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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곰돌이 Nov 18. 2020

첫째의 설움.

그건 동생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위로 누나가 하나 있다.


거의 40년을 우리는 엄마와 아빠는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로 눈치 싸움을 하다가 (실제로 싸우기도 많이 했다) 요즘은 누구의 아이들을 더 사랑하실까로 서로 눈치를 본다. 아마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사랑의 갈구함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받아도 부모님의 사랑은 더 받고 싶다. 그리고 아무리 갚으려 해도 부모님의 사랑은 받은 만큼 돌려드리기가 쉽지 않다. 애초에 인생 전부를 건 사랑과는 상대가 될 수 없다.




첫째가 갑자기 분위기를 잡고 물어봤다.


"엄마는 왜 [둘째]이만 사랑하고, 나는 안 사랑해?"


드디어 올게 왔다. 우리 아이도 이제 부모의 사랑의 크기를 자기 기준으로 가늠해보며 상처 받고, 서운해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니 다행이다. 설명이라도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미 사고 회로가 정지해 버려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엄마를 대신해 내가 대화를 이어갔다. 같이 있던 나에게는 질문하지 않는 걸 보니 나에게는 기대치가 없거나, 제 딴에는 아빠는 그래도 좀 공평하다고 생각한 듯싶다.


"아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엄마랑 아빠는 너희 둘 다 똑같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내 느낌이 그래."


딸아이는 으레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뿌루퉁해져서는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사실, 아내는 말로 하는 애정표현이 서툰 편이다. 나에게도 사랑한다거나 멋지다거나 뭐 그런 식의 애정 표현을 자주 하지 않는데, 유독 둘째에게는 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긴 한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아내를 보면 실감이 날 정도긴 하다. 그래도 아마 그건 더 어린 아기에 대한 귀여움의 표현이지 아마 어미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의 크기는 비슷할 것이다.


"음, 아빠 생각에는 요즘 [첫째]이가 [둘째]이랑 장난감이나 이런 거로 싸울 때 자꾸 엄마나 아빠가 [첫째]이 보고만 주로 양보하라고 하고, [첫째]이만 타일러서 좀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빠 생각이 맞아?"


"응, 뭐 그런 것도 있고."


여전히 새침한 대답이지만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내심 그런 부분도 서운하긴 했던 모양이다.


둘째는 꼭 첫째가 가지고 노는 것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첫째가 뭘 잡기만 해도 자기도 그걸 하겠다며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그래서 둘이 똑같은 것을 쥐어주어도 (예를 들면 그림 그리라고 똑같은 스케치북에 같은 종류의 펜이나 색연필) 누나가 하는 것을 훼방 놓는다. 누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못 들은 척 혼자 태연하다. 그런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둘째 녀석도 꾸지람을 듣고 반성의 눈물을 또르륵 흘려야 보내주고는 하는데 아무도 없을 때 몰래 그러고 사라지면 아무래도 혼자 남아 괜스레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첫째가 조금 더 혼나기도 했다.


"아가, 그건 엄마나 아빠가 너희 둘 중에 누굴 더 사랑하고 아니문제가 아니라, [둘째]이가 아직 어려서 우리말을 잘 못 알아듣고 행동을 바로 고칠 수 없는데 반해서, 우리 [첫째]이는 이제 언니로서 엄마 아빠 말을 다 이해하고 양보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의 양해를 구한 거야."


"........."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엄마나 아빠의 말투가 급하다 보니 너에게 강요하거나, 너만 혼내는 것 처럼들렸으면 사과할게. 그 정도는 아가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싫어. 내가 왜? 나도 무조건 용서받고 이쁨만 받고 사랑받고 싶단 말이야!"


그래 나도 네가 여기서 바로 납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단다. 그럴 아이였으면 애초에 서운해하지도 않았을 거고. 나 자신도 아직도 누나랑 눈치를 보는데 이제 6살인 네가 뭐 오죽하겠니 싶었다. 또 그동안 나나 아내의 행동이 과연 딸아이의 입장에서 공평하고 정의로웠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나였어도 바로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이런 식의 접근은 지금 이 아이를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신에 아가야, 우리 한번 잘 생각해 보자. 너랑 [둘째]이는 몇 살 차이지? 세 살이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 [둘째] 나이 였을때 [둘째]이는 겨우 엄마 뱃속에 있었어. 지금까지 [둘째]이가 살아온 것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첫째]이는 엄마 아빠의 유일한 아기로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독차지하고, 혜택도 많이 받았는지 알아?"


"너는 친가 집에서 사촌 오빠밖에 없어서 옷, 신발, 내복 이런 것도 거의 다 새로 사주고, 외갓집에서도 첫 손주라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사랑도 혼자서만 2년 반 동안 독차지하고. 지금도 가까이 살면서 매일 만나면서 가장 예쁨 받고 사랑받고 있잖아. 그리고 [첫째]이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랑 해외여행도 벌써 여러 차례 다녀왔고, 에버랜드도 연간회원권 끊고 자주 가고, [둘째] 봐봐, 에버랜드 몇 번 갔지? 한번? 해외여행도 [둘째]이랑은 한 번밖에 안 다녀왔지? 그런 거 솔직히 아가도 인정하지 않아?"


