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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Aug 17. 2021

그래서, 서울대 나와서 좋았나요?


예전에 독립출판으로 잡지를 만들던 지인의 부탁으로 글을 몇 개 써서 그의 잡지에 실린 적이 있다. 잊고 살다가 최근에 친구에게 그 잡지를 보여줬는데 친구의 친구가 내 글이 너무 재밌다며 본인이 살면서 읽어본 글 중에 가장 재밌었다고 오버를 하길래 그때 내가 썼던 글들을 찾아봤다.


오늘은 그 글들 중 하나를 올려보고자 한다. 독립잡지 편집장이 나에게 서울대생으로 사는 삶이 어떤지 몇 가지 질문을 던져줬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다만 이 글은 최종 출간되지 않았다. 논의 끝에 사람들이 거북해 할 수도 있는 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그런 거북함이 없다. 인생에서 성공이나 행복은 학력과 전혀 상관없다는 걸 몸소 느끼며 학력의 중요성이 평가절하되어 무덤덤해진 것 같다.


작성 시기는 2016년 6월. 내 나이 서른 살이었을 때다. 당시의 당돌함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원문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곳곳에 좀 더 의미를 잘 전달하고자 각색한 부분도 있다.




질문 1. 지금 나의 직업이 서울대 출신이 아니었어도 하게 될 / 혹은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내가 다니는 직장은 서울대가 아니었으면 입사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스펙을 안 본다고 하지만 취업 시장에서 학력은 역시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똘똘한 고등학생이 와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인 만큼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질문 2. 학생일 때는 “난 서울대생” “난 고대생” “난 연대생” 어디 학교 다닌다는 것이 나의 명함이자 정체성이었는데 사회생활하며 그래, 나는 서울대 출신이지 ……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을까?


스스로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아, 그렇지. 나 서울대 나왔지?'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만 누군가가 상기시켜주는 경우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서울대를 입학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라 저를 대신하여 제 소개를 해줄 때는 이름이 나오고 거의 99% '서울대'라는 단어가 뒤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가령 ’저희 신입사원입니다. 서울대 나왔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사회 초년에는 누군가가 서울대를 거론하며 저를 소개하면 ‘저건 굳이 왜 말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매번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고 거기에 익숙해지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시기가 오더군요. 그러다가 아마 입사하고 4년 차였을 거예요. 그 순간이 아직 기억납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그렇게 소개되는 제 모습이 너무 싫어지더군요. 졸업한 지 3~4년이 지났는데 난 그 시간 동안 무얼 했길래 아직 그걸로 소개가 되는 거지. 날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서울대뿐인가.


전 개인적으로 한 번도 그런 소개를 즐겼던 적이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회에서’라고 해야겠네요. 왜냐면 미팅이나 소개팅을 할 때는 나쁘지 않았거든요. 여자분들 중 십중팔구가 제가 서울대 나왔다 하면 제가 가진 것 이상으로 저를 평가해 주더라고요.


아무튼 사회생활에서는 그런 소개를 상당히 싫어하며, 그 소개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질문 3.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여전히 금수저의 조건이 되는 시대일까?


“70-80년대에 땅 팔아서 자식 서울대 법대, 의대 보낸 어르신들은 변호사, 의사의 부모가 됐지만, 공부 못하는 자식 탓에 농사나 지어야 했던 분들은 지금 땅부자가 됐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접한 글입니다. 이 질문을 보면, 질문자께서는 예전에는 서울대가 금수저의 조건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저 개인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서울대는 금수저의 조건이 아니었고, 아니며,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분들은 주위에 서울대 출신 사람들이 눈에 띄겠지요. 그렇게 눈에 띄는 서울대생들은 대부분 번듯한 모습일 거예요. 왜냐하면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서울대 출신들은 오히려 자신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을 숨길 테니까요. ‘서울대 나왔는데 왜 저래?’라는 비난(?)은 거의 모든 서울대 출신들이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는 의식적/무의식적 두려움일 거예요. 이건 뭐 일정 수준 이상의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서울대 출신들은 아무래도 제일 심하다는 거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서울대생들은 수 천명의 서울대생 사이에서 실제로 생활하고 또 살아갑니다. 그중에서는 잘난 사람도 많지만 취직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모가 이혼한 사람, 범죄자, 야동/게임중독자, 심지어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서울대는 결코 금수저의 조건이 아니며, 행복의 조건은 더더욱 아니라는 , 그리고 ‘서울대 나왔으면 경제적으로  정도는 벌어야 되는  아냐?’라는 사람들의 통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류에 속할  같습니다).


