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사를 결심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배터리 사업을 하는 회사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만큼 하루가 다르게 사업 규모도 커지고, 사람이 늘어나고, 조직도 새로 생겨난다. 그만큼 새로운 일도 계속 생긴다.
환경이 그렇기에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조직 간 / 인력 간 업무 분장'이다. 회사 용어로 R&R(Role and Resposibility) 정립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매우 점잖게 들리지만 실상은 아래와 같다.
"이건 내 일 아니다. 네가 해야지 왜 나한테 하라고 하냐. 나도 하기 싫고 너도 하기 싫으면 이 일 할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 아니면 당장 급하지 않으면 처리하지 말고 묵히자. 급한 사람이 결국 할 거다."
메일로, 전화로, 메신저로, 회의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매우 신사적으로 내 일이 아님을 어필하는 게 업무의 5할이 넘는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업이 확장하는 단계에서 체계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했지만 난 이 과정이 너무나도 소모적이었고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일을 하러 다니는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논리를 만드는 게 일이라니. 필요하지만 나한테는 맞지 않은 옷과 같았다.
그럼에도 오랜 주입식 교육으로 의문을 갖지 않고 문제를 푸는 데 숙련된 나는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일단 주어진 임무이니 최선을 다해 수행을 했다. 고민은 괜히 남 일을 내가 더 해주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는 정신무장으로 열심히 일을 쳐냈다. 무엇보다 남들은 모두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만 가만히 있으면 결국 나한테 일이 다 몰리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만 했다. 일이 많아지는 것도 싫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책임지지 못 할 일을 떠 안는 게 더 싫었다.
그런 비생산적인 R&R을 매일 같이 해오던 올해 2월. 내가 회사를 관두기로 결심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2월 중순 우리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려 며칠간 회사 업무에서 빠져있었다. 완치는 아니지만 대충 회사 메일함은 확인해 볼 수 있겠다 싶을 즈음 회사 컴퓨터를 켜고 오래된 메일부터 확인을 해나갔다. 작년 말부터 우리 팀과 R&R 갖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부서에서 메일이 하나 와있었다.
"왜 우리 팀에서 요청을 했는데 제대로 이행을 안 해주시나요?"
그 메일을 읽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났다. 메일을 보낸 이가 요청한 그 일은 애초에 그 팀의 일이었는데 그 팀의 요청으로 우리가 지원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팀에서 왜 제대로 안 하냐고 뭐라 하다니. 바로 '무슨 개소리냐' 회신을 하려다가 일단 쌓여있는 다른 메일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얼마 안 있어 내 팀 동료가 '개소리 메일'에 회신한 메일을 찾았다.
"요청사항을 제대로 알려주시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음? 이건 뭐지? 얘는 이 상황이 화가 나지 않는가?
바로 동료의 메일을 받아 팀장이 업무 처리 방향에 대해 임원에게 메일이 있었다.
"R&R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영역인데, 일단 급한 상황이니 업무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다시 R&R 논의를 하겠습니다."
엇? 이건 또 머야? 이렇게 쉽게 이 상황을 받아준다고?
"우리가 무슨 총무나 인사도 아닌데 당연히 우리보고 말하는 게 기분이 나쁘네요. 그래도 지금 상황이 급하니 이슈 생기지 않도록 잘 대응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팀장의 메일에 회신한 임원의 메일을 보니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대우를 받았는데 나만 화를 내고 있구나. 내가 회사를 나갈 때가 됐구나.'
작년에 두 번째 육아휴직을 복직하고 나서부터 계속 했던 고민이다. '왜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지? 내 일도 아니고 회사 일일뿐인데? 내가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게 맞나?' 내 마음대로 회사 일이 풀리지 않자 막 화가 났다.
당연히 정신병자처럼 무턱대로 화가 난 것도, 그리고 그 화를 억제못하고 망나니처럼 군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고생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고생하는 사람들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회사에 이익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악이 되는 의사결정에, 내가 피해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 처한 동료들에게 같이 이 상황을 막자고 그랬다*. 동료들은 정확히는 모르겟지만 그 상황이 뭔가 틀렸고 대응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는 했지만 실제로 행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죠. 그게 회사와 리더의 결정인데. 좋게 좋게 생각합시다.'하는 반응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 안에 화가 가득 차 있다는걸. 내 안에 화가 들어선 건 꽤 오래전부터다. 내가 첫 번째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 있었던 팀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과 불공정한 평가, 그로 인한 평가 누락 등을 겪으면서 쌓인 마음의 상처가 내 안에 화가 가득 차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5년도 더 지난 지금도 그 내상이 아직 치유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내상은 평생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상처일 수도 있다. 한 번도 화를 안 내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화를 내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불합리한 상황을 좋게 좋게 넘기려는 회사 사람들을 욕하진 않는다. 그들 앞에선 말하진 않았지만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하지 못하고 편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그들의 행동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고 나 또한 나에게 피해가 아니라고 느끼는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 비겁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차마 옹호하진 못 하지만 절대 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본인들은 괜찮은데 옆에서 화를 내고 있는 내가 불편했을 수도 있는데 참아준 몇몇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논점은 '나는 화를 내는 데 왜 너는 화를 안내느냐.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화를 내는 것도, 동료들이 화를 안 내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누구는 괜찮다고 느끼고 누구는 그 상황이 견디지 못할 만큼 싫은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는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더 화를 내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는 일을, 예전이라면 나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일을 더 이상 괜찮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회사에서 생긴 화라고 그 화를 회사에서만 내는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집에서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강아지에게 고양이에게 내지 않아도 될 짜증과 화를 낼 때도 있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산다. 가정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회사에서 풀기도 하고, 반대로 회사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풀기도 한다. 그래도 된다 안되다를 떠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고, 선을 넘지 않으면 서로 포용해 주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회사에서 얻는 화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
회사를 다니면 내 안의 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지난 5년 동안 증명이 된 셈이다. 이제는 회사를 나가도 이 화가 사라지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회사를 나가는 건 너무 무섭지만, 이 화를 안고 살아가는 건 더 싫다.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건강해지고 싶어서 회사를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