아이는 이 부분은 인정을 하는 듯 가만히 듣고 있었다.


"네가 먼저 태어나서 너만 오로지 받았던 사랑을 [둘째]이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둘째]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빠 사랑을 [첫째]이랑 나눠서 받아야 했단 말이야 그렇지? 그러니까 [첫째]이가 그런 부분을 조금 이해해주고 [둘째] 이를 안쓰럽게 봐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때로는 엄마 아빠가 조금 불공평해 보이더라도, 2년 정도만 [첫째]이가 조금만 더 양보해주면 [둘째]이가 5살 돼서 엄마 아빠 말 다 알아듣고 [첫째]이 처럼 엄마 아빠 말순종하고 그럴 때 정말 우리가 똑같이 대해주도록 노력할게. [첫째]이가 잘못한 건 [첫째]이가 혼나고, [둘째]이가 잘못한 거는 [둘째]이가 혼나고. 그때까지만이라도 그럼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때 되면 내가 몇 살인데?"


"2년 뒤면 너는 8살이지, 무려 초등학교도 다니는 학생 언니야!!!!"


학생이라는 신분에 로망이 있는 첫째의 감성을 일단 자극해보기로 했다. 운전 중이라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갑자기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기분은 조금 풀어진 듯했다. 아마 그때쯤이면 자기는 무려 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니 동생이 더는 괴롭히지 못하거나, 자신이 동생의 괴롭힘과 부모님 사랑받기 같은 문제들에서 초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혹시나 해서 말을 곁들였다.


"그리고 또, 네가 가끔 엄마나 아빠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은, [둘째]이가 너에게 한 행동보다 네가 부당하게 반응해서 훨씬 세게 응징거나 네가 위험한 행동을 했거나 네가 충분히 조리 있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불편함, 감정의 변화, 네가 원하는 것들, 필요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대도 울기부터 하고 징징거리고 짜증내고, 이유를 묻는 어른들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네 멋대로 굴기 때문이야. 그런 건 절대로 [둘째]이가 있기 때문에 네가 혼나는 게 아니야. 그건 [둘째]이가 이 세상에 있건 없건 지금 네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이고, 어른들께 옳지 못한 행동이고, 나중에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말라고 엄마 아빠가 교정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알겠니? 아빠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는 이제 충분히 너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말로 엄마 아빠한테 이해 가도록 설명할 수 있어. 울지 않아도 돼. 무조건 아무 말도 안 듣고 소리만 지르면서 고집부리지 않아도 되고. 알겠지?"


"..... 네"

"진짜?"

"네!!!!"

"흠...."


애가 못 알아들었다 그러면 맥이 풀릴 것 같았는데, 어렵게 말했는데 알았들었다니까 또 영 못 미더웠다. 참 사람 마음이 왜 이렇게 갈대 같은지, 나도 내가 아이를 이해시키고 싶은 건지 아이 입장에서 알쏭달쏭한 말만 번지르르하게 잔뜩 해주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아직 어린아이이니 만큼 한 번의 대화로 당장의 변화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자신과 동생을 차별하고 있다는 선입견만큼은 꼭 없어졌으면 좋겠다.




딸과 이런 진솔한 대화를 하고 나면 좋은 점은 어느 정도 유대감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는 건데, 이를 테면 뭐든지 "아빠가 해줘" 또는 "아빠랑 할래" 등이 있다. 그러면 질투쟁이 둘째 녀석이 덩달아 아빠를 찾아대기 시작하는데 그럼 음.... 난감하다.


나는 사실 누나랑 내가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무 용건 없이 지나가다가 본 재미있는 유머나 밈을 서로에게 공유하며 웃기도 하면서 카톡을 나누고, 부모님께 차마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걱정과 문제를 서로 상의하기도 한다. 먼저 엄마가 된 누나에게 부모로서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육아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기도 한다. 전화 통화는 가끔 하지만 한번 제대로 할 경우, 저번에는 40분도 넘게 해서 아내가 놀랄 때도 있다. (아내는 위로 오빠가 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예전에 엄마 아빠는 누구를 더 사랑하시는가에 관한 문제로 몇 번 다투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도 우리가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하신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그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미국에서 룸메이트였을 때 하도 많이 싸워서일 수도 있겠다.) 아마 우리 딸 도 나중에는 아들과 사이가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은 내가 누나가 밉다는 식으로 말하면 항상 "하나밖에 없는 형제"임을 강조하셨었는데, 요즘 우리 딸에게 써먹고 있다.  


딸아, 아빠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우리가 편견 없이 편애 없이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한마음의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어. 언젠가 동생이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네 편이자 너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수도 있을 거야. 너도 동생에게 그런 누나가 되어줄 거고. 그렇게 서로 아껴주며 보살펴주고 사랑하려무나.


엄마 아빠도 너희가 사랑의 크기로 상처 받지 않도록 더 많이 표현하고 노력하고 사랑해줄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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