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곰돌이 Nov 19. 2020

딸의 동화 만들기.

마녀가 되어버린 요정.

동화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까? 그리고 공주 이야기를 안 좋아하는 딸도 있을까? 뭐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니 내 조카도 공주에는 별 관심 없는 거 같다. 하지만 우리 딸은 엄청 좋아한다.


주로 아이들이 흔히 생각하는 공주의 이미지는 대부분 디즈니나 요즘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공주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 딸은  대부분의 디즈니 공주 및 여왕 캐릭터를 좋아하면서도,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무서워서"이다. 사실 공주의 삶이란 그렇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얻어내는 것이 바로 성공이요 사랑인 것이다. 비록 대부분의 과거 동화의 결말이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더라도, 왕자를 만나기까지 온갖 고생들을 한 공주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 딸은 공주들의 그러한 인생 여정의 고통을 너무 공감하는 나머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감능력이 대단한 건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주인공에 얽힌 서사도 모르고 배경도 모르고  업적도 모르고 인생도 모르면서 단지 외모로만 좋아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디즈니가 캐릭터를 잘 만들었다는 뜻인가? 이 어린아이들이 벌써부터 외모 지상주의라니 슬픈 일이다.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딸아이가 가져온 종이에는 공주, 왕자, 왕비, 왕, 용, 동화책, 마녀, 요정의 그림과 각 그림 아래 영어단어가 적혀있었고 위에 각 그림과 단어를 사용해서 동화를 만들어보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일종의 영어활동 교재였다. 그렇게 설명을 해주니 딸아이는 주인공으로 대뜸 공주를 골랐다.


"난 그럼 얘로 할래"


"잠깐만, 대신에 어디서 맨날 들어본 거 같은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야 알겠지?"


"그게 뭔데?"


"그런 거 있잖아 왜 공주가 마녀의 사악한 저주에 걸려서 용이 지키는 성에 갇혀있는데 착한 요정이 도와주는 왕자가 용과 마녀를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서 왕과 왕비를 찾아가 인사드리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


딸은 마치 영화 한 편을 스포일러 당한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러면 안되는데?"


"마녀는 무조건 나쁘고, 공주는 무조건 선하다는 고정관념이나 이미 네가 숱하게 읽어본 기존 동화의 기본 구성을 반복하는 건 별로 안 좋으니까."


"고정관념? 그게 뭐야?"


"자 봐봐, 이 마녀가 나쁜 사람이라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벌일 거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 너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등장인물의 구성뿐이야.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은 모두 네가 정하기 나름인 거지. 네가 이 마녀를 이 요정과 친구로 만들면 이 마녀가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이 요정이 선한 모습을 한 나쁜 요정이 될 수도 있는 거지."


"..... 그래서?"


"아빠가 예를 들어서 한번 이야기해 볼게. 사실은, 이 용이 이 요정의 친구였는데 공주가 왕자한테 부탁했어, 용의 심장으로 만든 보석이 가지고 싶다고, 그래서 왕자가 아무 잘못도 없는 용을 그냥 죽인 거지. 그래서 이 요정이 흑화 한 게 이 마녀야."


"흑화가 뭐야?"


"누가 만약에 네가 키우는 강아지 같은 거를 그냥 몸보신하겠다고 죽였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막 화나고 슬플 거 같아."


"그렇게 막 화가 나고 슬퍼서 사람이 복수를 위해서 독해지고 악한 마음을 먹게 되는걸 흑화 한다라고 해. 사람의 인격이 어둡게 변해가는 건데, 보통은 깊은 상실감이나 절망감으로 인해 흑화 하는 경우가 많지."


인물 설정의 예를 들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이미 아이는 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음..... 그래서 마녀가 저주를 걸어서 왕과 왕비가 갑자기 큰 병에 걸렸어. 왕자와 공주가 알아보니까 마녀의 저주로 그렇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고 찾아가서 부탁을 하게 되지."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복수, 저주 클리쉐로 가고야 말았다. 나는 창의력이 부족한 어른이니까.


" 그래서 마녀가 부탁을 들어줘?"


"아니, 마녀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너희가 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죽였으니, 너희도 똑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해 주겠어. 왕과 왕비 둘 중 한 사람만 살려주겠다. 누가 더 너희에게 소중하지? 한 사람을 택해.]


딸아이는 마치 아침드라마를 보시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누가 죽어?"


"글쎄,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그건 아빠도 더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리고 요정이 아니 마녀가 과연 공주가 선택한 사람을 살려줄까? 아니면 [똑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해 준다고 했으니까 공주가 선택한 사람을 죽게 할까? 그렇다면 공주는 살리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


"에이......"


아이는 결말을 듣지 못해 아쉬운 마음과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동화의 흐름에 대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등장인물이 선하든 악하든 누군가가 죽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이미 용은 죽어버렸는걸.)


"빨리 생각해, 나 끝까지 듣고 싶어."


그때 아내가 날 살렸다. 유치원 등원 버스 탈 시간이라며 아이의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이야기의 결말보다 더 중요한 교훈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외투를 챙겨 입고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의 뒤에 대고 열변을 토했다.