서울대는 시험을 잘 쳐서 가는 곳이지 수익을 보장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질문 4. 서울대는 고려대 혹은 연세대와 동등할까?


처음 질문을 볼 때는 별로 못 느꼈는데, 답을 적어가면서 이 질문들을 보니, 질문자님께서는 상당히 서울대를 후하게 쳐주시는 것 같네요. 서울대 출신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서울대는 고려대 혹은 연세대와 동등할까?’ 고려대가 연세대보다 먼저 나오네요. 고대 출신답네요. 전 개인적으로 연고전이라 말합니다. 하하.


질문으로 돌아가서 만약 질문자님께서 의도한 것이 서울대가 연고대보다 우월하냐는 것이라면 제 답은 ‘어디가 어디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힘들다. 다만 분명히 다르다’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 이야기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서울대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에게 서울대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해서, 정답을 잘 찍어낼 수 있는 애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연고대도 마찬가지고요. 절대 서울대/연고대생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전 이들의 능력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 해외에서 살면서 국제 학교를 다녔고 귀국해서 외고를 나와서 서울대를 들어갔습니다. 해외에서 국제 학교를 다녀본 분들은 아실 수 있지만, 제가 다녔던 국제 학교에서는 중학교를 들어가도 덧셈/뺄셈부터 해요. 교과서에 덧셈/뺄셈/곱하기/나누기 사칙연산 문제가 떡하니 있어요.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할만한 것들은 거기선 중학교, 우리나라에서 중학교에서 할 것들은 거기서는 고등학교에서 하는 느낌이에요. 그러니 그곳에선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간 애들의 수학 능력이 월등히 높습니다. 당연하죠.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세계 최강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 놀라운 게 아니에요. 놀라운 건 덧셈/뺄셈 문제를 다른 나라 중학생들이 못 푼다는 거예요. 근데 더 놀라운 건 그 13살에 더하기 빼기를 틀리던 애들이 대학교는 하버드를 가고 스탠퍼드를 가고 예일대를 갑니다.


우리나라 스카이가 세계 대학 순위에 100위 안에 드나요?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는 50위 안에 들었다고 막 기사 띄우고 홍보하고 난리 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 친구들을 보고 저는 우리나라 교육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저는 죽기 살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에 열 시간씩 공부해서 서울대 갔지만, 서울대가 우리나라에서만 서울대지 세계에서 알아주기나 하나요? 근데 제가 중학교 때 옆에 덧셈 뺄셈 가르쳐주던 애가 하버드를 갔단 말이죠.


제가 캐나다 UBC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예요. UBC면 나름 캐나다를 대표하는 대학 중 하나지요. 제가 3학년 때 가서 거기서 경제 전공 수업을 들었어요. 같이 듣던 현지 애들이 저보고 뭐라고 한지 알아요? 저보고 천재래요. 어떻게 그렇게 공부도 안 하고 성적이 좋냐고 물어봤어요. 비법이 뭔지 알아요? 그때 강의 내용이 거짓말 안 하고 저 수능 공부할 때 공부하던 내용이었어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경제학 원론 수준이었고요. 우리나라가 쓸데없이 너무 어려운 걸 가르치는 건지, 해외 대학들이 애들을 바보로 만들 만큼 쉬운 것만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걸 걔들은 대학교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거짓말 같나요? 이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갈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공부만 하지요. 고등학교 가면 더 심해집니다. 고3은 말할 필요도 없죠. 반면 해외는 그러지 않아요. 고등학교 가도 취미생활하고, 악기도 배우고, 데이트도 하고, 파티도 합니다. 특히 운동을 매우 중요시하죠.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전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제집이나 책 말고 신체를 활용하는 활동들이 궁극적으로 수학능력(수능)의 일부라고 보고, 삶에 있어서도 그런 게 중요하다는 의식이 있는 거죠. 우리나라처럼 '일단 닥치고 공부해. 하고 싶은 건 대학 가서 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활동 없이 공부만 하는 애들은 오히려 좋은 대학일수록 받아들이지 않아요. 수학능력 결핍, 또는 삶을 삶답게 살아가는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거죠.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습니다. UBC에서 저보고 천재라고 난리 치던 친구는 지금 엑손모빌 다니고 있습니다. 학습능력, 일처리 능력 그런 효율적인 잣대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너무나 우월한데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치고받고 그러고 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우리나라 스카이, 또는 그 (수능 점수 측면에서) 아래의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하버드나 스탠퍼드 같은 아이비리그 학생들보다 절대 떨어진다고 보지 않아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컫는 '공부'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더 우월할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의 기준으로만 월등한 거가 문제겠지요. 그리고 그 문제가 결국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서울대는 우리나라에서만 서울대지 밖에서 보면 다 그냥 그거라는 거. 심지어 이름 때문에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교는 서울대학교가 아니라 고려대학교(KOREA Univ.)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외고를 나와서 알지만 외고에 정말 공부 잘하는 애들 많아요. 감탄할 정도로 비상한 애들도 있고요. 저는 그중에서 과에서 항상 6~7등은 하는 애였어요. 내 위에 애들이 가끔 내 아래로도 떨어지고, 내 아래에 있던 애들이 가끔 내 위로도 올라가고 그랬지만 저는 항상 6~7등을 유지했습니다. 3년 내내요. 좋게 말하면 부침이 없었다는 거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게 제 능력의 최선이었다는 거죠. 수능도 제가 우리 과에서 10등 정도 했었던 거 같아요(문과 중에서). 저보다 수능을 잘 본 애들, 평소에 머리가 정말 좋다고 하는 애들은 서울대가 안됐는데 제가 되더라고요. 전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정말 머리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이 서울대를 가는 건 아니구나. 서울대 밖에도 잘 난 애들이 많겠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이 이야기는 절대 자랑이 아니고 오히려 저는 불행한 거라 생각하는 점인데, 혹시 기분 나쁘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어서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말부터 하고 갈게요. 서울대생도 다 같은 서울대생이 아니잖아요. 무슨 말이냐면 저는 외고를 나왔잖아요. 외고 출신의 애들은 일반 고등학교 애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공부량과 경쟁도를 견디고 대학교를 들어옵니다. 좋게 말하면 공부에 있어서 더 노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더 기계적으로 공부만 했다는 거예요.


