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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웨덴 시골집 Jun 12. 2022

밥 안주는 매정한 스웨덴 사람들?

스웨덴 게이트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거기 있는 거 참 맛있겠다? 그렇지? 얼마나 좋아. 참 안됐어 다른 사람들한텐, 우린 저녁으로 그거 못 먹을 테니 말이야. (뭐라고요?) 맞잖아, 저녁 계획했던 대로 못 먹을 테니까 말이야. (미안해요, 몰랐어요.) 아니야 괜찮아 계속 먹어.  저녁 먹으러 누가 오는지 모를 때 저녁 식사 계획하는 게 좀 어려워서 그래. (저녁 재료 장 보러 가고 싶으면 제가 아이들 돌봐줄게요) 괜찮아, 오래된 음식 찾아서 럭셔리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 Bonus family, S4:E3 중에서


 집에 돌아왔더니 자녀들이 냉장고에서 저녁 식사 재료를 꺼내 해치우는 모습을 발견하고 욱하고 화풀이를 하는 아빠.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스웨덴 드라마 ‘보너스 패밀리’에서 보너스 파파, 패트릭이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깟 저녁 식사 재료가 뭐라고 애들한테 저렇게 신경질을 내?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스웨덴 사람들이 ‘저녁밥 잘 안주는 인색한 사람들’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었다.


밑반찬이 없는 스웨덴

 밥하기 귀찮은 날, 반찬 대충 꺼내 밥을 먹는다? 스웨덴에서는 턱도 없는 이야기. 스웨덴의 캐주얼한 저녁 식사는 보통 메인 메뉴에 샐러드나 탄수화물 한, 두어 가지를 더 추가해 먹는 스타일이다. 한번 요리하면 오랫동안 쟁여 놓고 먹기보다 매일매일 새로운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는 스타일. 그래서 장을 볼 때도 미리 계획을 한다. 나도 스웨덴에 온 뒤로는 밑반찬을 해먹을 여력이 없어 마치 하루살이처럼 하루 이틀 치 저녁 장을 미리 구상하고 장을 본다. 한국처럼 새벽 배송도 없어요, 밑반찬도 없어요, 밥 해 먹고사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여, 미리미리 계획해서 장 봐야 해 - 스웨덴 사람들이 저녁에 민감한 이유?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애아빠(패트릭)도 자기 스텝 자녀들에게 저녁 메뉴때문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마당인데 다른 집 애가 계획도 없이 놀러 오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싶다.


빚지기 싫어하는 스웨덴 사람들

 왜 가끔 회사 커피 말고 카페에서 파는 라떼 류의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괜히 혼자 맛있는 커피 마시기가 머쓱해 동료들 커피를 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한 동료가 앞으로 커피 안 사줘도 된다며 정중히 거절을 했다. 왜 사준대도 싫어할까? 싶었는데 빚지는 걸 싫어하는 게 스웨덴 사람들의 심리라 한다. 받았으면 다시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 지나친 배품은 사양해줘, Okej?


내가 가난한  알아?

 지금이야 스웨덴이 지속가능성, 평등, 디자인, 복지로 유명한, 흔히들 말하는 잘 산다는 축에 끼는 나라지만 많은 이들이 농경에 종사하던 과거의 스웨덴은 참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였다. 대기근을 겪은 시기에 수많은 스웨덴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역사가 있고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인지 연극도 몇 년 전 올려질 정도였으니.


