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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May 02. 2022

퇴사 이야기 - 자유의지


“넌 어딜 가든 뭘 하든 잘할 거고 회사를 나가도 성공하리라 믿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만약에 네가 하는 일이 잘 안 되고, 나중에 재취업도 안된다고 쳐. 그때 드는 후회를 넌 어떻게 감당할래?


퇴사하겠다는 나를 친한 동기 형이 말렸다. 가족을 제외하고 무작정 퇴사를 말리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때 후회되면 감당 못 할 거 같아.”


후회 안 하겠다가 아니라 너무나 당당하게 감당 못 하겠다는 내 말에 오히려 형의 말문이 막혔다.


“나중에 결과가 안 좋으면 지금 내가 얼마나 퇴사를 하고 싶었는지,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오직 '왜 퇴사했을까' 후회할 거 같아. 나중에 후회 안 하려고 내가 요즘 무슨 짓까지 하는지 알아?”
“무슨 짓 하는데?”

“지금 퇴사 안 하면 돌아버려서 자살할 수도 있다. 이 말을 주문처럼 외워.”


내 말에 형은 헛웃음을 쳤다.


“미친놈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형. 내가 진짜 자살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도 나중에 내가 후회할까 봐 무서워서 그래. 내가 지금 얼마나 고민했는지 잊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때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은 거야. ‘넌 그때 퇴사 안 했으면 아마 몸과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져서 정말 큰 일 났을 수도 있어.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하고 말이지.”

“그래. 네가 단단히 결심한 것 같으니까 내가 너한테 퇴사하지 말라고는 안 할게. 퇴사해. 근데 너 스스로 후회할 거 같아서 그딴 이상한 주문까지 외울 정도면 조금만 더 회사 다니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고 퇴사해도 되지 않냐? 뭘 그렇게 급하게 회사를 나가려고 하냐고! 설렁설렁 다니면서 월급도 받으면서 뭐 할지 생각을 더 해보라고!”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내 퇴사를 뜯어말리는 형의 모습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과 감동 같은 걸 받았다. 나도 모르게 이 형은 뭔데 나한테 내 퇴사를 양보한다는 말을 하지? 생각이 들어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형. 형이 우리 가족보다 더 심하게 날 말리는 거 같아.”

"그러니까 너무 급하게 퇴사하지 말라고!!"


사실 그 형의 말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퇴사를 막상 다짐하고 나니 새롭게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분명 있었지만 퇴사 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걱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무게가 확연히 달라졌다. 유독 그런 두려움과 불안이 심해지는 날이면 여지없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인생이 어차피 생각하기 나름이라면,
회사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며, 회사에서 주는 월급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누군 다니고 싶어서 다니나 다녀야 해서 다니지 생각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행복해야 한다가 아니라 더 불행한 미래를 막기 위해 최대한 회사에서 오래 버텨야지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회사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회사 밖의 스트레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더라면.
'나는 왜 살지? 같은 머리 아픈 고민은 가끔만 하고, '오늘 회식 어떻게 빠지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더라면.
퇴사 걱정보다 내일 출근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더라면.
한 마디로 나에겐 퇴사할지 말지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아무리 괴롭더라도 선택권이 있다는 좋은 거야’ 생각하지만 오롯이 내가 하는 선택이기에 그 결과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감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는 현실에 대한 상상들로 지쳐간다. 아예 회사를 관둬야 할 정도로 더 아프거나, 아니면 아예 퇴사를 고민조차 할 수 없었더라면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적극적으로 퇴사를 마음먹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내 자유의지가 아니었다. 내가 영위해온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퇴사를 다짐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게 내 자유의지가 아니었듯이, 어떻게든 회사에 더 붙어있어야지 마음먹는 것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나도 어차피 퇴사할 거 대충 일하면서 월급 받아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단 말이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자유의지가 아니었는데, 퇴사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골치가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나. 인생이 그런 거고 내 인생 내가 책임져야지 누가 책임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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