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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25. 2020

아빠는 말이 많아.

나만의 생각 쌓기.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


여느 때처럼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딸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다가 전공 이야기가 나오고 이야기가 딴 길로 세다가 어느새 나만 떠들고 있었던 게 뿔이 났는지 딸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아빠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아?"




"아빠는 말하는 걸 좋아해서 그래."

"왜 좋아하는데?"

"일단 말을 잘하고, 또 말하는 거에 자신 있으니까.

말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어 아빠는."


"자신감이 뭔데?"

"어떤 일이나 행동에 자신이 있다는 느낌이랄까 믿음 같은 거."

"자신 있는 건 뭔데?"


어느 날은 과연 이런 단어도 알까 싶은 것도 알아듣고 넘어가고 어떤 날은 이런 것도 설명해 줘야 하나 싶을 정도로 어휘력에 대한 질문이 풍부해지는 시기가 왔다. 어떤 어휘에 대해 설명해 주다 보면 설명에 등장하는 어휘를 또 설명해야 하고 또 다른 설명이 이어지다가 본론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음.... 일단, 네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뭐지?"

"그림 그리기!"

"맞아, 그럼 왜 그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지?"

"응.... 글쎄"

"네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 아니야?"

"맞아."

"또 네가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이지?"

"그래."

"그게 바로 우리 딸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일이야.

네가 자신 있어하는 일은 그림 그리기.

너는 그림 그릴 때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거지."


이렇게 한 가지 어휘를 이해시켰다고 해서 대화가 끝나면 내가 아빠가 아니다.


"방금 우리가 장래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  네가 지금 가장 자신 있는 일은 그림 그리기니까 그것과 관련된 진로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회화를 그리는 화가만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야. 웹툰 작가나 그래픽이나 제품, 의류,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고, 미술관 큐레이터가 될 수도 있고, 미술 심리 치료사나, 미술 교수가 될 수도 있고, 건축가나 인테리어도 미적 재능이 중요한 분야기도 하지. "


아이는 그림이라는 활동이 가져다주는 선택지가 그렇게 많다는 것에 다소 놀란 듯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미술과 관련된 분야도 많이 있을 테니 사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든지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진로와 미래는 무궁무진할 테다. 그리고 요즘은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융복합시대가 아닌가. 무엇을 선택하든 하나의 전공, 한 가지 전문성 만으로는 남들보다 뛰어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전공을 선택하고 그쪽 길로 가야 할 필요는 없어. 취미는 취미대로 하고 싶은 공부는 공부대로,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에 얼마든지 도전하는 것도 좋아. 단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야겠지. 아직은 딱히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를 수도 있어. 아빠는 아직도 아빠가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


"가장 중요한 것은,

너만의 생각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내는 거야."


"엄마, 아빠는 언제든지 다시 도전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여태까지 해왔던걸 계속해오기도 했어. 지금은 너희들도 키우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 때문에 새로 시작한다는 게 많이 두렵고 망설여지거든.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이 일찍부터 생겨서 너만의 길을 일찍부터 찾을 수 있거나 거침없이 너의 길을 향해 끊임없이 방향을 조절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면 지금 엄마 아빠 같은 고민은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거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어떻게 길러야 한다고?"


"독서, 토론........ 까먹었어"


"독서, 토론, 논술!"




"아빠가 생각해도 우리 딸은 독서는 충분히 하고 있어 이제부터는 토론과 논술을 연습해야 하는데, 논술은 더 한글을 잘 알게 되었을 때 시작해도 될 거 같고, 이제부터는 토론을 시작해 보자."

"근데, 토론이 뭐야?"


"예를 들어 네가 책을 한 권 읽었으면 그 책을 읽으면서 얻은 정보, 네가 느낀 감정, 네가 얻은 생각들을 종합한 의견을 내고 엄마 아빠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네 의견이 맞는지 검증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서 보완하거나 고치거나 바꾸면서 너만의 생각을 세워나가는 거지."


"음.... 모르겠어"


"아까 읽은 책 제목이 뭐지? 엄마가 읽어준 거?"

"국숫발, 쪽! 후루룩!" (글 김영미/그림 마정원 2019. 책먹는아이)

"응, 그거 내용이 뭐야? 아빠는 아직 안 읽어 봤는데."

"어떤 애가 이빨이 안 빠져서 속상했어."

"왜 속상했는데?"

"친구들이 아기라고 놀려서."


