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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Dec 08. 2021

일을 잘한다는 건

작년에 회사에서 주최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멘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직군(구매, 인사, 영업, 회계 등등) 별로 뽑힌 멘토들이 한두 달에 걸쳐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나누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 같다. 나름 따로 카페도 만들고 다른 멘토와 함께 시간을 맞춰 공동 간담회도 해보고 예전(무려 10년도 전...)에 썼던 자소서도 주고 자소서 쓰면 첨삭도 해주겠다며 이것저것 해봤지만 멘티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내가 준비 안된 멘토이기도 했지만 (의미 없는) 변명을 조금 하자면 멘티들이 자신이 원하고 궁금해야 하는 것들을 말해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 자신도 몰랐다고 해야 할까. 하긴. 나도 대학생 때 그랬다.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질문도, 요구사항도 없었다.


(*) 코로나로 인해 모든 프로그램은 비대면 온라인 화상 미팅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간담회 때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기와 함께 공동 간담회를 열었다. 내가 맡은 멘트들과 동기의 멘티도 함께 했다. 그날도 어떻게든 멘티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어찌어찌 마지막 간담회가 끝나갈 무렵 멘티들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제 불문하고 질문하라고 말했다. 연애, 재테크, 구내식당 메뉴, 육아의 고충(?) 등 아무거나 다 던지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어떤 신입사원을 좋아해요?"


멘티 중 한 명이 물었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중요한 전제부터 먼저 깔았다.


"이건 제 의견일 뿐이니까 절대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저는 회사에서는 일만 잘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다른 건 거의 바라지 않고 일 잘하는 신입이 제일 좋아요. 일 잘하면 회식을 안 오든, 출퇴근할 때 나한테 인사를 안 하든(내가 안 함 ㅋ), 아니면 근무시간에 놀러 가든 상관하지 않아요."


동기의 답이 바로 이어졌다.


"저는 달라요. 신입이 일 잘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일적인 면에서는 잘할 수 있는데 한계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보다는 저는 태도를 더 많이 보는 거 같아요. 지각하지 않고, 인사 잘하고, 밝고 싹싹하고 그러면 일은 잘 못해도 좀 좋게 보이는 것 같아요."

 

모니터 안 화면에는 멘티들이 알듯 말 듯 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 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저보다는 제 동기와 비슷할 거예요. 좋고 나쁜 거, 맞고 틀리고는 없고 회사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입사하게 되면 본인의 선배가 뭘 좋아하는지 잘 파악해서 눈치 있게 하면 될 거 같아요."


더할 나위 없는 깔끔한 티키타카였다 생각하며 다음 질문이 있나요? 질문하려는데 아까 그 멘티의 질문이 이어졌다.


"일을 잘한다는 게 어떤 건가요?"


아니.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말문이 막혔다. 너무 방대한 설명이 필요한지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한 시간 넘게 간담회를 한 뒤였고 멘티들도 저녁을 먹으러 가야 했고 방 문밖에서는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일을 잘한다는 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맡은 일은 스스로 결론을 짓는 거예요. 틀려도 상관없어요. 맞으면 좋겠지만 틀려도 그 자체로 누군가가 생각할 거리를 주거든요. 결론이 있으면 보완하면 돼요. 게다가 신입이니까 더더욱 틀릴 수 있죠. 신입이 틀렸다고 뭐라 하면 그건 신입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거예요."


화면 속에서 멘티가 표정으로 '응? 끝이에요?' 말하는 것 같았다.


"신입이 들어오면 제가 항상 해주는 말이 있어요. '일은 몰라도 할 수 있다. 알아야지만 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물론 잘 알면 좋겠죠.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들은 잘 몰라도 일을 해내요. 게다가 잘 안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만약 잘 알수록 일을 잘하면 애초에 신입은 석박사들만 뽑아야겠죠. 그들 연봉이 훨씬 높아야 하고. 우리 세상은 나이가 든 사람이 무조건 연봉도 높아야겠죠. 근데 그게 아니잖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 대화를 하다 보면 사람의 표정만 보면 이 사람이 대화에 집중하는지, 이해를 했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확실히 높아졌다(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해줄 수 있는 말은 다 해준 거 같은데 여전히 대학생 표정이 아리송하다. 도와달라는 의미에서 동기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지만 화면 속 동기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듯했다. 같이 일하면서 직접 보여주면 그나마 이해가 될 텐데 그럴 수 없어서 조금 더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확실한 건 아무리 많이 아는 사람도 모든 걸 알 수는 없다는 거예요. 맞잖아요.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은 있을 수 없어요. 신입이든 과장이든 팀장이든 사장이든 누구든지 일할 때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 시작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 해요. 근데 또 우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정보가 많으면 좋겠지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일은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바로 가설을 세우는 능력인 거 같아요. 처음 좋아하는 사람을 꼬실 때 생각해보면 될 거 같아요.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가 아니라면 잘 모르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럼 한정된 상대방의 모습, 말, 행동들을 바탕으로 이건 좋아할 거 같아, 저건 싫어할 거 같아 가설을 세우고 판단을 하잖아요. 회사에서 일도 비슷해요.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서 결론을 내리고 실행해서 검증까지 하면 끝. 그걸 끝없이 반복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다. 멘티들의 시야가 화면 밖으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혹시 답변이 됐나요?"

"음... 잘 모르겠어요..."


역시 요즘 애들은 솔직하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일단 된 거다.


"미안해요... 제가 설명을 잘 못해서 그래요... 회사 들어오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예요... 사실 경험해 보지 못하면 잘 모르는 게 맞아요..."


마지막 말에 동기가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질문을 끝으로 몇 주간 이어진 멘토 프로그램은 끝났다. 사실 애초에 간담회 멘토로 지원을 한 건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 또 다른 이야깃거리들이 생겨 그것들을 글로 써볼 생각이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대학생들은 프로그램 내내 함구했고 나는 그들이 듣고 싶은 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또는 할 수 있는 말만 했다. 애초에 온라인으로만 진행하기에 지원했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같은 공간에서 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로부터 거의 15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겨울이라 그런가. 불현듯 그들이 생각났다. 아니, 어쩌면 10여 년 전 겨울, 마음 조리며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내가 그리웠는지도. 어쨌든 다들 원하는 회사에, 또는 만족할 만한 회사에 취업했는지 모르겠다.  살고 있겠지 (잘 모를 때는 그냥 긍정적 띵킹. 커즈 아임 긍정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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