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고픈 친구 다섯이서 뭉쳤다. 친구딸 결혼식장에서 몇 명은 보고 , 못 본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다섯이서 다 보기는 한참만이다. 언제 봐도 부담 없고 편안한 친구, 마치 친 자매와도 같은 친구들이다.
병희, 동숙, 양자, 선옥과 나, 모두 간호 대학 동창이고 실습동기생이다. 학생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으니 그 연이 짧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나 실습으로 바쁘고 괴로울 때도 함께 부대끼고 위로하며 고락을 함께 해 온 친구들이라 더 끈끈한 정으로 매듭지어 있다. 동숙과 양자는 아직 현직에 있고, 셋은 은퇴 후 이제 막 인생 제2막을 열어 각자 나름대로 고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착실하고 긍정적이며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사명감 또한 투철한 대한의 딸들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병희 집이 마곡나루에 있어서 이번엔 마곡나루에서 모이게 되었다. 병희는 버릴 것 없는 유능하고 능력 있는 친구인데 본의 아니게 아직 싱글로 살고 있다. 신촌 Y대병원에서 근무할 당시는 물 한 방울 안 묻힐 정도로 부모님께서 돌봐주셔서 공주님처럼 다녔었는데, 정년퇴직 후에는 역으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혼자서 모시며 살고 있다. 지금은 부모님의 삼시 세끼를 챙겨드리고 모든 관리를 다 해드려야 하는 장녀이며 세대주 노릇을 톡톡이 하고 있는 친구다.
군인 출신이신 아버님은 모든 일에 반듯하시고 철저하셨었는데, 몇 해 전에 암선고를 받으시고 , 친구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수술 후 항암요법까지 마치셨고, 지금도 계속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계시는 상태다. 이젠 많이 연로하셔서 식사도 제대로 잘 못하시고 씹는 기능이 약해지셔서 무른 음식과 대부분 갈아서 요리한 음식을 드신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팠고, 친구가 고생을 많이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쓰렸다. 그 와중에 두부와 된장국을 안 드신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모두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계란찜은 잘 드셔서 계란찜에 각종 야채를 다 다져 넣어 자주 해드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기특하기도 했고, 갑자기 손주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러 야채를 섞어서 만든 계란찜은 많이 먹어도 콜레스테롤 걱정 없으니 자주 많이 해 드리라고 말해 줬다.
유아식을 먹고 있는 손주도 골고루 썩 잘 먹진 않는데 계란찜은 잘 받아먹어서, 내가 만들 때는 웬만하면 모든 야채를 곱게 다져서 고루 섞어서 정성껏 만들어 먹인다. 잘 받아먹을 땐 기분이 좋은데 한 두 번 먹고 고개를 돌리면 가슴이 아파지기도 한다.뭐든 하나라도 더 영양 있게 먹이려고 노력하는 친구와 내 마음이 오버랩되어 맘이 짠했다.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잘 보살피며 그런 와중에도 여기저기 여행도 시켜드리고 혼신을 다하는 친구가 너무 기특해 보였다. 오 남매 중에 장녀인 병희친구는 동생들은 다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사는데 본인만 결혼을 안 했고 조카들에게도 헌신하며 잘 챙기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좋은 사람을 소개해 사귀게끔 하려고 생각은 많이 했는데 그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아 늘 미안한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선옥은 병희네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동창 자녀의 결혼식장에 가거나 무슨 행사가 있거나 모임 땐 꼭 둘이서 같이 다니곤 한다. 우리와 같이 딸을 둘 낳아서 잘 키웠고, 큰딸만 결혼하여 손주를 하나 낳아서 이제 돌 지났다고 한다. 남편도 정년 퇴직하여 지금은 딸네집에 둘이서 출퇴근하면서 손주 봐주러 다닌다고 했다.선옥은 원래 다른 반이었고, 우리 실습팀은 아니었는데 병희와 늘 같이 다니고, 이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인데 그냥 우리 모임에 끼워 앞으로 늘 함께 하기로 했다.
양자는 아들 둘 낳아서 작은 아들까지 직장 다니고 있고, 큰아들만 결혼하여 예쁜 손녀 낳아서 하나만 키우고 있다고 한다. 아직 초등 보건교사로 근무 중이다. 성격도 좋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열심히 하기 때문에 무난히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어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동숙도 아들만 둘인데, 결혼이 좀 늦어져서 작은 아들이 아직 20대다.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해서 손주들 돌봐주시던 시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이젠 네 식구만 알콩달콩 사는데, 수원 SB병원에서 오래 근무하고 퇴직 후, 지난해 12월까지 요양병원에 임시직으로 다녔고, 1월부터는 보건소에 다시 들어가 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라 한다. 모두들 생활력이 대단하다.
먼 데서 온 친구들도 있고 아침 일찍 서둘러서 오느라 배도 고플 것 같아 먼저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병희네 가족들이 가끔 즐겨 간다는 '선식당'으로 갔다. 1인 1 메뉴를 주문해야 하지만 양은 엄청 많아서 다 못 먹으면 남은 음식은 포장해 간다고 했다. 우리는 '날치알새우철판볶음', '스파이시양지쌀국수', '꿔바로우, 봉골레쉬림파스타', '그릴스테이크샐러드'를 시켜서 엄청 배부르고 만족하게 골고루 나눠서 맛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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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담소하며 식사를 하고 나와서 카페를 가기 전에 병희가 맛 좋은 빵을 사야 한다고 'TARDEMAH' Bakery에들르자고 했다. 온라인으로 예약 주문하고 찾는 서비스로 운영 중인데, 줄이 한참 길게 서 있었다. 예약주문자가 다 가져간 후에야 일반으로 사는 사람이 빵을 살 수 있다고하며, 줄을 섰지만 빵이 다 떨어지면 그땐 안 판다고 했다. 여기저기 빵공장 분점도 내고,완전 기업형식의 빵가게였다.
병희는 6개의 비닐 쇼핑백에 소금빵을 담아서 가져와 하나는 근처에 사는 동생네 것, 나머지 5개는 각자 우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집에 가서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이쁘고 고마울 수가! 덕분에 저녁은 남편과 함께 맛있는 소금빵과 커피, 양송이버섯수프를 데워서 지중해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는 오리털파카를 입고 다녔었는데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 완연한 봄날씨 같았다. 초경량롱베스트가 있었지만 아직은 감기 조심해야 해서 코트를 입고 갔는데, 친구들은 모두 경량 파카를 입고 있었다.
근처에 서울식물원이 있어서 마을버스로 세정거장만 타고 갔고 , 걸어서 식물원까지 갔다. 햇빛은 따스하고 아직 나무나 싹들은 나오지 않았지만 곧 움이 틀 것만 같은 기운이 넘실댔다. 각종 튤립과 갖가지 목련나무, 우리나라꽃 무궁화도 다양한 종류로 꽃이 피면 볼거리가 좋다고 했다. 싹이 나고 꽃 만발한 날 다시 한번 식물원을 들러보고 싶어졌다.
주말이어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곳은 스쿠터나 자전거는 탈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대체로 평온한 느낌이었고, 걷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느긋하게 노닐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씨앗 도서관도 있어서 다양한 씨앗들과 각종 열매와 종자들의 눈요기도 볼만했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친구들과 맛있게 식사하고 마음껏 수다도 떨고, 속마음도 좀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곧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돌아오는 길은 설렘에 밤잠이 부족했던 피로도 크게 못 느끼게 했다. 한껏 즐거운 소풍을 다녀온 초등생처럼 밤까지도 충만함이 풍성하게 채워져 들뜬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