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생이 문득 연애랑 결혼이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결혼의 본질은 평생 배우자만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다짐과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야.”
동생은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내 답변의 내용이 놀라워서가 아니라 그저 정적이 뻘쭘해서 가볍게 던진 질문에 내가 너무 진지충처럼 대답을 해서 놀랐던 것 같다.
(To. 아는 동생. 이해해 줘. 힘들었나 봐.)
배우자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있다. 바로 일부일처제다.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면 배우자만 바라볼지 아니면 다른 이성도 가끔/종종/자주 볼지, 그래서 또 다른 배우자를 만들지는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일부일처제의 역사는 비교적 길지 않으며, 지금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결혼 제도가 존재한다. 결혼 제도는 사람의 본능은 물론, 사회, 역사, 환경 등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이 집합적으로 고려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한다. 나도 잘 모른다. 급하게 구글에서 찾아봤)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살면서 일부일처제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 같은 걸 알 필요는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하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각자 믿는 바대로 살면 된다. 믿어도 그렇게 안 사는 사람도 있고, 안 믿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그렇게 안 살면서 믿는 사람도 있다!!
회사 선배와 점심시간에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재밌는 질문을 하나 만들어냈다.
당신은 결혼을 했다. 그런데 당신 앞에 이상형이 나타났다. 외모와 성격, 능력 모든 것이 당신이 꿈꾸던 그런 모습을 가진 이성이다. 그런 이성이 당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한다. 당신과 연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당신이 만약 그 이성과 연인이 되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연인 관계가 될 수 있다. 그 이성과의 만남을 위해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제약, 돈이라든가 시간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게끔 그 이성이 다 맞춰 줄 수 있다. 관계를 끝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끝낼 수 있다. 당신이 말만 하면 그 이성은 당신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당신이 그 이성을 만나고, 만났다는 사실을 아는 건 당신과 그 이성 단둘이다. 그 이성은 절대 그 관계에 대해 발설할 일이 없다. 당신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배우자는 물론 이 세상 그 누구도 알 일이 없다.
당신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