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곰돌이 Nov 28. 2020

아빠의 다이어트.

나 어릴 적 아버지의 카메라.

코로나로 인해 "확찐자"가 되어버린 나는, 지난 7월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리고 온 가족 (아내와 두 자녀 그리고 나의 부모님, 장모님 등)의 응원과 격려 그리고 구박에 힘입어 현재 13 킬로그램 감량 중이다.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아빠, 근데 왜 살을 뺐어?"


(특이하게도 최근 딸의 질문은 항상 "근데 왜...."로 시작한다.)

딸의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건강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지극히 평균적인 키 (174cm)의 나는 6월 말 무렵 80 킬로그램이 훌쩍 넘어 후반에 자리한 내 몸무게를 바라보며 그 자체가 주는 건강의 위험신호와 그 무게를 얻게 된 결코 건강하지 못했던 식습관, 그리고 스트레스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참 볼품없다고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거울과 사진들 속에서 마주하는 내 모습들이 낯설었고 보기 싫었다. 사업체를 막 정리했던 터라 마치 그것이 내가 집에서 놀기 때문에 불어난, 내가 자기 관리도 못하는 프로답지 못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사실은 사업체를 정리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기 때문에 불어난 것이 맞기는 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아이들의 등원불가로 인해 집에서 제대로 휴식도 못하고 육아에 뛰어들었어야 했고, 아내와 나는 서로 지쳐서 늘 다투기 바빴다.


스스로 모습에 자신이 없다 보니 언젠가부터 사진 찍는 것도 싫어졌다. 어디를 가도, 가족들과 식사 자리에도 애들과 한번 찍어보라거나 자기와 사진 한번 찍자는 아내의 부탁에 고개를 젓거나, 마지못해 마스크를 쓴 채로 겨우 한두 장 찍을 뿐이고 다시 보지도 않았다.


먹을 것을 찾아 온갖 서랍을 열어보고 장식장 문은 죄다 열어보는 둘째 덕에 본가에서 내 어릴 적 앨범을 발견했다. 앨범을 보다가 문득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어릴 때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세대였다. 가족여행 전날에는 아버지가 큼지막한 카메라 가방을 꺼내어 두시고는 여분의 카메라 전용 건전지와 필름통을 챙겨 넣으시며 렌즈를 청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해외여행을 자주 하시던 큰외삼촌 편에 거금을 주고 부탁을 드려 일본에서 직접 공수하셨다던 니콘 필름 카메라를 매우 자랑스럽게,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인물사진도 잘 찍으셔서 우리 가족 중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구도와 배경 광원 등 인화까지 고려한 결과물을 따라가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게다가 그 복잡한 수동 카메라는 어린 내가 들기에 무거웠고, 너무 어려웠으며, 아버지가 함부로 맡기지도 않으셨다. 또 사진을 잘못 찍거나, 필름이 빛에 노출되거나,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순간에 필름이 떨어지거나, 찍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인화했는데 초점이 나가 있거나 하는 등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그것들은 다 비용이었으니까) 어린 나와 누나에게 카메라는 일종의 금기 물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올 때까지, 나는 사진을 찍는 역할은 아버지만의 신성하고 고유한 가장의 역할이고 내가 가장의 지위를 잇게 되면 나에게도 전수되는 능력쯤으로 생각했다. 막상 디지털카메라의 시대에는 우리가 유학 중이었고, 스마트 폰 시대가 오고 나서야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한두 개씩 늘어났다. 그래서 빛바래져 가는 앨범의 꼬맹이와 그만한 꼬맹이의 아빠가 된 나 사이의 간격만큼은 아버지와의 사진이 많이 없다.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 하루에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고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보정까지 할 수 있다. 누구나 들고 다니고 아무나 쉽게 찍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사진을 피하기만 한다면 안 그래도 아이들에게 코로나로 잃어버린 1년에 아빠와의 추억까지 잃어버리게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젊은 내 모습은 아이들 기억으로만 전해지고 나중에 사진에는 나이가 들었거나 아프고 병든 내 모습만 아이들에게 남아 평생 슬픔으로 남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비록 여행이나 체험 등은 많이 못가도 이렇게 일상에서 아빠가 쉬고 준비하는 동안 항상 함께였다고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는 나도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서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자기 관리하는 모습, 음식 앞에서 절제하는 모습, 건강에 좋은 재료, 음식을 먹는 식습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었다. 그렇게 다이어트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나는 딸의 왜 살을 뺏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응, 우리 딸내미랑 사진 많이 찍으려고."

"왜? 사진을 왜 많이 찍는데?"

"나중에 우리 아가가 아빠를 많이 보고 싶어 할까 봐."



지난달에는 우리 넷이서 스튜디오에 가서 가족사진도 찍었다. 확실히 몸무게가 줄어드니 옷 테도 더 잘 나고 자신감도 더 들었다. 아쉬운 점은 6살 여자아이 그리고 3살 남자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아주, 굉장히 힘든 일이다. 차라리 파파라치를 고용해서 우연히 일상의 사진을 찍는다면 모를까 싶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보지 않거나 (딸), 누군가는 항상 앵글을 벗어나 있고 (아들) 사진을 찍는 사람 (주 아내)의 주 피사체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라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딸은 대답이 마음에 들은 건지, 아니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지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


"근데, 아빠는 왜 살을 뺐어?"


몇 번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 이 질문의 의도가


"그렇게 고생해서 뺄 거 애초에 왜 그렇게 찐 거야?"


라고 묻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목표 체중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단기적인 목표는 일단 40살까지 목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인데 참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회복하는 자신감에 조금씩 더 밝아지는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나중에 기억조차 희미해졌을 때 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아빠의 모습이 멋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모습으로 회상하는 아빠와의 추억이 아름답고 즐거울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공룡이 되고 질문자가 되고 학습자가 되고 판사가 되고 놀이기구가 되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말이 많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