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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Dec 25. 2021

일의 기쁨과 슬픔

신입사원 때 나에게 "회사 다니는 거 재밌나?"라고 물어본 선배가 있었다. 바짝 얼어있을 때라 재미없어도 재미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재밌다고 할 것 까진 아니지만 다닐 만합니다."

"다닐만하다고?"

"네."

선배는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돈 내고 다녀야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는 심심해서 어리바리 신입을 놀려먹고 싶었던 것 같다.)


선배의 말처럼 어떻게 회사가 재밌냐, 재밌으면 그게 회사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회사 다니는 재미를 느끼던 시기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성장하는 재미도 있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재미도 있었다. 통장에 월급이 꽂히는 재미,  월급을 탕진하는 재미, 꾸역꾸역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운이 좋게 보너스가 많이 터져 갑자기 목돈이 생기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번도  자체에서 재미를 느껴본 적은 없다.


26살에 취직해 어느덧 10년 넘게 회사원으로 살았다. 그동안 똑같은 업무(job)를 2년 연속으로 하지 않고 10년 동안 매년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 이제껏 열 종류가 넘는 일을 경험한 것이다. 그 많은 일들 중에서 단 한 번도 재미를 느껴본 업무가 없는 것이다.

  

‘회사일’이 ‘내 일’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있는 돈 없는 돈 수천만 원 끌어다가 사업도 해봤고 대학 시절 막연하게 가졌었던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진지하게 글쓰기에 임한 적도 있었다. 사업에도 글쓰기에도 잠깐잠깐 몰입하는 순간들은 있었지만 역시 재미를 느낀 적은 없었다. 회사일도, 사업도, 작가라는 꿈도 나에겐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해내서 기쁘거나 해내지 못해서 슬퍼하지 않았다.


(**) 소설에 심취해 대학시절을 보냈다. 엄밀히 말하면 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열광했던 소설과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과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고 싶은 건 다르다.

 

살면서 재미를 느끼거나 좋아하는 흥밋거리가 거의 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도 별로 없었다. 특별한 꿈도 열광하는 대상도 없었다. 해야 하는 일들 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히 하며 살았다.


다만 재미를 느껴본 게 없지는 않았는데 그건 바로 공부였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광의에서의 공부가 아니라 학교에서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를 의미하는 협의에서의 공부가 재미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넓은 의미로서의 공부, 그러니까 무언가를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인 줄 알았다.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게 인생의 중요한 재미로 여겼고 그런 걸 느끼지 못하는 때마다 인생이 정체되어 있고 즐거움이 없다고 느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업, 글쓰기, 그림 배우기 등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나는 절대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배우고 싶지 않다. 잘하고 싶다.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도 빠르게.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좋은 성적을 내는 좁은 의미에서의 공부를 잘했다. 열심히 하면 대체로 좋은 성적이 따랐다. 그래서 재밌었다. 나는 잘하는 걸 재밌어하는 사람이었다. 한 학기에 두 번씩, 시험을 보면 바로바로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런 협의로서의 공부는 본업이 될 수 없다. 공부와 관련된 일, 가령 교수가 되면 평생 공부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해다. 세상엔 공부가 본업인 직업, 그러니까 공부만 해도 돈을 주는 직업은 없다. 협의로서의 공부를 본업으로 가질 수 있는 특권은 오로지 학생만이 가질 수 있고 우리는 누구나 경제적인 독립체가 되기 위해서는 학생의 신분을 졸업해야 한다.

 

회사에서의 일은 그런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드라마, 영화, 만화 같은 데서는 회사원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서 으샤 으샤 해서 드라마틱한 성과물을 만들어내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기대하기 힘들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회사에서의 일이란 어떠한 드라마틱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내가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이 만족할 때까지 그의 눈치를 보는 지루한 과정에 가깝다.

 

회사에서 개인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받는 인사 평가인데, 그건 학창 시절의 시험과는 다르다. 일을 잘한다고 해서 평가가 좋은 것도 아니고 일을 못 한다고 해서 평가가 나쁜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의 평가는 기준이 모호하고 평가권자의 취향을 많이 탄다. 그래서 더욱 그 평가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상사(평가권자)의 인정을 받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남의 인정보다는 자기만족으로 공부를 한 나로서는 평가권자의 인정을 받는 데에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일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해도 괜찮았다. 인생에 일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이십 대 때는 친구들과 놀고 연애를 하는 게 중요했고 삼십 초반에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게 주관심사였다. 결혼 후에는 아이를 가지는 게 중요했다. 내 앞에 달성해야 할 '인생의 퀘스트'에  정신이 팔려 일이 재미없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회사와 일은 그 퀘스트들을 무사히 마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퀘스트들을 다 해치우자(물론 아직 아이들이 어려 갈 길이 멀고 멀었지만) ‘나’라는 사람에 집중하게 됐다. 아이까지 낳으면 인생의 주요 퀘스트들이 ‘끝’이고 그저 'Live happliy ever after'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당연히' 그런 건 없었다. 인생의 가장 큰 퀘스트(=육아)는 ‘또 다른 시작’이었고 이 퀘스트는 내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육아라는 엄청난 퀘스트를 해가기 위해서는 나를 지탱해 줄 다른 무언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잠시만이라도 육아에서 철저히 자유로워져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취미에서 그 에너지를 얻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살면서 좋아하는 게 다양하지 않았고, 그나마 즐겨하던 운동은 2번의 십자인대 수술,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로 못 하게 됐다.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으려 해 봤지만 그 자체가 일이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새로운 습관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취미라도 하루에 최소 10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에 비할 수가 없다. 취미가 본업이 되지 않는 이상(일명 덕업 일치) 회사를 다니든 사업을 하든 작가가 되든 일상의 가장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제야 진지하게, 온전히 나라는 사람이 뭐가 재미있을까, 뭐가 하고 싶을까, 무슨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당장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지금부터 준비를 해서 10년, 20년 뒤에 잘하기도 하고 재밌게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게 됐다.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테슬라의 아버지이자 도지 코인의 계부인 일론 머스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망설이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자기 자신에게 앞으로 10년간 이루어 낼 계획을 6개월 만에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자. 물론 그 계획은 실패하겠지만, 당신은 그 일을 이뤄내는 데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그냥 인정한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뤄낼 것이다.”

 

나는 아직 실패할 계획도 없지만, 서른 중반에 돼서야 앞으로 이루어내고 싶은 계획이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10년 뒤에는 제대로 된 직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보고 싶다. 열심히 고민해서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본업으로 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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