이 효과가 1학년 때 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외고 출신 애들이 대체로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공부한 것에 비해 점수가 잘 나와요.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점수가 더 잘 나오고, 공부를 덜해도 잘 나올 때도 있어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저는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천재라는 소리 들었습니다. 무려 서울대에서요. 그 말을 듣는 제가 기가 차더라고요. ‘내가 무슨 천재야? 내가 봤을 때는 너넨 공부하는 법을 몰라’라고 그때 당시에 제가 생각했던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의 제가 괜히 가소롭네요. 내가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고 하는 애들이 다 서울대생인데 말이죠.


그만큼 외고 3년을 통해 그들보다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알았던 거예요. 우리나라 교육이 원하는 방식의 ‘수학 능력’이 더 뛰어났던 거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이건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절대 자랑이 아닙니다. 다시 살라면 절대 그렇게 안 살 거예요. 게다가 똑같이 서울대 갈 거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는 게 승자지요. 전 그것도 모르고 그때에는 그런 애들보다 제가 우월하다고 생각한 거고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거죠.


그런데 결국 2~3학년 가면 다 비슷비슷해지더라고요. 아마 비외고 출신 애들이 열심히 해서 상향 평준화됐다기보다는, 외고 출신애들이 긴장을 풀면서 하향평준화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입니다만, 상향 평준화는 효율성을 올릴 순 있지만 하향평준화는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다 같이 편해지는 거죠. 어쨌든 그런 상황들을 종합하고 보니, 서울대(연고대 포함)는 진짜 저에게 더도 덜도 아니고, 그냥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암기 잘 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었어요.


여기까지가 밑밥이었고요 지금부터 '서울대와 연고대는 차이가 있는가'라는 편집장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입학할 당시에는 서울대와 연고대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고작해야 수능 몇 문제 또는 내신 몇 점 차이겠죠. 하지만 입학 후의 대학생활은 두 집단 간에 극명한 차이를 만드는 거 같아요(여기서는 편의상 연고대를 하나로 묶어서 논하겠습니다. 물론 연대분들과 고대분들은 서로 간에 극명한 차이를 느끼겠지만 저는 모르니까요).


대학교 생활을 공부(책상에서 하는), 놀이(공부 외 여러 경험 포함)로 나뉜다고 합시다. 그리고 '서울대'라는 하나의 인격체가 있고 '연고대'라는 또 하나의 인격체가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서울대'는 공부가 51%, 놀이가 49%이고, '연고대'는 놀이가 51% 공부가 49%라고 생각해요. 물론 실제로 학생들 개개인으로 보면 완전히 천차만별이겠죠. 학교 불문하고 고시생들의 경우는 공부가 90% 이상일 거고요, 노는 게 좋은 애들은 학고(학사경고) 맞으면서 놀기만 하겠죠. 어느 학교든 F 맞고 학고 맞는 애들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든 개개인을 모여서 대학교를 대표하는 하나의 인격체가 있다고 친다면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죠.


