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곰돌이를 떠나보내며.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ko/users/bluebudgie
사실 활동한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계정을 만들어두고 쉰 기간이 길어서
나름 오래된 브런치 활동명 "낭만 곰돌이."
하지만 내 브런치 구독자는 겨우 20여 명이어서
많이 알지도 못하는 활동명이건만
아쉬운 이별을 하기로 했다.
새해를 맞아 아이들과 교보문고에 갔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에서 유독 에세이류는 작가들이 필명을 쓴다.
아니, 다른 책의 작가들도 필명을 쓰는 경우가 있을 테지만
필명이 보통 또 하나의 사람이름 같은데 반해
에세이 작가들의 필명은 뭔가 호나 자 같은 느낌이다.
교보문고에 엄청나게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고
기획되어 있는 태수님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보며
정말 부럽기도 하면서
저 작가님은 교보문고에 올 때마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어떻게 저런 책을 썼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도 해준다고 안 했지만
'만약 내게도 출판된 책이 있다면?'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차 한잔과 생각하는 목요일" 작가 낭만 곰돌이.
아.... 여기서 조금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만 40세가 되며 진짜 "포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쁜 의미의 "영포티"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니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더 문제겠지만,
만약에 45세에, 50세에 책이 나왔는데
"낭만 곰돌이"라니!!
안돼!! 를 외치며 잠에서 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공하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지만,
글도 쓰고 성공할 다른 이름이 필요해.
(그럴 시간에 글을 더 읽고, 글을 더 썼으면 되었겠지만...)
중학생 정도부터였을까. 내 별명은 곰돌이였다.
흔히 동글동글하게 생긴 사람들 대부분이 얻는 별명이자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이 더 잘 불러주는 별명이어서였을까?
우리 집에서 부모님과 누나가 불러줘서였을까?
디즈니의 터줏대감 곰돌이 푸우와 똑같은 눈썹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
나는 내 별명이 곰돌이인 것에 꽤나 만족했다.
둘째를 낳고 (내가 낳은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지금은 몸매까지 곰돌이가 되어서
내 자녀들조차도 어딜 가서 곰인형을 보거나 하면
"여기 아빠가 있다!"를 외치고는 한다.
단순한 "곰돌이"라는 이름은
활동명이든 아이디든 닉네임으로
이미 대부분의 모든 앱과 포털에서 누군가 또 다른
우리 곰돌이 동족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참 갖기 힘든 이름이다.
그리고 브런치도 마찬가지였다.
"곰돌이"대신 어떤 곰돌이로 차별화할 수 있을까?
나름 일상에서 느끼는 감성으로 글을 쓰니
나는 푹신하고 둥글둥글한 곰돌이들 중에
가장 낭만 있는 곰돌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내 활동명을 "낭만 곰돌이"라고 하자!라고 질러버렸다.
평소에 잘 칭찬하지 않는 아내마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았었다.
40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권 나라에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방학.
큰외삼촌 내외분이 사시는 캐나다 밴쿠버에 놀러 갔을 때
노느니 어학연수라도 하라며 날 어학원에 등록시켜 주시면서
내 영어이름을 "Daniel"이라고 지어주셨다.
미국인들이 널리 부르는 노래 "Oh, Danny Boy"와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을 생각하며 지어주신 첫 영어이름은
미국으로 대학을 갔을 때 교실마다 넘쳐나는, 너무 많은,
누가 봐도 딱 "다니엘"처럼 생긴 대니들을 보며 곧바로 쓰지 않게되었다.
언젠가 방학때 다시 찾은 밴쿠버 삼촌댁에서
커다랗고 사랑스러운 반려견이름이 "Danny"인 것을 보면서
두 분의 대니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아.. 그 이름 안 쓰길 잘했네...
게다가 수많은 유학생 중에 "유미코, " "라쉬, " "응구옌" 같은 이름들은
그대로 제 이름을 쓰는데 왜 한국사람과 홍콩사람만
영어이름을 쓰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그냥 내 본명으로 지냈다.
이름에 이응받침이 있어서 아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지만,
한번 비슷하게라도 발음한 사람들은 절대 내 이름을 잊지 않았다.
내 성은 "이" 영어로 "Lee"이다.
한 친구가 장난으로
"이름을 러브라고 해 그러면 Lovelee (러블리)가 되잖아!"
라고 한 이후로 벼락을 맞은 듯했다.
내 본명에 있는 글자에는 "이기다, 승리하다, 뛰어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럼 나는 "Victorlee"가 될 테다 생각했지만
'R과 L발음은 엄연히 다르지 않나?'
'기껏 본명을 그대로 쓰기로 해놓고 다시 빅토리라니.'
게다가 '이름이 "빅터?" 한국인이 쓰기엔 너무 백인 귀족스럽지 않나? 황송하군...'
따위의 생각들로 그저 생각만 했었다.
그 생각을 묵힌 지 어언 20여 년이 흐르고
이제 '빅터란 이름이 그래도 곰돌이 보단 낫지'라는
뻔뻔함도 제법 생길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빅터리가 될지 빅토리가 될지 고민했다.
이 세상은 과정이나 의도보다 결국 결과중심이니,
이름의 뜻보다 결국 불리는 발음이 중요하지 않나.
나는 나의 삶에서 승리하겠다.
빅토 Lee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