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계를 돌아보며.
대만의 징시 홍우롱
(Jing Si Black Oolong Tea)
첫 차가 홍차,
두 번째 차가 보이차였기 때문에
원래는 녹차를 마셔보려 했다
마침 요즘 무협지를 읽느라
단골로 나오는 용정차를 마시려고 했다.
김인 님은 [차의 기분]이라는 책에서 녹차에 대해
"가을에는 마시지 않는다.
가을에는 마셔야 할 다른 차가 너무 많다.
겨울이 지긋지긋해지는 2월과 3월에 마신다."
라고 했다.
그럼 무얼 마실까 생각하며 찬장을 보다가
어차피 내게 용정차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참내.
대신 홍우롱차가 있었다.
대만 사람과 결혼한 군대 동기가
처갓집에 다녀오면서 사다 준 선물이었다.
죄다 한문이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구글 렌즈 앱을 열고 검색을 누르고
제품의 사진을 찍으니
영어로 번역된 제품 상세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한자로는 "홍우롱차"라고 쓰여있는데
영문으로는 black oolong tea였다.
이름이 홍우롱이라 빨간 티팟에 우리려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는데,
제품 설명에 20-30초씩
여러 번 우리라고 쓰여있어서
조금씩 자주 우려야 할 것 같아서
곱게 씻은 빨간 티팟을 다시 넣어두고
표일배를 꺼낸다.
찍은 사진은 아까우니 메인 사진으로 쓴다.
표일배의 장점은 딸깍, 하면
찻물과 잎이 분리되는 것과
우려 지는 찻잎의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표일배로 바로 마셔도 된다고 하지만
잔이 있으므로 잔에 따라 마시기로 한다.
나는 대만의 우롱차는 고산차나 금훤류의
밀키하고 고소한 차를 좋아했는데
마른 잎이 쑥 색의 우롱차 보다 더 산화시켜
검붉은 색이 나는 푸젠의 암차류 같은 외형의
대만 우롱차는 처음이다.
물론 맛과 향은 암차와 전혀 다르다.
제품설명에도 쓰여 있듯이
홍차와 매우 비슷한 빛과 향이 난다.
처음 잔에 따를 때 치고 올라오는 강한 홍차 특유의
호박 같은 달큰한 향이 특징인데
쓰여있는 것처럼 풀바디감은 아니고
훨씬 부드럽게 넘어간다.
설명에는 익은 과일향이라고 쓰여있는
기분 좋은 달달한 향이 나다가
중간에 대만차 특유의 고소함도 살짝 느껴지고
끝에 남은 찐득한 꿀향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을 표일배에 한번 더
따르게 만든다
세계철학전집 디오게네스 편 [개처럼 인생을 살아라]에 보면
"우정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자란다."라는 소제목 내용에
"우정의 깊이는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가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라고 한다
왜 꼭 그런 사람이 있다.
보험도 아니고 옥장판도 아니고 청첩장도 아니고 부고도 아닌데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사람.
그 사람이 친구일 수도, 친척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는데,
흔한 경우는 아니다. 특히 번거로움과 뻘쭘함을 감수하고
전화를 직접 한다는 것은 더 그렇다.
나에게 오늘의 차를 선물해 준 군대 동기가 그런 사람이다.
나는 대학을 군 휴학 없이 졸업하고,
또 일 년은 카투사를 지원한다고
모집 공고시기를 기다리느라
입대를 연장한 뒤에,
다시 공군 어학병 모집에서 탈락하고
다시 면접과 체력검정을 통해
공군 일반병으로 갔기 때문에
동기들과 나이차이가 상당했다.
특히 대학 1학년 마치고였나? 입대했던 이 동기와는 5살 정도 차이.
심지어 자대 동기도 아니고 훈련소 동기.
까까머리 1600여 명 사이에서 우연히 같은 소대에
같은 대전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진 이 동기는,
군생활 도중에도 휴가나 외박기간을 맞추거나
전역하고 복학 후에도 자주 만나며 우정을 다졌다.
앞서 말했듯 이제는 대만 사람과 결혼해서 천안에 거주하는데도
명절마다 연락하는 고마운 인연이다.
내가 딱히 잘해준 것도 없고
지금도 딱히 도움이 되어주는 것도 없다.
인스타나 카톡에 올라오는 사진으로
어찌 지내는지 이미 다 알고 있어도
명절이면 항상 먼저 전화해서 인사해 주는 친구이다.
내가 차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만에 다녀오며 여러 종류의 차를 사다 주는 그런 사람이다.
무얼 바라지 않고도 함께 할 만큼의 관계는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과 육아를 하게 되면
점점 더 찾거나 만들기가 어렵다.
일단 당장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당장 내가 마주한 일들을 하는 데에도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네 친구 누구, 걔 반에서 몇 등 하니?"
같은 도움 되는 친구만 만나기를 훈련받고 자라다 보면,
진짜 아무것도 없어도 이어질 수 있는 관계를
알아보거나 만들어가는 안목이 부족해질 것도 같다.
집을 샀대, 주식이 올랐대,
자녀가 어디 대학에 갔대, 어디에 취업했대
그런 소식이 들려올 때 배 아프지 않은 친구
"오늘은 내가 쏜다"며 호탕하게 나서는 친구의 모습이
부담스럽거나 질투 나지 않는 그런 친구
쟤 또 나한테 얻어먹네 라는 생각보다
쟤랑 얘기해서 오늘도 즐거웠네 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
힘들 때 만나서 아무 말 안 해도 들어주는 친구
기쁠 때 만나서 아무 말이나 해도 즐거워해주는 친구
세상에 수많은 좋은 친구는
찾아내야 하는 유니콘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의 이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