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까지 이어진 회식 바로 다음 날이었던 지난 목요일, 부산으로 당일치기 출장을 다녀왔다.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닌 거 같은데 하루 종일 제정신이 아니어서 출장을 어떻게 다녀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출장 다녀온 지 벌써 5일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출장(+회식)의 피로로 골골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머리는 기억 못 하더라도 몸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9월 복직 이후 네 번째 출장이었다. 2-3주에 한 번씩 다녀온 셈이다. 코로나가 다시 심해져서 취소될 것 같지만 다음 주와 그다음 주에도 출장 계획이 있었다. 팀에서는 내년에는 아예 부산에 간이 사무소를 차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온다. 그렇게 되면 거의 매주 출장을 가게 될 것 같다.
10년이 좀 넘는 회사 생활 중에서 손익 다루던 팀에서의 3년을 빼고는 책상 앞보다는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중 1년은 제주도에서 사업개발을 하는 업무를 해서 한 달에 서너 번 제주도 출장을 다녔다. 당일치기 제주도 출장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에피소드도 많다.
제주도민들과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업무였던 만큼 사람 만나는 게 일이었다. 이십 대 후반이었던 나는 제주도의 사오십 대 오피니언 리더들과 주로 만났다. 실제로 모든 제주도민들이 술을 많이 먹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술을 많이 먹었다. 한라산 소주를 '그라스'로 마셨고 내게도 '그라스'로 한잔하라고 권했다. 백 번 마다하다가도 분위기에 휩쓸릴 때면 어쩔 수 없이 그라스 소주를 원샷하곤 했는데 그런 게 기억나는 것만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낮부터 진탕 술을 먹고 제주에서 서울로 오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이륙 준비를 마치고 막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급하게 그분이 오신 것이다. 참을 수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비행기 맨 뒤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자리를 일어나는 동시에 등 뒤에서 "자리에 앉으세요!" 하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그때 자리에 앉았으면 난 아마 지금쯤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모든 인연을 끊고 말이다.
화장실에서 급하게 오신 그분을 보내드리면서도 비행기 바퀴 굴러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문밖에서는 승무원이 빨리 나오라고 소리 지르며 문을 마구 두드렸다. 어떻게 빨리 나가냐. 그렇게 빨리 나갈 거면 그렇게 급하게 들어왔겠냐. 울부짖고 싶었지만 최대한 그분을 빨리 보내는데 집중했다. 다행히 상황(?)은 빨리 종료됐고 비행기 이륙을 너무 늦추지 않는 선에서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지만 더더욱 이 사건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건 거짓말 안 하고 그날 화장실 문을 두드렸던 그 승무원이 그날 전은 물론이고, 그날 이후도 통틀어서 내가 봤던 승무원들 중에서 가장 이뻤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비행기 타는 날에는 물도 잘 마시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길어졌다... 쓴 게 아까워서 지우진 않겠다.)
제주도 출장을 항상 같이 다니던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 선배는 비행기는 무조건 대한항공만 타고 그중에서도 절대 작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서울-제주를 오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는 737, 747 두 가지가 있었다. 737 비행기가 대부분이었고 747은 하루에 몇 대 없었다. 선배의 철칙에 따라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747 운행시간에 맞춰 출장 스케줄을 짜곤 했다. 선배는 작은 비행기는 너무 많이 흔들려서 싫다고 그랬다. 선배의 말에 킥킥대고 웃었었는데 747만 타다가 737을 처음 탄 날, 나도 앞으로는 747만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부산 출장을 다닐 때마다 비행기를 타는데 서울-부산 구간에는 작은 비행기만 있는 것 같다. 부산으로 세 번째 출장을 가는 날, 유난히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다. 함께 출장을 갔던 팀원 세 명도 그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착륙하고 게이트를 나와 넷이 만나자마자 모두 비행기 흔들린 이야기밖에 안 할 정도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중 한 명은 옆에 있던 사람이 무서워서 울먹울먹 거리는 걸 보고 더 겁이 났다고 했다. 앞으로 출장 갈 일이 많은데 점점 비행기 타기 싫은 이유가 많아진다.
