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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20. 2020

둘째의 언어.

그러면, 사야 돼?

아이는 보통 단어에 대한 개념을 지식적인 암기를 통해서 배워가기보다는 주변에서 부모나 형제가 사용하고 표현하는 콘텍스트 (context: 맥락, 전후 사정, 문맥 등-옥스퍼드 영한사전) 위주로 알아가는 것 같다.




딸이 처음 말을 배울 때는 모든 부모가 그렇게 느끼듯이 영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총명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말을 엄청 빨리 시작했다. 너무 신기해서 당시 내 페이스북 계정에 포스팅했던 게시물을 찾아보니 정확히 만 21개월 20일 정도에 "엄마, 장난감 주사기 엄쩌요(어디 있어요)?"라고 그럴듯한 형태의 문장 구조와 억양을 갖춘 의문문으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발음도 비교적 정확할 뿐만 아니라 "깡충깡충, " "삐뽀삐뽀" 같은 반복되는 단어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말했다.


또 책을 읽어주거나 대화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입술 모양을 유심히 쳐다보며 따라 하고는 혼자서 그 단어를 언제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한 번도 쓰지 않다가 이틀 정도가 지나면 적절한 상황과 문맥에 맞게 그 단어를 말했다. 우리 나이로  살이 되었을 때는 자주 읽어주는 책은 그 내용을 거의 암기했으며, 다섯 살에는 책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책 제목과 페이지를 기억했다가 내가 퇴근하면 꺼내어 와서 짚어내면서 의미를 물어보고는 했다. (한글을 못 읽었기 때문에 책 제목은 커버의 그림과 색깔로, 때로는 글자를 그림처럼 인식하기도 했고, 단어는 그 단어가 쓰여있는 대충의 위치로 기억했다)


자신이 해보고 나서 발음이 틀린 것 같거나, 상황에 맞게 변형이 되지 않는 단어 같으면 말을 안 하고 제대로 습득을 한 후에 대화에 사용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지, 누군가가 틀린 표현을 교정해주면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대신에 좀 자주 칭얼거렸다. 아마 마음먹은 대로 표현이 안되니 답답하기도 했을 테지만, 덕분에 많이 혼났다.


그에 반해, 둘째는 자신이 틀리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틀려도 개의치 않고 자기 편한 대로 말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공룡이름이 그렇듯이 어른들 조차 이름을 발음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파키케팔로사우르스조차 그냥 "박치기공룡"이라고 부르며, 브라키오사우르스는 아무리 교정해줘도 "브라바키사우르스"라고 한다. (도대체 "바키"발음을 어디서 듣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 제대로 발음하는 공룡들도 많다.


또 "앞"과 "뒤"를 혼용해서 쓴다. 예를 들면, 가족끼리 차를 타고 갈 때 자신의 카시트 옆자리 즉 뒷자리로 오라고 할 때 "엄마, 앞으로 와요"라고 하는 식이다. "뒤로 오라고?" 가르쳐 줘도 성질을 내며 "아니! 앞으로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손바닥으로 자기 옆자리를 팡팡 치고 있다)


그런 둘째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러면, 사야 돼?"이다.




둘째에게 있어서,


집에 무엇인가 없다 = 사야 하는 것


이런 공식이 존재한다.


우리는 과소비를 할 형편도 되지 않을뿐더러 시골에 살고 있어서 소비행위를 즐길 수 있는 환경과도 거리가 먼 편이다. 또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바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도 원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쉽게, 자주 사준 적도 없다. 즉 애를 데리고 나가서 뭘 많이 산적도 없고, 뭐가 없다고 해서 바로바로 나가서 산적도 없다. 도대체 얘는 왜 뭘 자꾸 사야 되는 건지 묻는 걸까 너무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말버릇이 생긴 이유가 짐작이 갔다. 주말마다 본가에 가면 아이들이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할 때, 또는 우는 아이들을 달랠 때 어머니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를 주시고는 하는데, 하루는 미리 사두신 젤리가 바닥이 나고 없었다. 젤리를 못 먹게 되자 화가 난 둘째는 엉엉 울면서 젤리를 달라고 했는데 "없어, 없어서 줄 수가 없어. 사야 돼." 이런 식으로 달랬던 것 같다.


아이 나가서 사 와야 한다는 것 산 넘고 물 건너 아주 힘든 여정을 떠나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한동안 우리에게 "사 와야 한다"는 말 우는 아이도 그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너무 단걸 많이 먹어서 아기에게 안 좋을까 봐 일정량만 미리 꺼내 두고 몰래 옷장에 숨겨두신 젤리가 둘째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제 둘째에게는 없는 물건은 사면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정말 구매할 건지, 실제로 구매로 이어졌는지 그래서 사용할 건지는 상관도 없고, 단지 사야 할 정도로 정말 없는 건지 아니면 어딘가 숨겨두고 없다고 하는 건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인 것이다. 그다음 주부터는 본가 집에 들어가면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방으로 가서 인사를 드린 다음 문제의 옷장부터 열고 샅샅이 수색을 한다.


그 후 무엇이든지 없다고 하면 "그러면, 사야 돼?" 하고 묻는 게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어제도 장난감 공룡을 가지고 놀다가 내가 물었다

"아가야 스테고사우르스 원래 다섯 마린데, 하나 어디 갔어? 어딨는지 봤어? 없어졌네?"

"없어졌어. 없네....... 그러면, 사야 돼?"


냉장고를 열었다가 우유가 떨어져서

"여보, 우유가 없네?"

어디선가 튀어나온 둘째가 묻는다

"사야 돼? 그러면?"


오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으니 아이들을 따뜻하게 입히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근데 애들이 그런 옷이 있어?"

하고 말했더니, 옷을 입고 있던 아이가 대꾸한다

"사야 돼? 그러면?"


첫째가 자기가 쓰던 색연필이 다 닳았다며 속상해 하자 옆에서 공룡놀이를 하던 둘째가 위로해 준다

"그러면, 사야 돼."


그리고 자신이 진짜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말한다.

"나가서 사와."




둘째는 안다. 없으면 사면된다. 돈이 없으면 있을 때 사면된다. 꼭 사야 되는 게 아니면 안사면 되는 거다. 둘째의 시도 때도 없는 저 질문은 내가 혼잣말을 할 때도 옆에 있다가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 정말 이게 꼭 필요한 소비인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


"아 나 겨울 바지가 없는데 (하나 살까?)"

"그러면, 사야 돼?"


"아니야, 아빠 살 빠져서 예전에 입던 거 입으면 돼."


"그러면, 사야 돼?"라는 말이 마치, '그게 진짜 꼭 필요해? 우리 형편에 꼭 필요한 지출이야? 아빠 잘 생각해봐.' 하며 나를 다독이는 것 같다. 둘째가 어떤 마음에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직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덕분에 우리 가족은 불필요한 지출을 아끼며 오늘보다 더 풍요로운 내일을 기대하고 잘 쓰는 법에 대해 배워간다.


그 어떤 재정 전문가보다 더 따뜻한 사랑의 조언이 일침이 되어 내 귀에 들려온다."그러면, 사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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