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A 제철이 A 건설회사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자, 직속 상사는 남편을 그 회사로 옮기도록 조치하였다. 회사를 옮긴 후 관리직으로써 착실하게 업무를 했지만, 그는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진급 시에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셔서 괴로워했고, 명예퇴직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 말이 나올 때마다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괴로워하거나 자면서 분노에 찬 욕을 하거나 잠꼬대하는 걸로 봐서 짐작이 갔다.
정년퇴직 7년 전, 비리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담당 임원의 미움을 받아 남편은 현장부서로 좌천되었다. 고통을 겪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불안해졌다.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남편을 보며 뭔가를 시작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 작은딸이 고2 되던 해에 새로운 직업 전선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굳히고, 전공 살려서 기간제 보건교사를 시작하였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열심히 즐겁게 일하다 육아 때문에 일을 접었었기에, 교원자격증이 있어서 초등학교 보건교사 일은 바로 할 수가 있었다.
자주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골절 등 크게 다친 아이들은 신속하게 응급처치해서 병원으로 후송도 했다. 가끔은 응급상황으로 119 구급대를 부를 때도 있어서 늘 긴장된 삶이었으나 아이들을 좋아했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즐겁고 보람 있게 느껴졌다. 생활에 조금 보탬을 주고 남편의 처진 어깨를 받쳐주고자 시작한 일이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직업 전선에 뛰어든 지 1년쯤 되었을 때, 퇴근 시간쯤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팀장이 후배를 차장 승진시키고 자기는 물먹었단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침울한 목소리에서 그의 비참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말문이 막혔으나 나보다 본인은 얼마나 더 비참할까 생각하고, " 당신 좋아하는 쭈낙찜 해 놓을 테니 일찍 들어와 집에서 한잔하자"라고 했다. 그날은 후배들의 진급 축하 회식이 있어서 더러워도 참석해야 하니 내일 하자고 힘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다음 날부터 와인 잔치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애주가이다. 모든 술은 다 마실 줄 알고 좋아하지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를 위해 매일 와인을 한 병씩 땄다. 난 소주나 막걸리는 못 마시고 와인이나 코냑은 한잔한다. 나에게 한 잔을 따라주고서 나머지는 다 그의 몫이다. 억울하고 기분 나빠서 한잔, 짜증이 나서 한잔, 속상하고 괴로워서, 세상살이 더러워서, 미운 놈들이 많아서 또 한잔…, 그리고 우리 이쁜 딸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착실하게 살아 줘서 기분 좋아 한잔.
그래도 집에 와서 한잔 하며 화를 푸는 그와 기분을 맞추는 것이, 밖에서 늦게까지 술 마시고 휘청거리며 괴롭게 들어오는 그를 맞이하는 것보다 훨씬 안심되고,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고 북돋아 주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한참 아래 후배가 차장으로 승진하고 본인은 떨어진 날, 너무나 괴롭고 속상해서 속이 뒤틀려 화장실로 달려가 모두 토해내고, 옷 입은 채로 변기에 걸터앉아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 죽여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 가슴도 찢어지듯 괴로움이 밀려들었다.
남편과 한잔한 후에는 소화도 시키고 바람도 쐴 겸, 집 뒤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또 많은 얘기들을 나눈다. 예전에 데이트할 때나 신혼 때부터 나는 남편에게 친구가 되어주마고 약속했었다. 친구, 애인, 아내도 되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말동무가 되며 인생 여정을 함께하자고 했다.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꼬였던 마음도 풀리고,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분리수거하는 날 친근한 경비아저씨가 “댁에서 와인 장사하세요? 웬 와인병이 그리도 많아요?” 웃으며 농담하신다. 남편이 힘들고 괴로워했을 때, 일주일에 여섯 병 이상 와인을 땄던 것 같다.
한 달 뒤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자제하자 하고 조금 덜 마시기는 했지만, 적당한 가격의 좋은 와인을 사고, 안주를 준비하고 함께 마시며 보냈던 그 시절이 참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으나 비리와 손잡지 않고 너무 뻣뻣하게 나간다는 이유로 남편은 근무부서에서 외면당하고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 퇴직하기 3~4년 전에는 팀장에서 팀원으로 하향시켜서 후배 밑으로 발령을 내고, 자리 배치도 입구 쪽으로 하여 굴욕감을 느껴서 스스로 사표를 내도록 유도하는 악의적인 행태를 부리며 더 힘들게 했다. 남편은 양복 안주머니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며 기회를 엿보았는데, 작은딸이 원하는 명문대학교에 합격하자 사직서를 과감히 찢어버리고, 끝까지 참고 버텨내어 결국 부장으로 정년퇴직까지 하게 되었다. 쓰라린 고통을 인내하며 한 직장에서 30년을 견뎌준 남편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퇴직 후 3~4년이 지난 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천문학적인 부정한 돈이 개입된 비리가 밝혀져 임원들을 포함하여 대표가 검찰에 소환되고 많은 사람이 구속되었다. 남편이 근무 중 비리 세력과 손을 잡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했다면, 그들과 같은 꼴이 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순간 아찔하다.
정년퇴직 후 떳떳하고 여유로운 맘으로 함께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하면서 건강한 생활을 하는 남편이 오히려 존경스럽다. 때로는 좀 답답하다 느꼈던 남편의 처신이 고맙게 느껴지고, 괴로움의 절정을 달리던 시절에 함께 마시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그 와인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오늘은 저녁 산책 후에 맛난 치즈와 호두 피칸 파이를 준비해서 와인도 한잔 하며 추억을 되새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