방금 이야기한 세 번째 출장은 최고의 출장이었다. 1박 2일 일정의 출장을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 갔는데 내가 최고참이었다. 가는 사람들이 모두 후배여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성격과 조합도 좋았다. 출장 스케줄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만들면서 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뭘 먹고 뭘 볼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출장 가서는 이동 중에 가까운 곳에 지역 명소가 있으면 잠깐 선회해서 콧바람을 쐤다. 숙소는 해운대에 가장 해운대스럽지 않은 이름을 가진 호텔을 잡았고 저녁 식사는 무리하지 않는 예산 안에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횟집에서 먹었다. 물론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횟집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일은 소홀히 했냐. 그것도 아니다. 중요한 고객사와 미팅도 했고 이제까지 우리 회사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부산항 터미널 현장 방문도 했다. 멤버 간의 대화가 잘 통해 시간을 정해놓고 '지금부터 언제까지 일하자' 하지 않아도 이런저런 대화 속에서 업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낮잠만 안 잤지 완전히 여행과도 같은 일정 속에서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성과까지 이뤄낸 것이다. 멤버, 분위기, 숙소, 식사, 일까지 만족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주둥이만 나불나불 대면 후배들이 알아서 모든 걸 준비해 주는 위치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출장을 다녀오고 한 2-3일 동안 마음이 허했다. 허무했고 공허했다. 며칠 뒤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어설프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뚜렷한 목표와 절박함을 갖고 사업이든, 작가든 뭐든 해보겠다고 퇴사하면 나 말릴 거야?"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날벼락을 얻어맞은 아내의 미세하지만 큰 동공 지진이 어둠 속에서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이제 좀 정신 차리고 회사 다니나 싶었을 텐데 복직하고 두 달도 안 돼서 이런 말을 할지 몰랐겠지. 훗. 긴장해라.
한참을 생각하던 아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웃음을 지었다.
"내가 말린다고 말려져?"
내가 당장 퇴사한다는 것도 아니고 결국 못 말릴 거면 멋지게 안 말릴 거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아내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방에서 나오는데 뒤에서 아내가 소리 질렀다.
"진짜 퇴사할 거야!?!?"
그날 저녁 너무나도 좋았던 출장의 추억이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함의 이유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힘들 정도로 좋았던 출장이었다. 이 출장이 어쩌면 이 회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경험 자체로는 너무 감사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첫 번째 육아휴직 전에는 누구보다 회사 생활에 만족도가 높았다. 적극적으로 갈구하진 않았지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켜잡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팀에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업무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원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팀과 업무를 거치고 승승장구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소문을 들으며 당연히 내면에는 나도 그들과 같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퇴사를 다짐했다가 육아휴직을 두 번 했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진급 누락이 있었다. 몇 년 후배들이 나보다 먼저 진급을 했고 연봉도 날 앞질렀다. 별로 신경이 안 쓰일 줄 알았는데 막상 두 눈으로 보게 되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굳이 돌아와서 이런 꼴을 보나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복직이 가장 쉬워도 돌아왔지만 돌아올 때랑 돌아와서랑 마음이 달라지더라.
열심히 할수록 손해라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출장을 다니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내가 왜 굳이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지? 내가 왜 고생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일을 안 하면서 막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남들보다 일을 안 하고 편하게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주체성을 갖고, 가능하다면 보람을 느끼며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 그러고 싶어도 아무런 동기부여가 없다. 동시에 날 앞지른 후배들이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며칠 전 갑자기 잡힌 출장으로 저녁식사 약속이 파투 난 회사 친구에게 미안하니까 커피 한 잔 사겠다고 불렀다. 친구가 날 보자 모자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너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니야? 다시 회사에서 잘해보려고 하는 거 같아."
참고로 말하면 이 친구는 중학교 동창인데 같은 건물에서 일한다. 첫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왔을 때 나에게 "너 임원 되기만 해 봐. 너 같이 회사 막 다니는 새끼들이 오히려 잘 되고 그러더라. 난 회사에서 졸라 고생했는데 임원 안되고 넌 임원 되면 졸라 짜증 날 거 같아."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말만큼 진심으로 느껴진 말이 없었던 것 같아 한참을 웃었다. 오랜 기간 서로를 알아온 만큼 회사를 다니는 내 태도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충 '몸만 조금 고생하면 출장만큼 생색내기 쉬운 게 없다. 사무실에 있으면 잘 모르지만 현장에는 무조건 사건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특히 나처럼 일 없는 애들은 출장이라도 다녀야 한다.' 대답하고 넘겼지만 속으로 '역시 이 자식 촉이 있구먼'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선택'을 내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회사를 나가지 않는 이상 '얼마나 열심히 일할지'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