"이상하다. 아기들은 오히려 이가 없다가 나는 건데, 이빨이 안 빠졌다고 놀렸다고?"

"응"

"그럼 그 부분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그냥....."


"아빠라면 어? 이빨은 나는 건데 왜 안 빠졌다고 놀리지? 그럼 나중에는 이빨이 다시 빠지나? 그렇게 궁금했을 거 같은데."

"맞아 나도 사실 그랬어. 근데 책에 다 나와."

"이가 왜 빠지는지 나온다고?"

"응, 7살 되면 앞니가 빠진데, 거기로 국수를 쭉 빨아먹는 거야."


"그럼 그 책을 다 읽고 우리 딸은 어떤 생각이 들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 이빨이 빠진다는 거."

"그렇지, 그리고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 누구는 빠지고 누구는 안 빠진다고 책에도 나왔으니까."

"응."

"그럼 이가 빠질 때는 아플까 안 아플까? 딸내미는 걱정되지 않아?"

"으.... 아플꺼같애."

"이가 빠졌다고 자랑하는 친구들 표정이 어땠어?"

"막 웃었어."

"그럼 별로 안 아플 거 같은데? 주인공도 어서 빠졌으면 하고 기다린다면서, 아프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러게."


"이런 식으로 네 생각과 의견을 네가 책에서 얻는 정보를 근거로 이야기하는 거를 독서토론이라고 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앞으로는 아빠가 시간 될 때는 책을 읽고 끝나는 게 아니고 토론도 짧게라도 해보자."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아마 아직은 독서토론 따위는 하기 싫을 것이다. 일단 그게 뭔지 아직도 확실히 모를 테니까.


아이는 착한 건지 이해심이 넘치는 건지 완벽히 이해가 안 가도 그 자리에서 질문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똑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는데, 혹시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하고 전과 다르게 설명해주면 "그게 아니잖아." 하며 내가 전에 했던 설명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럴 때는 그 설명 속에서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들을 찾아서 즉 설명을 다시 분해해서 더 작은 설명으로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서너 번쯤 반복하면 대부분 이해하는데 가끔 설명 속의 어떤 설명을 세분화해야 하는지 내 기준에서는 너무 명확하고 간단해 보이는 문장들 조차 여러 차례 물을 때가 있다. 정말 단순 명확한 의사전달 기법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도전을 받으며 굉장한 연습이 되고 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우리 집에는 작은 소란이 아니 작은 토론이 벌어졌다.


둘째가 가지고 있던, 도대체 어떤 공룡인지 알 수 없는 공룡 모형 인형을 가져와서 이게 무엇이냐며 물었다. 그리고는 공룡 그림카드로 된 도감을 꺼내며 "케라토사우르스"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에 첫째가 동의하면서 그 근거로 도감에 그려진 색깔과 장난감의 색깔이 같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케라토사우르스는 인중에 뿔이 있어야 하는데 장난감에는 뿔이 없으며 눈두덩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의 뼈가 부채처럼 돌출되어있고 등에 돌출되어있는 뼈 구조가 비슷하다는 근거로 이것은 "알로사우르스"라고 했다.


갑자기 첫째는 이 그림 도감이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 명확한 판단이 어려우니 사진 자료를 찾아오면 인정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1억 6천만 년 전에 카메라가 어딨고, 그걸 찍을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며 따져보아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토론은 하나의 합일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밤 10시가 되면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 배웠다고 나름 그럴듯한 "근거"를 찾아들고 오는 모습이 대견했다.




나는 좀 게으른 편이라 살도 잘 찌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내는 초점이 맞는 모습을 절대 찍을 수 없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연상시키듯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한다. 그래서 몸을 쓰는 육아는 아내에게 더 잘 맞고 내 몸뚱이는 도대체 어디다가 써먹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첫째가 어느 정도 자라서 대회가 통하고 나서부터는 이런 질문과 대답, 대화를 통해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주고자 노력하며 나는 이것을 "말로 때우는 육아"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사실 그냥 귀찮아서 핑계 대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사실할 말은 없다. 그래도 얼마 전 코로나 때문에 방문 상담이 어려워 전화통화로 첫째 아이 유치원 학부모 면담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참 뿌듯했다.


"[첫째]이는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좀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굉장히 창의적이고 특히 미술놀이할 때 보면 색을 쓰는 감각이 또래랑은 참 많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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