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륜이 핫하다.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 때문인데 주위에서 나 빼고 다 보는 느낌이다.
사실 불륜이 요즘 들어 핫한 건 아니었다. 아마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오지 않았을까. 소싯적 소개팅에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문학에 대한 썰을 많이 풀었는데, 그때 빼먹지 않고 쓰던 레퍼토리가 있었다.
"문학에서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살인과 불륜이다. 살인과 불륜이야말로 인간의 동물적 욕망의 상징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지는 확실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내 앞의 소개팅녀 눈이 반짝거리는지만이 중요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금지된 사랑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최고의 관심사 중 하나다. 왕족과 노비, 재벌과 인턴의 사랑같이 신분을 초월하고 세속적 금기를 뛰어넘는 금지된 사랑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가장 접하기 쉽고 심지어 참여(?) 가능한 금지된 사랑은 역시 불륜이다.
불륜. 결혼한 배우자 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여기서 ‘만난다’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불륜의 기준이 뭘까. 어디부터 바람일까. 마음을 주고 안 주고가 바람의 기준일까. 신체적 접촉은 없는데 마음을 주면 바람일까. 반대로 마음은 없는 신체적 접촉을 가지면 바람일까. 배우자에게 회식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유난히 친한 이성 동료(=오피스 와이프)와 술 한잔하면 이건 바람일까. 외모적으로 이상형인 바텐더를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생일에 남편한테는 절대 사주지 않을 값비싼 선물을 준다면?
세상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서 바람의 기준도 그만큼 다양하다. 바람에 있어 맹목적으로 엄격한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일반인은 헤아릴 수 없는 하해와 같은 관대함(?)을 지닌 사람들도 많다. 둘의 차이점은 많고 적음도, 옳고 그름도 아니라 전자는 본인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후자는 대체로 숨긴다는 것뿐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람의 기준이 사람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하는 바람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자신의 배우자가 생각하는 바람의 기준을 자신의 처신을 판단할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쉽게 말하면 배우자가 바람이라고 하면 바람이다. 굳이 배우자가 싫다는 데 '아니야 내 생각에는 이 정도까지는 불륜으로 볼 수 없어' 우기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따라서 바람에 대해 관대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흔히 불륜은 남자들이 많이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설레고 싶은 욕망은 남녀 구분이 없다. 이제껏 남자들이 주로 사회생활을 하고 경제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와 유혹에 노출됐을 뿐, 굳건한 신념이 없으면 대체로 인간이란 '노출'에 약하다.
유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넘어갈 수밖에 없다. 넘어가는 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약하기 때문이다. 결혼하면서 평생 배우자만을 보며 살리라 맹세했던 마음을 지키지 못한 나약함. 하지만 나약함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픔을 주는 순간 나약함은 결과적으로 악함이 된다.(애초에 ‘난 결혼해도 바람피워야지~’ 했던 사람이라면 속는 사람만 불쌍하다고 할 수밖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애인은 별개라는 생각을 조용히 숨기면서 잘 섞여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나약하다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유혹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술만 조심하면 된다. 술, 여자, 도박 중 두 개 이상을 좋아하는 남자가 집안을 말아먹는다고 했던가. 비단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니라. 술과 이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이다.
술병도 본인이 술을 잘 먹는다고 믿는 사람이 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술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술을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도 똑같다. '나는 절대 바람 안 피워!' 또는 '내 배우자는 절대 바람 안 피워!' 생각하기보다 나도 배우자도 ‘특정 상황’에서는 충분히 마음이 흔들릴 수 있으니 애초에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자 노력하는 게 최선이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한 웹툰 작가가 한 연예인 부부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 질문 중 하나가 ‘결혼 생활하다 보면 바람피우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나요?’였다.
그 연예인 부부는 평소에 부부끼리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직업적 특성상 서로의 배우자보다 어리고 (외모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서로의 배우자가, 또 자신들이 바람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실제로 새로운 사람에 대한 설렘을 느낄 수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설렘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 마지막 순간에 하는 질문이 바로 “지금의 설렘이 이제까지 우리가 쌓아온 것들과 맞바꿀 정도로 큰 것일까?”라고 한다.
우리 부부도 종종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말한다.
“네가 술을 먹으러 가거나, 글쓰기 모임을 하러 가면 새로운 여자를 만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가 있어. 근데 결국 넌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어. 왜냐면 너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결코 쉽게 스스로가 망가지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아.”
“맞아. 난 쫄보니까. 그리고 나는 너무 게을러. 밖에 나가는 걸 너무 싫어해. 바람도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피는 거야.”
쫄보도 맞고 게으른 것도 맞지만 사실 바람을 피우면서 겪을 죄책감과 마음 졸일 상황들은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프다. 술에 취하면 이런 골칫거리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술을 조심해야 한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들이 있다.
‘우리 와이프는 절대 바람피울 인물이 아니야.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남편은 몰라도 애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내가 아직 결혼 안 했으면 와이프보다 훨씬 괜찮은 여자 만날 수 있을 텐데’
자신의 아내도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이는 오랜 세월 이어져온 불평등한 경제권, 여성의 지조에 대한 유교주의적 환상, 교과서적으로 포장된 모성애 등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여성이 돈을 번다는 건 이제까지 남자들이 해오던 것들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설레기 싫어서 로맨스 드라마를 끊은 아내도 결혼할 때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얼굴 보는 걸 까먹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농담하는 애 엄마 직장 동료도 여전히 로망을 꿈꾼다. 우리 엄마 말마따나 앞으로 여자가 경제권이 있기 때문에 남자들이 더 '잘해야' 한다. 내가 매일 보는 아내도 밖에 나가면 누군가에게는 뉴페이스(New Face)다.
우리 부부의 불륜 관련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비슷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한다.
"네가 레알 트루 러브(true love)를 만난다고 하면 그때는 미련 없이 보내줄게. 트루 러브는 아닌데 막 상대가 정우성, 원빈급이야. 그 정도면 그것도 인정해 줄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트루 러브를 찾으러 가라는 건 절대 아니다.
우리의 관계가 이어지고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부부는 각자 본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동시에 배우자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상대를 잡아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가 정말 트루 러브를 만나서 우리가 같이 쌓아온 것들을 포기하겠다 하면 어쩔 수 없다. 부디 행복하길 빌어줄 수밖에.
대신 갈 때는 그동안 함께 쌓아온 것들은 제 자리에 두고 최대한 '가벼운' 몸으로 떠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