"암튼 아가야, 원래 그런 거란 건 없는 거야.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 때는 절대악도, 절대 선도 정해져 있지 않은 거야. 이 세상에는 선 해 보이지만 나쁜 짓을 하는 악인도 있고, 냉정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선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 보이는 모습과 알려진 모습에 단정 지어서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생각을 열어두는 거야. 네가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고, 꼭 공주와 왕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주인공이 꼭 한 사람이 아니라 여려 명일 수도 있는 거야,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기는 했는데, 평소 같았으면 절대악이니, 절대선이니 그런 게 다 뭐냐고 물어볼 아이는 시간이 없어서 나가야만 했다.




첫째가 엄마랑 나가고 난 뒤, 둘째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시키며 둘째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했으면 좋을 거 같아?"


"난 아무래도 슈퍼윙스를 불러야 할 거 같아"


"그래도 왕과 왕비 둘 중에 꼭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음.... 그럼 난 거북이!"


아무래도 둘째가 어젯밤 잠들기 전에 거북이에 관한 책을 읽었었나 보다.


"그래, 일단 옷 갈아입자."


"그럼, 나 옷 입는 동안 슈퍼윙스 딱 한편만 보여줘."


참 일관성 있구나 너는.




혼자 거실에 남아 생각했다. 과연 왕자와 공주는 누구를 선택했을까? 공주는 자신의 욕심으로 용이 죽은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사죄했을까, 그래서 마녀가 된 요정은 용서를 통해 다시 요정이 되고 저주를 풀어 주었을까? 아니면 공주가 선택한 가장 소중하다고 한 사람을 죽게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선택한 사람을 살려주고 남은 사람을 죽게 했을까. 또는 사실은 공주가 누구를 선택하던지 바로 옆의 가장 가까운 사람 즉, 왕자를 죽일 수도 있다.


애초에 사랑 없는 조건부 결혼이었던 공주가 왕자를 선택해 버리고 부모님을 살릴 수도 있는 거고. 아니라면 이럴 수도 있다. 너는 용을 죽일 때 용과 나에게 선택을 하게 했었냐며 선택과 상관없이 왕과 왕비를 모두 죽이고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녀가 되어 계속해서 왕자와 공주와 대결 구도를 이어갔을지도.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마녀를 공격하고, 마법과 검술이 치열하게 오가는 공방 속에서 큰 부상을 입을 마녀가 가까스로 도망 곳에서 짠 나타나는 죽은 용의 알. 알에 금이 쩌저적 가면서 2편을 예고하는 거다.


그럼 이제 2편에서는 어린 용의 어미가 왕자와 공주의 부모의 원수가 되는 셈이니 역시 왕자와 공주가 공격할 것이고 어린 용에게도 왕자와 공주는 어미의 원수니 용과 인간의 전쟁으로 갑자기 블록버스터가 되어버리는 전개. 부상당해 약해진 마녀가 쓰러지고 마지막 힘을 어린 용을 살리기 위한 모성애를 발휘하면서 희생하고 다시 요정이 되며 쓰러진다. 어린 용이 인간들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는 순간 아빠 용 등장! 아 이건 아닌가. 어째 동화를 쓰려는데 자꾸 영화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공주는 왕자를 만나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나는 동화들도 알고 보면 열린 결말이 아닐까 싶다. 일단 왕자가 공주를 데리고 갔는데, 결혼은 안 했을 수도 있고, 결혼은 했는데 매일 부부싸움을 할 수도 있고, (왕자들에 대해 알려진 게 너무 없는 동화가 대부분이다. 성격도, 외모도, 출신도) 둘은 잘 살았는데 아기가 안 생겨서 고민이었다거나 이웃나라가 쳐들어 와서 피난을 가야 했거나, 시민혁명이 일어나서 폐위가 됐거나 뭐 그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동화 :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 또는 그런 문예 작품. 대체로 공상적ㆍ서정적ㆍ교훈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동심 : 어린아이의 마음. (표준국어대사전)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은 이럴 것이다 생각하고 그러니 이런 교훈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동화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 님은 산문집 <연필로 쓰기. 2019, 문학동네>에서 50-60년대 동요에 짙게 베인 슬픔의 정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슬픔과 고통을 소재로 동요를 만들어서 아이들을 쓰다듬어주려 하니까 그 슬픔이 동요에 스며든 것이다. 이런 노래들은 리듬감이 떨어진다." (박정희와 비틀스 p.188) 당시 전후세대 아이들은 배가 고팠다고 한다. 나라를 회복하자마자 전쟁으로 다 불타서 없어지고 가족이 헤어지고 모든 것을 새로 쌓아 올리던 시기, 아이들은 슬펐을까 배가 고팠을까.


모든 게 풍요로운 지금 그 시대 동요를 부르는 아이는 없다. 슬프고 쳐지기 때문일까 가사가 공감이 안되기 때문일까. 동요는 노래라서 시대 따라 아이들 마음 따라 변하는데, 왜 동화는 그대로일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몇백 년이나 내려져온 동화들을 바라볼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교훈과 어떤 상상력으로, 그리고 어떤 감정의 전달을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진짜 아이들의 마음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딸아이의 질문 한마디와 종이 한장은 나를 오전 내내 환상의 세상에 머무르게 했다. 끝없는 상상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 세계. 우리 아이들도 이런 상상의 바다에 빠져서 신나게 헤엄도 치고 잠수도 하고 날아보기도 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째의 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