From 1851 to 1910 roughly one million people emigrated from Sweden to America. |출처 scb.se (Statistics Sweden)

 

 과거, 농경 작물로 한 해를 보내야 했던 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아껴먹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을 것이라 한다. 아마 그러니 옛날 옛적 스웨덴에서는 자녀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밥을 먹이기 힘든 집들이 많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한결 나아졌지만 관습은 남아 집에 잠시 방문한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과거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겪어서 일까 집에 놀러 온 자녀의 친구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너희 집에 먹을 것 같으니 여기서 미리 먹고 가렴’이라고 다른 가정의 경제적 능력을 폄하하는 뉘앙스를 줄 수 있기에 밥을 주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지나친 배려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알레르기, 식사습관, 다이어트,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학교에는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학교에서 모든 종류의 견과류를 섭취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이런 안내를 받은 적이 없는데 스웨덴에서는 견과류는 물론이요, 글루틴, 유제품을 소화하지 못하는 이들이나 채식 등의 다양한 식습관을 이들을 모두 배려하는 것이 일상적인지라 서로의 식습관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초대를 한다거나 초대받는 상황에선 서로의 식습관을 미리 물어보곤 한다. 아마도 집으로 놀러 온 자녀의 친구에게 쉽사리 밥을 주지 못한 이유 중엔 이런 부분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가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가정에서 자라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 고기만을 먹는다거나, 유제품을 못 먹는다거나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


예상치 못한 방문엔 준비가 안 돼있을 뿐이에요

 스웨덴 게이트가 이슈가 되고서 스웨덴 방송에서도 이를 다루는 방송을 많이 했다. 스웨덴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다른 문화권에서 아주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짐이 이들도 신기했나 보다. 로따 룬드그리엔이라는 요리책 작가이자 방송인은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방문에 저녁 음식이 넉넉하지 않을 뿐이라며, 스웨덴 사람들은 사람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그릴도 준비하고 레시피도 배우며 초대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언급했듯이 피카 문화가 있다는 것 역시 빼놓지 않고 말하며.

출처: 스웨덴 국영방송 SVT



개인주의가 익숙한 사람들

 한국의 집단주의에 치를 떨어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를 동경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한국의 집단주의도, 서양의 개인주의도 정답도 오답도 아니라는 것이 해외살이가 가져다준 깨달음이다.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이 다큐 한편을 시청해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싱글 가구의 수가 유난히 많은 나라,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는 스웨덴의 싱글 여성들, 고독사가 많은 스웨덴, 이들의 사고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시청하기 좋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바로 The Swedish Theory of love (유튜브 유료 다큐: 클릭)


 작정하고 손님을 초대한 게 아닌 이상, 가족중심의 식사문화를 더욱 중요시하는 이유는 스웨덴 사람들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이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 어찌 보면 개인주의에 더해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아 더 그런 게 아닐까 싶기까지 한데, 기억을 떠올려보면 히치하이킹을 하는 게 스웨덴만큼 힘들었던 나라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던 수많은 스웨덴의 운전자들.. 본인들의 집으로 초대해 재워주고 밥을 주던 호주 사람들과 참 많이 달랐다.


All the authentic human relationships have to be based on the fundamental independence between people. | 출처 The swedish theory of love


출처: imdb.com



스웨덴에도 밥 주는 사람들은 있어요

 내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상대방이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초대를 해주어 방문하게 되면 푸짐하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다 오곤 했다. 같이 저녁밥 해 먹자, 하고 만나게 되면 식재료 장 본 것을 50:50으로 나누어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식사 시간이 아닌데 잠깐 방문해서 밥 먹고 가겠다는 생각은 나로서도 기대한 적이 없어 스웨덴 사람들의 마인드셋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100점짜리 문화는 없으니까

 친구네 놀러 가면 밥 잘 주는 한국의 공동체 문화는 좋아도, 일 끝나고 오래간만에 술 한잔하자고, 회식을 제안하는 상사는 싫다거나, 워라밸이 좋아 눈치 안 보고 칼퇴할 수 있는 스웨덴은 좋은데, 밥 줄 생각 안 하는 스웨덴의 문화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아마 우리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세상 어딜 가도 100점짜리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에, 헐뜯고 싶지도 않고 스웨덴 사람들 쉴드를 쳐줄 생각도 없다. 참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아닌가 싶다. 한동안 스웨덴 사람들 만나면 한 번씩 생각을 들어보고 싶긴 하다. 어깨 한번 으쓱하고 웃어 넘기기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커버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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