서울대는 어쨌든 공부를 하는 느낌이고, 연고대는 조금은 더 논다는 느낌이에요. 이건 100%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연고대 애들이 되게 부러워어요. 재밌잖아요. 연고전도 있고, 신촌/홍대 휘젓고 다니고, 고대에서 막걸리 먹고 여대랑 쪼인해서 엠티도 가고. 근데 서울대에는 (물론 개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많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없어요. 차분합니다. 그냥 학교 오가고 도서관 다니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저는 많이 놀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연고대 애들이 부러운 거 있잖아요. 저렇게 뭔가 똘똘 뭉쳐서 덩어리로 놀고 싶다 그런 느낌.


이제는 부럽지 않아요. 그것도 별거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결국 어떤 환경에서든 재밌게 노는 애들은 재밌게 놀고 못 노는 애들은 못 노는 거니까. 연고전이니 홍대니 클럽이니 그런 게 주위에 아무리 많아도 못 노는 애들은 못 놀았을 거예요. 저도 아마 못 놀았을 확률이 높고요.


계속 이야기가 세네요. 어쨌든, 두 집단 간에는 2%의 격차가 생기는데. 이 2%의 격차가 4년(또는 그 이상) 쌓이면 큰 차이가 됩니다. 처음 서울대 갔을 때 외고 출신애들이 일반고 출신 애들보다 시험을 잘 받듯이, 처음 사회에 나올 때 서울대 애들이 연고대 애들보다 일을 더 잘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만 그렇다는 겁니다. 근본적인 능력에서 나는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대학교라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발생한 차이인 만큼 동일한 환경이 만들어지면 격차가 줄어들고 평준화가 이뤄집니다. 근데 이때는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가 되는 거 같아요. 확실히 돈을 내고 다니는 곳이랑 돈을 받고 다니는 곳은 달라요. 돈을 받는 곳에서는 하향평준화가 일어나기 힘듭니다. 돈 주는 사람이 용납하지 않거든요.


연고대 출신분들이 제 말을 들으면 좀 기분 나쁘실 수도 있는데 절대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세요. 개개인으로 보면 서울대 출신보다 훨씬 뛰어나신 연고대 출신분들 많습니다. 사실 서울대랑 연고대를 누가 우월하냐고 따지는 것 자체가 억지죠. 제가 봤을 때는 다 같습니다. 연고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도요. 공부하는 머리랑 일하는 머리는 다르니까요. 다만 통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겁니다.


이 질문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마지막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서울대 자체에 대한 자부심보다 서울대를 들어가는 과정에서 제가 했던 자기관리, 인내,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깨닫는 것 등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큽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겪는 입시라는 인생의 관문을 성공적으로 넘은 거니까요. 그 자부심이 결국 저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즐겼고, 그렇게 과정을 즐기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자부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건 학교에서 그랬던 것과는 달리 사회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서 극명하고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기 힘든 구조 탓도 있습니다. 학생일 때는 정기적으로 시험이라는 것이 있었고 내가 공부를 하면 공부하는 만큼 점수가 나왔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결과도 결과지만 그 과정에 대한 성취감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런 피드백을 경험하기 힘들어집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단 월급을 받는 데에만 한 달이 걸리고, 공식적인 평가도 1년에 한 번입니다. 심지어 월급은 내가 잘 해서 준게 아니라 관두지 않았기 때문에 주는 보상입니다. 버텼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거라고 하다지만 아무래도 성취감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제조업 회사처럼 실제로 돈은 사람이 아닌 공장이나 장치가 버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든 과정이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지는 거죠.


근데 그 이유가 1이라면 제가 수능 이후 10년 동안 그만큼 성취감을 느낄만한 일에 도전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99입니다. 대학교를 들어갈 때는 제가 외고를 나왔다는 것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 외에는 어떤 혜택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대를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제가 열심히 해서 해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이후에는 뭐를 해도 서울대의 덕을 본 것 같은 찜찜한 느낌이 들어요. 제가 사회생활에서 받은 기회들이 내가 서울대를 나왔기 때문이다!라고 할 순 없지만 서울대 아니었어도 할 수 있었다!라고도 할 수 없는 거죠. 제가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성장해서 뭐를 해냈다는 느낌을 받은 게 없습니다. 도전다운 도전 없이 알게 모르게 서울대가 안겨주는 혜택 안에서 안주하면서 살아왔던 거죠. 그래서 누가 날 소개할 때도 아직 서울대밖에 없는 거고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반성하게 되네요. 열심히, 아니 좀 다르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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