
음의 진동수가 간단한 정수비가 되어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것을 순정율이라 하는데 문제점은
조바꿈을 하면 기본 진동수가 달라져 정수비가 깨어지고 화음이 흐트러진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십이음에 대한 순정율을 구축하고 비슷한 진동수를 평균 내어 조바꿈을 하더라도 대충 화음이
이뤄지게 한것이 평균율이다.
이 작업을 주도한 사람이 바흐여서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이다. 이 작업의 결과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구노의‘아베마리아’로 유명한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는
것이 마치 바흐가 이 작업의 결과를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기타를 하모닉스 주법으로 조율한 것과 지판을 눌러 조율한 것은 미미한 음정 차이가 있고 화음의
어울림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하모닉스 주법은 순정율을 따르고 지판을
누르는 것은 평균율을 따르는 것임을 지금 깨달았다. 아르페지오는 분산화음을 뜻하고 하모닉스
주법은 줄 길이의 절반 또는 삼분의 일 위치 또는 사분의 일 위치에 손끝을대고 튕김과 동시에
손가락을 떼서 은은한 종소리 같은 배음을 얻는 주법이다.
Jean Francois Millet "Italian Scene with a Shrine" 1662-1679 : https://artuk.org/discover/artworks/italian-scene-with-a-shrine-219669
폭스트로트 춤 추는 사람 : http://www.walternelson.com/dr/one-step
젊은 코가 마사오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sao_Koga_Scan1004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