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눈을 떠보니 오후 2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열을 재보니 38.5도. 살 때마다 고장 나서, 다시는 안 사려고 동네 사람들한테 체온계 동냥하면서 버티고 버티다가, 이번에 유행하는 독감으로 빌리기 눈치 보여 어쩔 수 없이 5번째 산 Braun 체온계는 빨강 빛을 뿜뿜 거렸다. 신형이라 그런지 유독 빨간색이 강렬하다.
목요일부터 몸살 기운이 돌더니, 금요일에는 열이 올라 타이레놀과 인후통 약을 시차 복용을 하루 종일 했지만 그걸로 나을 게 아니었다. 급하게 동네에 영업을 하는 병원을 찾아서 갔다.
"독감 검사 하러 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증상이 어떠냐고 물었다. 열이 이틀 전부터 났고, 몸살 기운이 많진 않지만 조금 있고, 설사도 한 번 했고 등등.
"와이프랑 애기가 독감 확진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은 다 알겠다며 내 콧구멍을 번갈아 쑤셨고, 눈물이 핑 돌았다. 코로나 검사 때 쑤셨던 거보다 훨씬 더 코 안이 시큰거렸다. 근 3개월 내 두 번이나 독감을 걸린 우리 둘째 딸이 새삼 생각났다. 가엾은 것. 이 아픈 걸 도대체 몇 번이나 했을꼬.
"확진입니다."
3분 정도 대기하니 결과가 나왔다.
"근데 줄이 상당히 옅네요. 완전 극 초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쩌면 어제 오셨으면 확진으로 안 떴을 수도 있어요. 지금 증상도 정확히 말하면 독감 증상이 아니거든요. 콧물 줄줄 나고 기침 난리 나고 해야 하는데 지금 열 38도인 거 빼고는 특별히 증상이 없어요. 아마 집에 확진자가 없었으면 안 오셨을 것 같은데 집에 확진자가 있어서 바로 오셔서 확진받으셨다고 보면 됩니다. 감기약이랑 같이 독감 약도 드릴 건데, 아마 빠르면 내일이면 아픈 증상은 대부분 사라질 거예요. 그때는 감기약은 드시지 마시되, 독감 약은 12시간 간격으로 10번 꼭 다 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바이러스가 다 죽어요."
철썩 같이 믿었다. 하루만 아프면 안 아플 거라고. 아니었다. 그날로부터 꼬박 5일을 아팠다. 극초기에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5일 동안 지속됐다. 그리고 증상이 사라진 이후.
갑자기 억울한 게 생겼다. 주말에 확진을 받고 나서 병원에 확진서를 받으면서 순간 생각했다.
'주말에 확진받았는데, 병가 받을 수 있나?'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한 달 사이에 독감 확진자가 두 명이나 나왔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그들이 모두 독감으로 병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눈여겨보지는 않아서 정확한 규정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1n 년 간 조련된 회사원으로서 토요일 확진을 받으면 병가를 받기에 애매한 상황이 생길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몸이 아픈지라 만사가 귀찮았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확진서를 받았다.
"어떡해요. 병가는 확진일자 기준으로 주말 포함해서 이틀이에요. 연차 쓰여야 해요. 저한테 미리 물어보지 그랬어요!!"
생각보다 오래된 증상으로 월요일에 회사를 빼먹은 나는, 회사 사람들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보다 그들이 더 안타까워했다. 병가 아까워서 어떡하냐고. 연차 아까워서 어떡하냐고.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그랬는데.
아픈 게 다 낫고 나니까 갑자기 병가 이틀 못 받은 거랑 그 와중에 내 연차까지 쓴 게 아까웠다. 결과적으로 난 3일의 휴가를 날려 먹은 게 아닌가. 월요일에 다시 한번 병원에 가서 확진서만 다시 떼 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것 또한 그때는 '짜치는' 거 같아서 안 했는데. 왜 안 했을까 하며 과거의 나를 원망하여 억울해해 했다.
그러다 그 억울함을 토로해야만 싶어서 팀 단톡방에 말해버렸다.
[나] "저.. 제가 너무 억울해서 그런데요. 제가 이차저차 해서 휴가를 3일 까먹어서요. 당분간 5시 50분에 퇴근할까 하는데요."
[사람들] "ㅋㅋㅋㅋ/하하하하/호호호호/키득키득"
[팀장] "40분에 나가셔도 됩니다. ^^"
[나] "아플 때는 건강 밖에 신경 쓸 게 없지만, 안 아프면 건강 말고는 다 신경 쓰인다는 말은 정답이었습니다."
[후배]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요?"
같은 동지인 팀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에게 더 일찍 나가라고 독려(?)를 해줬다. 고맙고도 얄미운 사람들. 자신들 근태 아니라고 말이야.
[후배] "다섯 시 오십 분인데요? 안 가세요?"
팀 후배가 퇴근 10분 전에 왜 안 가냐고 메신저가 왔다. 메신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사무실을 한 바퀴 스캔 뜨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내 대각선에 앉아 있는 본부장님이랑 눈이 마주쳤다.
[나] "방금 본부장님이랑 눈 마주침."
그렇게 6시 정각에서야 자리를 칼같이 박차고 나왔지만, 붐비는 엘베를 3대 보내고 결국 6시 5분이 다 돼서야 건물 1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항상 건강할 때 건강에 감사하고, 회사에서 받아먹을 수 있는 휴가(뿐만 아니라 모든 것!!)는 다 받아먹는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두뇌를 가진 회사원이 되도록 하자.
난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