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어느덧 4년 차 회사원으로서 느끼기 시작했던 매너리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서른을 앞둬서 그랬는지 정확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대 후반, 어쩌다가 내 인생이 여기까지 흘러왔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처지를 비관하거나 걸어온 길이 후회되어서가 아니었다. 살면서 지금의 삶을 만든 결정적인 순간들, 내가 내렸던 크고 작은 선택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였는지 되새겨봤다.
그 과정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의 직업을 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의사의 자녀는 의사가 됐고, 법조인의 자녀는 법조인이 되었으며, 공무원의 자녀는 공무원, 회사원의 자녀는 회사원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때 나는 절대 회사원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와 아내가 모두 회사원이면 아이도 회사원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
같은 공간에 있었던 나와 친구들이 다른 길을 걷기까지,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어떤 공통된 기준이 있지 않았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게 특별히 없었기 때문에 해서 나쁠 게 없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성인이 돼서도 좋아하기보다는 나쁘지 않아서 선택하는 일들이 많았다. 나쁘지 않은 선택지 중에서는 가장 좋은 것들을 선택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지극히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마치 모든 걸 안다는 착각 위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좋기'보다는 '나쁘지 않아서', '나쁘지 않은 것'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것'을, '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선택하며 살아왔다.
나 또한 그랬다. 아빠는 대기업을 다녔고, 우리 집은 화목하고 행복했다. 아빠의 직장과 우리 집이 화목하다는 걸 별개로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업에 취직해도 내 가정을 행복하게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기업 회사원이 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타이틀만 알았지 아빠의 직장 생활이 실제로 어땠는지 ‘몰랐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직업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만약에 내가 회사 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직업에 대해서 더 잘 알았더라면 많은 게 변했을 것이다. 대학교 내내 큰 고민 없이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직할 생각으로 고시나 창업 등 다른 길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최고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스펙들을 쌓았고 졸업학기에 최선을 다 해 취업준비를 하여 갈 수 있는(=합격한) 대기업 중 '가장 좋다'라고 생각되는 회사에 입사했다.
친구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차피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성적은 좋았다. 다른 진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그들의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부모님의 직업이 가져다주는 혜택에 대해서는 몸소 경험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부모님을 통해 검증된 길을 굳이 밟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내가 대기업에 취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회사원에 대해 무지한 채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에 잠재적 퇴사자 지경까지 왔다.
(*) 이는 비단 커리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애를 키우는 모든 것들도 사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모든 게 새로웠다. 아니, 생각하는 바와 달랐다. 우리 인생은 모든 걸 알고 선택하기엔 너무 짧다. 한정된 정보를 갖고 적당히 선택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서 '운'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잘한 것도, 못 한 것도 내 탓도 있지만 결국 팔자(또는 그렇게 될 운명)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회사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엔 많은 회사원들이 있고 그중에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만족까지 아니더라도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냐며, 그래도 버틸만하다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회사는 직원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직원의 현재를 보장해 주는 건 회사가 주는 월급뿐이다. 자의든 타의든 중도에 튕겨나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세상의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악착같이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퇴사자들의 이야기가 눈에 밟히고 귀에 들리는 건 그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드물다는 반증이다.
나는 회사원의 삶이 어떤지도 모른 채 무작정 회사원이 되기로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회사원의 삶이 어떤지 잘 알게 된 지금, 내가 더 이상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게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