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life for Auir :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프로토스가 고향 행성 아이어를 위해 목숨을 걸 것을 외치는 구호이자, 프로토스를 상징하는 대사다. (출처 : 나무위키)
1.
한 달에 한 번 사장을 포함한 회사 모든 임원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다. 임원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이 담당하는 조직의 전월 실적, 당월 예상 실적, 그리고 연간 잔여기간 계획을 발표한다. 발표 자체도 중요하지만 중간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사장의 질문들을 잘 디펜스 해내는 게 관건이다.
회의의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임원 A는 준비해온 발표를 마치고 사장의 송곳 같은 질문을 열심히 방어해냈지만 결국 마지막 질문에 답을 못했다. A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사장은 가차 없이 "다음!"을 외쳤고 다음 임원 발표로 넘어가버렸다.
두어 시간 후(회의는 보통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소요됐다) 모든 임원의 발표가 끝나고 사장이 마무리 발언까지 했다.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적당히 눈치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에 임원 A가 갑자기 소리쳤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두 시간 전에 답하지 못했던 사장의 질문에 답을 했다. 사장은 A를 빤히 지켜보다가 별 대답 없이 푸핫 웃었다. 사장의 표정은 마치 늦둥이 초등학생 동생이 자신을 괴롭히며 장난치는 대학생 누나에게 정색하면서 대들자 '이 귀여운 새끼' 하며 웃는 대학생 누나의 표정 같았다.
그렇게 회의가 끝났지만 임원 A는 여전히 속이 편하지 않았는지 같이 온 팀장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답 잘한 거지?”
2.
똑같은 회의였다. 임원 B는 담당하는 조직이 실적이 좋지 않았다. 실적이 좋지 않은 만큼 사장은 쉬지 않고 B에게 코멘트를 날렸다. B는 사죄의 의미에서인지 인정의 의미에서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스타일인 건지 그 코멘트들을 '변명 없이' 묵묵히 받아냈다. B는 마지막에 자리로 돌아가면서 비로소 한 마디 했다.
“알겠습니다.”
3.
직원들 앞에서 그렇게 안하무인인 임원들이 본인의 상사 앞에서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내가 평소에 보는 사람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비단 임원뿐만 아니다. 후배에겐 그렇게 매정한 팀장, 부장들이 임원 앞에서는 마치 신입사원처럼 쭈뼛쭈뼛 거리면서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보면 토가 나오려고 한다*.
(*) 경험상 후배를 막 대하는 선배일수록 본인의 윗사람에게 심하게 굽신거린다.
상사도 사람인지라 실력이 고만고만하다면 자신을 어려워하는 후배가 더 '이쁜 게' 인지상정이다. 아무래도 상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한 번이라도 더 빨아주기 상사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기 망정이다. 환갑을 앞둔 사장은 50살 먹은 임원이 자신 앞에서 말까지 더듬어가며 쭈뼛쭈뼛 거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갸륵할까. 그렇게 사장을 어려워하는 임원이라면 자나 깨나 얼마나 성심성의껏 사장을 상전으로 떠받들어 모셨을까. 어쩌면 그 자세가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원이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자신의 평가자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상사를 어려워하는 마음, 상사를 상전으로 모실 줄 아는 마음은 누가 뭐라 해도 평가자에게 잘 보이는 데 있어서 엄청난 경쟁력이다. ‘내 월급이 지 돈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 목숨은 당신 것입니다. 절 가져주세요.’ 하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
4.
임원 B는 그 해 말 '집에 갔다.' 그가 집에 간 이유가 비단 그의 조직이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의연한 그의 모습이 사장에게는 그가 그 자리에 별로 간절하지 않다는 신호로 작용한 게 아니었을까. 그 자리에 목 매달 사람이 줄 서 있는데 굳이 그를 그 자리에 앉혀둘 이유가 있었을까. 만약 그가 열심히 침 튀기며 변명을 했다면 그런 극단적인 처우를 면할 수 있었을까.
5.
그리고 임원 A는 이듬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