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도전.
나는 어려서부터 겁이 많고 쉽게 포기했다.
그게 더 편했으니까.
동급생들의 놀림이 귀찮을 땐 울어버렸고,
수학이 싫어서 나 혼자 수학과 결별했다.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듣던 드럼도
나보다 훨씬 더 잘 치는 전문가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포기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린 시절 친구는 거의 없고
전공의 선택에도 한계가 많아졌고
드럼도 어중간한 실력에서 멈춰버렸다.
대학 때 만난 사람들에게 취업의 어려움의 고민을 듣던 나는
취업에 도전도 해보지 않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리농장을 했다.
농장을 정리하고 독서와 공부,
육아와 운동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아내는 놀고먹지만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했고,
비난이 받기 싫어서 시작한 글쓰기라는 도피에서는
내 글이 생각보다 인기가 없자 곧 시들해져 버렸다.
무엇이든 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것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계를 밀어붙이며 도전하는 것도
내게는 낯선 일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숨이 턱턱 막힐 듯이 뛰면서 한계를 느끼고
그 벽을 깨는 것이 가장 보람차다는 아내를 얻은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전이자,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의 삶이 배움이다.
그렇게 나이 40이 넘어 예전에 쓴 이 글을 다시 읽으니
그때와 같으면서 또 그때와 다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포기할 수 있는 특권을 잃었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과 사위로써 잘못하면, 실패하면 도망쳐 버리 고 말 기회를 잃었다. 내 손으로 이룬 가정이라는 책임과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도망칠 곳을 잃은 놈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인 시간도,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도, 취미와 생활방식 모두 고치고, 포기하고, 양보하고, 바꾸면서 가장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훌쩍 떠날 수 없고 일이 힘들고 지쳐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다. 나만을, 내 등만을 바라보는 가족이 있기에 더 이상의 도망, 포기, 절망은 사치다. 억울한 것은 아니다. 아내도, 부모님도 그런 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포기하고, 함께 발을 맞추어주고 있으니까. 다만 이제 정말 내가 시작한 일들은 내손으로 끝을 내야 한다는 게 한순간 부담이 되고, 두렵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적 없던 내가 그런 일을 하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
그때는 코로나로 모든 게 어려웠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 때이니까 뭐든지 쉽게 할 수 없다는 핑계가 있었다.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서 어렵기는 매 한 가지다.
그러나 모두가 어렵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그때는 농장을 정리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가게를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사는 지역도, 나이도, 직업도, 아이들 진학도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삶은 비슷하다.
그렇게 뭐라도 더 해보려고 했는데
뭐가 더 되어있지도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같은 것은, 이 글의 결말이다.
- 이제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한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어떤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해야 하며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몇 년, 몇십 년 전에 시작한 것을 나는 이제 시작해야 한다. 무책임한 도망이 되지 않게, 피난이 또 다른 출발이 될 수 있게, 무능이 휴식이 되고 휴식이 기회가 되며 기회가 성공이 되도록 끊임없이, 꾸준하게, 성실하게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읽으며, 멀리 내다보고, 앞서 생각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
- 인생에 도전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내가 잘 이겨낼 수도 있다. 혹여나 실패가 절망으로 다가오더라도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 주는 가족이 있기에 더 이상 도망칠 필요도 없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될 때까지 다시 하면 된다. 내 뒤를 봐주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으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선물을 주는 사람들과 선물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많다. -
-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세상은 포기하고 도망칠 곳이 아니라 충분히 도전하고 이겨낼 수 있는 곳이다. 나 스스로에게 믿음만 있다면, 또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갈 아주 작은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도, 열심히 살았으니까 수고했다.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