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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비 Aug 29. 2021

임용 준비할 때 이것만은 피해라

선배들은 말했지


임용을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다른 건 제쳐두고 시험에만 올인해!
직장 다니면서 합격하겠다는 건 미친 짓이야.



교사 임용을 준비할 때 주위에서 곧잘 하던 말. 특히 회사 경험이 있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고 했다. 안 그래도 박한 TO에 죽을 둥 말 둥 시험만 파도 붙을까 말까인데 생계까지 더해진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라며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직장과 병행하다 시험을 접게 되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졸업 후 2년이라는 시간을 썼고 그 기회를 잡지 못한 건 나였다.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가는데 말이 좋아 고시생이지 결국 백수에 불과했다. 믿어준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도 한몫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교사에 대한 꿈을 완전히 내려놓진 못해 적정선에서 타협을 봤다. 그래, 영양교사 일을 구하자!




그날부로 교육청 홈페이지와 관련 사이트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 눈을 돌린 곳은 사립학교의 정교사 채용이었다. 교육에 대한 뜻이 확고해서 영양사보다 영양교사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공고는 대부분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 혹은 수업시연, 3차 임원면접 순이었다. 남들은 대학 4학년 때 뛰어드는 취업전선을 이제야 맛보는 기분이었다.



1차와 2차는 대체로 통과했다. 3차 최종 합격이 주어지지 않아 원서만 수십 군데를 제출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난, 혹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생겼다. 각기 다른 시험장에서 반복해서 만나는 통에 서로 얼굴을 트고 번호교환까지 하는 지원자 동기가 생기는가 하면, 채용공고는 보여주기 식 절차에 불과했을 뿐 내정자가 정해져 있던 학교도 있었다. 열심히 쓴 원서를 들고 2차 시험장에 갔더니 새 종이를 주며 이력서의 모든 내용을 한문으로 적어 제출하라던 곳도 있었다. 당시 면접자들 모두 소위 '멘붕'에 빠졌으나 '모르면 검색해서 작성해도 된다'는 말에 다들 열심히 스마트폰을 검색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유일하게 일반폰이던 나는 한 문장 내에서도 한글과 한문이 공존하는 끔찍한 이력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과정은 둘째치고 줄줄이 고배를 마셨기에 국공립 기간제 영양교사와 일반 기업체의 영양사 자리까지 서류를 냈다. 기간제는 다들 경력자만 찾았다. 일반 회사에서는 졸업 후 2년간 뭘 했느냐 물었다. 임용을 준비했다고 하자 그럼 이젠 교사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접은 거냐, 시험을 또 볼 계획이 있느냐 물었다.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기엔 아직은 순수했다.




결국 다 떨어졌다. 채용 시즌이 끝나니 더는 공고도 올라오지 않았다.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 노트를 꺼내 들었다. 현재 나의 상황, 문제점, 가고자 하는 방향, 경우의 수 등 복잡다단한 머리를 쏟아냈다. 그리고 최종 선택에 다다랐다. 다시 한번 마지막 임고생 기차에 올라타기로 했다.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가다가 사고는 나지 않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가장 지독했던 1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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