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에서 누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두 눈은 부릅, 콧구멍은 벌렁, 어깨는 으쓱, 엉덩이는 들썩하면서 "진짜!?"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진 않았지만 분명 많이 튀긴 했을 것이다. 퇴사 이유가 궁금한 듯 "왜 나간데?" 물어보지만 정말 궁금한 건 회사 나가서 뭘 하는지다. 퇴사하고 뭘 하냐에 따라 퇴사자를 부러워할지 말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퇴사자가 공부를 한다거나 가족 사업에 합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든든한 백업을 가진 그들이 잠깐 부럽다가도 이내 ‘걔는 회사에 아쉬울 게 없네. 애초에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됐어. 나랑 달라.’ 생각한다.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은 사심 없이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즉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채 퇴사를 하는 거라면, 기꺼이 퇴사자들에 대한 부러움을 거둬들인다. 맨땅에 헤딩하듯 사업을 한다고 하면 나는 사업은 할 생각은 있지도 않았고 있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하면 어차피 회사원으로 살 거면 여기가 낫지 생각한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고 일단 여행부터 떠난다고 하면 갔다 와서 뭐 할지가 걱정돼서 온전히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걱정까지 해준다. 무려 내가 그토록 원하는 퇴사를 한 사람을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건 퇴사가 아니다. 나는 점잖게 말하면 비근로소득, 노골적으로 말하면 불로소득을 원한다. 재벌은 아니더라도 회사를 안 다녀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 또는 일을 하지 않아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소득이 꾸준히 들어오는 인생을 원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비근로소득이 있지도 않고 만들지도 못한다. 때문에 나는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따박따박 월급을 꽂아주는 회사를 다녀야 한다.
나는 회사를 관두면 안 되기 때문에 회사를 다닐 명분이 필요하다. 월급이 최고의 명분이라지만 월급뽕은 월급날 당일을 넘기기 힘들다. 월급은 한 달에 한 번 꽂히는 구조상 매월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회사를 다닐 명분을 애써 찾아야 한다.
그런 나에게 퇴사자를 부러워하는 건 뇌에 직방으로 투입되는 독약이다. 없는 명분도 만들어야 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다. 온갖 이유를 만들어서 퇴사자들 부러워하지 않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내가 못났기 때문에,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면 안 된다. 퇴사자의 집안이 좋아서, 퇴사자가 운 좋게 돈 많이 버는 배우자를 만나서, 하다못해 퇴사자가 앞으로 가려는 길이 나는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길이라고 믿어야 한다. 자기 합리화는 자존감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2.
처음 육아휴직을 할 때 남녀노소 불문 들은 말들이 있다.
너 부자였구나. 너 와이프 돈 많이 버니?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계속 회사를 다닐, 스스로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을 명분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면전에서 듣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혼자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악의를 갖고 내 기분을 나쁘게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닐 거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선을 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육아휴직 끝나고 꼭 복직해서 회사에서도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대리님 덕분에 육아휴직 한 번 가봅시다.”
“육아휴직 끝나도 회사에 돌아오지 마세요. 대리님 돌아오면 회사에서 그럴 거 아니에요. 쟤 봐라. 회사 나가봤자 어차피 돌아오지 않느냐. 대리님 같은 사람이 안 돌아와야 나 같이 남아 있는 사람 대우가 좋아지죠.”
내가 얼마나 회사에서 상처 받았고, 퇴사를 준비하기 위해 낸 육아휴직임을 아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툭툭 뱉어댔다. 다 이해한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 주고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좇까. 씨발. 내가 니네 잘 되라고 육아휴직 썼어?
3.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내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싶은 남자들, 육아 휴직하고 싶다고 말할 것 같은 부하를 둔 상사들, 내심 남편이 육아휴직을 썼으면 하는 여자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내가 회사를 나가는지, 육아휴직 때문에 승진에서 누락하는지, 회사로 돌아가면 팀이 바뀔지, 책상이 남아있을지, 돌아가면 평가는 어떻게 받을지, 회사에서 나를 지방으로 발령을 내는 건 아닌지 등등. 각자 원하는 바에 따라 내 복직 또는 퇴사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든 내 알 바 아니다. 다만, 생각을 하는 것과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완전 별개의 문제다. 생각에 있어서 만큼은 나도 이 세상에서 제일 구릴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거나,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하는 단어가 있다.
염치. 또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나라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한 육아휴직이 아니다. 회사와 사회의 발전, 점점 낮아지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앞장서서 육아휴직을 쓴 건 더더욱 아니다. 수개월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감내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어렵게 마음먹었다. 그때도, 지금도 두렵고 불안하다. 내 선택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것까지 배 아파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는, 그런 반사이익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를 대놓고 활용하려고 하거나 그런 의도를 표출하는 건 아무래도 불쾌하다. 나와 내 가족의 고민과 노력이 무시당하고 빼앗기는 느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막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왜? 난 쫄보니까. 그런 말 하면 해코지당할까 무서우니까.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모자란 사람들일 테니까.
악의는 없더라도 나한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준 만큼 나도 내 나름의 저주는 퍼부어야겠다.
"당신들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부디 앞으로도 그렇게 무례한 말 많이 하시고 욕 쳐드시면서 마음 편히 오래오래 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