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잠재적 퇴사자로 명명하고 회사에 대한 온갖 불만만 토로하는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몇 명이나 읽겠느냐만) 나를 부정적인 사람인 줄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반대다. 누구보다 만족하며 회사를 다녔다. 한때 지인들에게 “너처럼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사람 처음 봤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회사 다니면서 특히 좋아하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신입사원 때 팀장님은 매사에 남을 위하는 마음이 깔려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나이차가 좀 났지만 “주말에 산 같이 한 번 안 가실래요?” 하고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같이 막걸리 한잔하고 싶은 분이었다. 특히 나와 개그코드가 잘 맞았다. 팀장님 말에 나 혼자 웃거나, 내 말에 팀장님 혼자 웃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실제로 입사 1년 차 때 연말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팀장님이 자신한테 바라는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팀장님은 저희 팀의 아버지 같은 존재니까 우리 앞에서든 남 앞에서든 당당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친구들끼리나 할 수 있는 그런 실없는 대화를 팀장님은 많이 받아주셨다.
“팀장님. 제가 장이 안 좋아서요. 회식 다음 날에는 출근 도중에 화장실 갔다 오는 날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네. 지각 안 하려다가 이민 갈 순 없잖아요.”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팀장님. 만약에 제가 출근하다가 전철 안에서 이상형 만나면 따라가도 돼요?”
“이 대리(사원이었는데 대리라고 부르셨다)”
“네”
“내가 출근길에 이상형 만나서 따라가 보는 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봤어. 한 번은 봐줄 테니까 좇아가 봐. 둘이 잘 되면 내가 밥도 사줄게.”
오히려 연차 차이가 크게 나서 더 편하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팀장님이 다 받아주셨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임원이 되신 지 꽤 됐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도 먼저 연락 주시는 몇 안 되는 선배 중 하나다.
입사했을 때 같이 있던 과장님도 많이 좋아했다. 단순히 좋아만 한 게 아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1등'에 당당히 올라있는 사람이다.
신입사원 때 팀에서 1박 2일로 야유회를 갔다. 1박 2일이라는 부담은 있었지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그런 회사 야유회가 아니었다. 야유회 준비(장소 물색 등), 식당 선정, 자동차 렌트, 심지어 운전까지 고년차 선배들이 모두 전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저년차들을 위한 고년차 선배들의 배려가 묻어있는 야유회였고 덕분에 나에게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야유회에서 돌아와서 헤어지기 직전이었다.
“과장님.”
“왜.”
“과장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셨어요.”
“왜.”
“제가 과장님 때문에 앞으로 후배들을 어떻게 대할지 결심했거든요.”
“어떻게 할 건데.”
“아무리 못해도 과장님한테 받은 만큼은 해줄 거예요. 과장님은 정말 큰일 하신 거예요. 절 만날 수많은 후배들 인생에 꽃길을 깔아주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오글거리긴 하지만 실제로 후배들을 대할 때마다 과장님을 떠올린다. 더 잘해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받은 만큼은 해주자.
첫 팀장님이 사회적 아버지 같았다면, 과장님은 큰형 같았다. 회사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을 잘했다. 그만큼 잘 나가고 있다. 지금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 있다. 추석, 연말뿐만 아니라 한국에 들어오실 때마다 나한테 전화 주신다. 육아 휴직하고 나서 가장 많이 전화를 주신 분이기도 하다. 몇 번 못 받았지만, 정말 고맙고 감사하신 분이다.
좋아하는 부장님도 한 명 있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부장님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리 오래 같이 있지 않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일주일에 3-4일을 함께 출장을 다녔다. 출장을 가면 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같이 있었다. 같이 숙소를 잡은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런 날이 더 좋았다. 퇴근하고 같이 거실에 널브러져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이게 회사 선배랑 출장을 온 것인지 친구랑 여행을 온 것인지 착각할 정도로 재밌고 편했다.
부장님도 회사에서 알아주는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우리 회사에서 통상적인 '일 잘하는 스타일'이랑은 좀 달랐다. 회사에서 봤던 사람들 중에 가장 ‘사업가적 수완’이 좋았던 사람이다. 맨땅에 박치기하고 허허벌판에서 건물을 올리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그런 ‘무모한’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지막은 내 두 번째 팀장님이다. 이런 말 하면 건방질지 모르겠지만 그 팀장님은 약간 아픈 손가락 같은 분이셨다. 이십 년 가깝게 몸 담았던 부서를 떠나 팀장을 달면서 내가 있던 부서로 오셨다. 기존에 있던 부서와 문화도 업무도 사람도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팀장님은 힘들어하셨다. 몇몇 사람들은 팀장이 중심을 못 잡아준다면서 마구 물어뜯었다. 하지만 난 팀장님이 좋았다. 항상 노력하고 아랫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에 끌렸다. 한 번 더 도와드리고 싶었고 한 번 더 잘 되시길 빌었다.
이 네 사람은 얼핏 보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위에서 받은 똥을 아랫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본인의 선에서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끔은 '꼰대'들처럼 행동할 때도 있었지만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배우고 자랐다. 본인들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부당함은 그들의 선에서 끊으려던 마음을 지녔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좋아해 줬다. 사실 사람 관계라는 게 별거 있나.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좋은 거고 날 싫어하는 사람은 싫은 거다. 선생과 학생, 상사와 부하 등 위아래가 있는 인간관계의 성공 여부는 70% 이상 윗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내 신조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저 선배들을 좋아한 건 70% 이상 저 선배들의 덕이 크다.
이 선배들이랑 함께 할 때까지가 정확하게 내가 회사에 만족하던 시기였다.
이런 회상이 무색하게 육아휴직과 함께 이 선배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나온 분들도 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건 이제 와서 하는 소리고, 그때는 회사와 관련된 모든 연을 끊고 싶었다. 회사와 조금이라도 연결이 되어 있으면 계속 회사에 얽매여 회사에서 받은 상처가 회복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한 해가 지나선지(회사에서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육아휴직이 끝날 시기가 가시권에 들어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선배들이 종종 생각난다. 잘들 지내고 계신지. 건강하신지. 하지만 먼저 연락할 염두는 나지 않아 '특별한 소식이 없는 거 보니 회사에서도 여전히 잘 들 지내고 계신 거겠지' 하고 넘어간다.
회사에 돌아가든 안 돌아가든 언젠간 술 한잔 사달라고 해야겠다. 그때는 물론 내가 거절당할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