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고쳐 쓰는 게 아니다

by 고베리슬로우

10년 선배와 싸운 적이 있다. 선배는 가르쳐주지도 않은 일을 시키고 못하면 뒤에서 날 욕하고 다니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먼저 면담을 요청해서 일을 맡은 지 얼마 안 됐고 쉬운 일도 아니어서 혼자 해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선배는 나에게 "어쩌라고. 내가 하라고?"를 시현했다. 선배와 싸운 날도 내가 모르는 일을 시켜놓고 다 했냐고 채근했다. 나는 사무실 한복판에서 선배에게 "할 줄 모르는데 어쩌라고요."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쩌라고에는 어쩌라고 다.


늦은 저녁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한 후였지만 사람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선배는 나에게 따라오라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본 채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요. 바쁘니까." 비록 특정 업무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난 당당했다. 남들이 알아주진 않더라도 남들보다 빠르게 업무를 배웠고 연차에 비해 많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무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선배가 일을 잘 가르쳐주지 않고 떠넘겨서 내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자리를 옮길 이유가 없었다. 행동으로 잘 옮기질 않을 뿐이지 약은 걸로 치면 나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


'어쩌라고요'에 이어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요'로 연타를 맞은 선배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나한테 본인의 일에 왜 책임을 지지 않냐고 그랬다. 나는 이제까지 모르겠다고 도와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문제 터지니까 왜 다 내 탓하냐고 쏘아붙였다. 선배는 본인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처음 배울 때 똑같이 아무도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고 자신이 밤낮없이 주말 없이 노력했는지 열변을 토했다.


그래, 결국 그거였구나.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알아주지 않아서 불만이었구나. 네가 그런 대우를 받아 힘들었다면서 왜 후배에게 똑같은 대우를 하려고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하면 또 다른 싸움이 될 것 같아 그저 내가 일을 해내기 위해 어떻게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했다.


객관적으로 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는지 선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배는 난데없이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본인 삶의 애환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선배가 한 말과 표정과 몸짓과 그 상황이 아직도 눈에 선한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깨물으며 울먹거렸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겠는가. 가끔은 개인사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줄 순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개인사를 들이대며 회사에서의 부담을 남에게 얹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남의 인정을 갈구하며 그보다 비난받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다. 여기에다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거나 본인이 응당 받아야 할 인정을 못 받는다는 피해의식까지 가진 사람이라면 게임 끝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밉지만 박애주의적 마음으로 말하건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빨리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처음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맞아 힘들겠지, 내가 좀만 더 참지. 그러다가 나만 만신창이가 됐고 그 대가는 나에게 피해 준 사람이 아닌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짜증을 부리는 형태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그들은 내가 받아주면 줄수록 더 많은 걸 바랐다. 애초에 난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려고 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다가 파란불이 켜졌어. 길을 건넜지. 근데 차 한 대가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거야. 내가 치였어. 난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지. 근데 다친 사람은 나야. 그럼 손해는 내가 보는 거야. 법이고 잘못이고 다친 사람만 손해야. 죽으면 더더욱 그렇고. 잘못도 없고 다친 사람도 난데, 병원에 누워서 자책할 거야. 그때 차 오는지 한 번만 더 보고 건널 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이제는 도저히 못 해 먹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꼬였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라고 인정할 만한 게 없었다. 그때 불현듯 파란불 켜진 횡단보도 위에서 차에 치인 기분이 들었다.


선배의 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울었다. 눈물 흘리는 선배 또한 누군가에게 치이며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아무 힘도 없는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슬펐다.


그 사건 이후 한 번 더 선배를 이해하려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우린 둘 다 힘없는 존재였지만 아무래도 선배인 그가 (적어도 회사 안에서만큼은) 나보다 힘이 더 많았다. 하지만 선배는 그 힘을 나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선배와 나와의 간극을 굳이 내가 없는 힘을 끌어다가 메우고 싶지 않았다.


선배와 나는 바로 옆자리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인사도 하지 않았고 식사는 물론 함께 회식에 참석하는 일도 없었다. 누구 한 명이 참석하면 자연스레 누구 한 명이 불참했다. 둘 간의 소통은 업무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만 있었고 그 외 개인적인 대화는 단 한 번도 나누지 않았다. 2년을 넘게 그렇게 서로에게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존재로 지내다 결국 선배가 팀을 옮기면서 그 관계는 종결됐다.


그날 우리의 싸움 현장에서 모든 걸 지켜본 다른 동료의 한 마디만이 아직까지 나에게 작은 위안으로 남아있다.


"아무리 그래도 열 살 어린 애랑 싸우면서 우는 건 반칙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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