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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Mar 21. 2021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 바쁘신 분은 중간 글 다 뛰어넘고 마지막 문단만 읽으셔도 됩니다.


'꼰대 육하원칙*'이라는 게 있다. 

When – 내가 왕년에

Where – 네가 어디서 감히

Who – 내가 누군지 알아

What – 네가 뭘 안다고

How – 네가 어떻게 나한테

Why – 내가 그걸 왜

(*) 난 이런 걸 볼 때마다 이를 생각해낸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진지하게 생겼을까, 장난기 넘치게 생겼을까, 공부 잘하게 생겼을까. 설마 잘생기진 않았겠지?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괜히 궁금해진다.

 

'꼰대'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대충 본인의 가치관을 약자에게 강요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해왔다. 꼰대의 육하원칙을 보고 꼰대란 자신의 의견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살면서 꼰대를 거의 못 만나 봤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는 무능력자,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남들이 해놓은 성과에 기생하는 무임승차자, 때와 장소에 따라 말 바꾸는 쓰레기, 앞에서 웃고 뒤에는 욕하는 정신병자, 상사에게는 간까지 빼다 줄 것 같은데 정작 가정은 소홀한 가정파탄자, 본인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분노조절장애지만 강자 앞에서는 분노조절잘해인 이중인격자 등 별의별 인간들은 다 만나봤어도 꼰대는 딱히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그런 인간이 있단 말인가?' 한 번 놀라고 '그런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길래 그렇게 끊임없이 튀어나오나?' 또 한 번 놀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꼰대는 보통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만 꼰대 짓을 하는 듯하다. 나처럼 가차 없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꼰대 짓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남들 무시하는 꼰대들도 정작 남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기에 누울 자리 봐가면서 눕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는 나는 '형들이 어려워하는 동생'인 동시에 '동생들이 막 대하는 형'이었다. 회사에서도 후배보다 선배들이 나를 더 어려워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선배들을 대할 때는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를, 후배들에게는 '난 어려운 사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만들고 보낸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꼰대는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주는 편함에 취해 가드를 내리고 본모습을 보이는 후배들 중에서는 소위 '젊은 꼰대'가 수두룩하다. 그중에서는 나한테까지 꼰대 짓 하는 후배들도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런 후배가 내게 꼰대 짓 하려 드는 선배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꼰대는 누울 자리를 봐가면서 눕는다는 가설이 다시 한번 옳다는 게 증명된다.

 

어쨌든 후배에게 꼰대 짓 당할 만큼 '만만한 선배'이자 선배들이 어려워하는 '싹수없는 후배'로서, 나만의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이자 선배들에게 꼰대 짓을 당하지 않는 방법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첫째, 회사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어떻게 거리를 두냐! 그것이 문젠데 거리를 두지 않는 게 뭔가를 생각해 보면 쉽다. 같이 밥 먹고, 저녁 먹으면서 술도 먹고, 쉬는 시간에 같이 커피 마시거나 산책을 하는 등 업무 외적으로 친분을 쌓는 모든 행위가 거리를 두지 않는 행위들이다. 고로 이 모든 걸 하지 않으면 된다. 밥도 혼자 먹고, 회식도 안 가고, 쉬는 시간에는 혼자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며 업무 말고는 회사 사람들과 최대한 이야기도 섞지 않으면 된다.

 

나는 출근하고 팀 사람들과 말 한마디 안 하고 집에 간 적도 많다. 아니 그런 날이 안 그런 날보다 더 많다. 출근할 때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고 퇴근할 때도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뜬다. 다른 사람이 출퇴근할 때도 그들이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나도 인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별로 친해지지 않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자발적 왕따가 되는 거다. 다만 회사에서 만난 사이라 하더라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 내 성향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중시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시간을 두고 그런 사람들과만 친해져도 '회사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면 어떻게든 불이익을 당하는 거 아니에요?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행동하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예의는 알아서 지켜야 한다. 경험상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존중해 준다.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아니, 착하고 나쁘다의 문제라기보다 회사의 조직문화에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둘째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관심을 갖지 말 것이냐. 일 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갖지 않는다. 이 선배가 결혼은 (언제) 했는지 애는 몇 명이 있는지 애가 없다면 왜 없는지, 저 후배가 여자 친구는 있는지 퇴근하면 뭐 하는지 주말에는 클럽에 다니는지 등등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일절 갖지 않는다.

 

Q : 그래도 하루에 물리적으로 아홉 시간 이상을 한 공간에서 나란히 앉아서 얼굴 보고 목소리 들으면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준가족' 같은 동료들인데, 그건 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A : 너무 한 거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는 '준가족'도 아닙니다. 형 동생도 아니고 친구 사이도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하러 불가피하게 만난 사람들입니다. 일 외적으로 굳이 친해지거나 말을 섞을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동료들에 대해서 끝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생활하게 되지 않는다. 그런 극단적 무관심에 오히려 호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는 속으로 '제발 나한테는 말 걸지 마라' 빌며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건데 그 모습을 우러러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회생활이라는 미명 하에 어쩔 수 없이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혼자 찌그러져' 있는 모습을 '용기'로 봐준다.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비밀을 술술 털어놓거나 심지어 상담을 구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거리면서 친한 척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그다지 친하지 않은, 심지어 속으로는 서로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관계들 투성이다. 그들이 같이 웃고 떠든다고 해서 그들이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나도 하루빨리 저들 사이에 끼어야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말을 최소화하고 하는 것이다. 특히 그 누구에게도 조언을 하거나 가르치려 들거나 바꾸려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더라도 재미있는 척 또는 듣고 있는 척 연기를 한다. 당연하겠지만 후배들일수록 더더욱 그러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조금만 이야기가 길어져도 사람들은 금세 내 이야기를 지루해하고 듣는 척하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걸 명심하자. 상대방은 관심도 없는 조언을 해놓고는 뭔가 대단한 삶의 지혜를 줬다는 착각에 빠지지도 말자. 

 

다만 업무적으로 틀린 걸 고쳐준다거나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필요한 순간에서까지 말을 아끼면은 안된다. 업무적으로까지 말을 아끼다가는 동료들에게 무시당할 수도 있다. 꼰대가 되기 무서워 자신의 능력을 무시당하면서까지 타인의 성향을 존중해 줄 필요는 없다.  

 

"꼰대 짓 피하려고, 꼰대가 안되려고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빡빡하게 회사 다녀야 합니까? 그냥 적당히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가끔은 꼰대들도 만나고 가끔은 꼰대 짓도 하면서 사는 게 인간적인 거 아닙니까?*" 하는 사람들은 내 말 무시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내가 쓰면서도 솔직히 이렇게까지 행동할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이니까. 


(*) 사실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더 행복한 거 같기는 하다.


좀 더 조직융화적인 방법으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것들 다 잊어버리는 대신 다음 두 문장만 기억하도록 하자. '나는 생각보다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과 분명 다를 것이다.' 모든 행동과 말을 하기 전에 항상 이 두 문장만 떠올려도 무정부주의자 집단에 속해있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꼰대 소리 듣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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