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쓰기 위해 필요한 것.

by 빅토 Lee

오늘의 티타임 차


M21 메이플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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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께서 선물 받으신 캐나다 티

- 티 산지는 스리랑카이긴 하다 -

메트로폴리탄 티 컴패니의 M21 메이플 티이다.


캐나다는 영연방이고 영국문화권이니

어머니의 찬장에서 털어온

로열 알버트잔에 우리기로 한다.

KakaoTalk_20251204_233852953.jpg 혹시 이것도 빈티지인가? 설레어 본다


오늘의 차는

이름처럼 홍차와 메이플 시럽이 들어간

피라미드형 티백이다.


대부분의 티백이 그렇듯이

CTC 찻잎이 들어갔는지

처음 뜨거운 물을 부을 때부터

쌍화차 비주얼의

-제조사 피셜 "구릿빛"-

탕색이다

일부러 3분만 우렸는데도 진하다


KakaoTalk_20251204_233012844_02.jpg 빈티지스럽게 모래시계로 타이밍을 잡았다


장미 잔이라서 아껴두고 있는

로즈포총을 우릴 때 마시려고

생각한 잔이긴 하지만 한번 꺼내 본다.


누와라 엘리야, 딤불라, 우바의 잎을

블렌딩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멘톨느낌이 나는지

내가 목감기가 걸려서 칼칼한 건지

시원한 느낌이 있다


메이플 시럽향이 거의 90프로로

맛도 그만큼 부드럽고 달큰하다

개인적으로는 달아서 좋았다.


잔을 비울 때쯤

아직도 끈적한 캐러멜과

강렬한 메이플 향과 함께

텁텁 시큼 쌉싸름한 홍차 특유의 맛이

올라와서 마지막이 더 좋았다.




쓰다.


매주 목요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꼭 올리겠다고 다짐했건만

고작 3주 만에 큰 위기가 왔다.


오전부터 바쁘게 돌아다닌 탓에

도저히 차를 마실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없었다

글을 목요일에 올리려면

수요일 까지는 대충 글을 다듬어 놔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어떻게든 목요일 안에 글을 올려보려고

밤 10시에 회의를 마치는 대로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차를 우렸지만

이미 시계는 오후 11시가 넘어간다.

안녕 내 목요일.


그래도 목요일에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 글이니 목요일의 글이다.



소소문구 대표 유지현 님은

[기록하는 수집가의 단짝]이라는 책에서

"노트" 보다는 "공책(空冊)"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했다.


"비어있는 책"이라는 의미가

기능적인 소모품이상의 기대를 품게 하는

종교적이며 시적인 느낌이라고 했다.


"비어있는 공간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런데 너무 당연한 공책을 사는 이유.

쓰기 위해서.


나는 처음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연필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필을 깎을 때 나는 소리

대팻밥처럼 저며지는 나무와 냄새.

심신을 안정시키는 의식 같은 시간이 더 좋아서

연필을 깎기 위해 연필을 쓴다.


귀찮다고 전동연필깎이에 돌려버리는 딸에게

연필을 달라고 한다. 손으로 돌려 깎는다.

가급적 수동연필깎이를 쓴다.

더 연필과 교감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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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하는 이유는 많다.

쓰기 위해 필요한 것도 많다.

많지 않은데, 많다.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소설을 쓸 수 있지만,


노트, 메모패드, 수첩, 이면지, 교과서....

연필, 볼펜, 수성펜, 만년필....

키보드와 태블릿, 핸드폰, 노트북....

연필깎이, 지우개, 수정테이프.....


쓰는 데 사용하는 수단과 방법은 많다.


누구나 필기구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누구나 하는 생각들이 글감이지만,

아무나 쓰지 않으며,

아무것이나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못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연필을 주제로 쓴 글들을 보면

작가들만의 최애 연필 브랜드가 있기도 하지만

꼭 등장하는 것이 심경도 (HB, B, H 등등)이다

나만의 연필을 찾고

그중에서도 나만의 경도를 찾겠다고

연필을 마구 사다가 문득 들은 생각은

그렇게 샀는데 쓴 건 없다는 생각.


서점의 저 많은 책을 쓴 작가들도

나만큼 연필이 있는 사람은 몇 없을 텐데

도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이라도 앉아서 "시작"하는 게 중요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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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수집가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그냥 일반 자영업자가 쓰기엔 너무 많은 연필


머릿속에 가득한 복잡한 생각을

비어있는 공간에 채운다.


쓰는 것은 채움이고, 나눔이다.


그렇게 쓰다.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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