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좋은 사위 된 썰

by 고베리슬로우

결혼하고 처 부모님과 처 부모님 지인분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 우리 부부와 처제 부부가 초대됐다. 적당한 식사와 약주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장인어른이 나에게 말했다.


“결혼한 지 이제 한 달 됐는데, 그동안 와이프한테 서운했거나 불만 있었던 거 있으면 말해보게나. 없다는 소리 하지 말고. 다 괜찮으니까.”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담소를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괜히 앞의 놓인 술잔을 만지작거리거나 다 식은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내 대답이 뭐가 나올지 흥미진진해하는 게 느껴졌다.


“불만이 하나 있긴 합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기대로 가득 차다 못해 저러다 진짜 눈에서 빛이 나오는 거 아니야 할 정도로 반짝반짝거린다.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 괜히 챙겨준다고 일어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잤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알아서 다 하거든요.”


내 대답이 끝나자 장모님 지인이 장모님께 사위 잘 뒀다며 막 손뼉을 짝짝짝 치셨다. 처제가 나에게 “오오. 대답 잘했는데요?” 말했고 동서는 자연스럽게 처제도 아침에 영양제를 스무 개는 챙겨준다며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어라? 출근 준비하는데 걸리적거리니까 방해 좀 하지 말라는 말이었는데?’ 난 전혀 예상치도 못 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의도했다는 듯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결혼 전 난 나만의 시간을 병적으로 중시하는 인간이었다. 결혼하고 나니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사라졌다.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눈을 뜨고 집을 나서기 전, 즉 출근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출근 준비를 상당히 느긋하게 하는 스타일이라 보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눈이 떠지면 누운 채로 핸드폰으로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뉴스 기사를 몇 개 찾아 보다보면 나도 눈치채지 못 한 사이에 재미있는 짤을 보고 있게 된다. 엇 난 분명 신문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생각이 들 즈음 잊고 있던 중요한 일이 갑자기 떠오른 사람처럼 벌떡하고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과 선크림을 바른다. 아내가 자고 있는 안방에서 나와 건넛방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는다. 다려 놓은 셔츠가 없으면 속성으로 다림질을 할 때도 있다. 옷을 다 입으면 양말을 들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양말을 신는다. 그렇게 세팅이 다 되면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서 막 집에 들어온 사람이 옷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일단 좀 쉬자 하며 낼 듯한 한숨을 내 쉬며 등을 소파에 기댄다. 잠시 눈으로 창밖의 하늘과 구름과 지나가는 차들과 출근하는 사람들을 좇는다. 그러다 무슨 다짐이라도 하듯 다시 한숨을 내 쉬면서 일어나 핸드폰과 사원증을 챙겨서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집에서 나온다. 이 과정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면서 최대한 느릿느릿 뭉그적뭉그적 거리면서 한다. 마치 무술인이 정신을 잃어도 오랜 기간의 수련으로 몸이 기억하여 결투를 하듯 아무 생각도 없이 최대한 멍 때리면서 기계적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때문에 회사에 출근하고 나면 문득 '오늘 아침에 어떻게 출근 준비해서 나왔지? 기억이 안 나네;;' 하는 날도 적지 않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물리적으로 독립된 시간을 누리면서 난 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다. 내 몸이 잠을 자면서 힘을 충전한다면 정신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힘을 충전하는 것이다.


아내는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밥은 못해주더라도 홍삼즙 하나는 데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결혼하고 한 달 내내 내가 출근 준비하고 있으면 옆에서 "밥해줄까?", "즙이라도 데워줄까?"라며 말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말했다.


"나 일어나서 바로 뭐 못 먹어. 혹시나 뭐 먹고 싶으면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 아침에 챙겨주려는 마음은 고마운데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다가 너 출근해."


아내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고, 매일 일어나 똑같은 행동과 질문을 반복했다. 장인, 장모 앞에서 말하고 나니 비로소 아내는 나에게 그 말들이 진심이었냐고, 내가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다며, 왜 진심이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그랬다. 뭐라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혀라도 깨물면서 말했어야 믿었을까.


어찌 됐든 간에 그날 이후로 아내는 내가 출근 준비하는 동안 일어나지 않는다. 아내는 자서 좋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 좋고, 장인, 장모는 좋은 사위를 둬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