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드디어 사망을 했다. 2010년도에 송도에 이사 오면서부터 썼으니까 사용한 지는 13년째 되어간다.
예전에는 더 오래 썼던 것 같은데...
입주 때부터 빌트인 된 냉장고라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막상 냉동 냉장 기능이 안 되니 황망해졌다.
사실은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사고 싶었었다.
빌트인 김치냉장고가 있기는 하지만 좀 작은 듯하여 조금 더 넉넉한 걸 사고 싶었다.
김장김치도 좀 더 넉넉하게 담가서, 맛나게 보관하여 딸들과도 풍족하게 나눠먹고 싶은 마음이 크리라.
그런데 냉장고가 더 빨리 고장이 나는 바람에 여분의 냉장고가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빌트인이라 폭이 좁고 용량이 적어서 하나로는 역부족이다. 손주도 둘이나 생겼는데 활용도 면에서는 냉장고를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냉장고를 새로 주문했다.
빌트인은 600~ 900만 원은 비용지출이 돼야 하므로 빌트인을 철거하고 일반 냉장고를 사서 그 자리에 넣기로 했다. 다소 인테리어상에는 덜 이쁘겠지만, 이제는 절약모드로 살아야겠기에 일반으로 결정을 했다.
요즘 우리 부부는 주로 손주 보느라 딸 집에 있는 날이 많기도 하고 , 무얼로 정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며칠 손을 못 대고 있으니까,대상포진으로 우리 집에 피신해서 치료 중인 딸이 대신 알아봐 주고 이것저것 따져서 주문해 줬다.
오늘은 냉장고가 오는 날이다. 오전 8시경에 일찍 올 수도 있다고 하여 어젯밤에 딸 집에서 육퇴하고 와서 잠시 쉬다가,냉장고와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던 물건들을 다 빼내고 대충 청소하고 정리하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어 있었다.
아침에 일찍 배달 설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연락 준다더니, 8시쯤 전화 와서는 아무래도 오늘 배달 물량이 너무 많아서 오후 서너 시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좀 빠르게 진행하여 가능한 한 조금 빠른 시간에 설치해 주겠다고 기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빌트인을 철거하고 구형을 가져가고 , 새로 설치하고 하는 문제로 판매자와 물류센터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맞아 이리저리 전화해서 알아보고 확인하고 하는 문제가 얽혀 있었는데, 딸이 다 알아보고 전화해 보고 연결 지어해 주니 고맙기도 했다. 아기만 보다 보니 이젠 그렇게 골 아픈 일들이 하기 싫다는 생각이 솔곳이 스며드는 자신을 보면서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벌써 늙는 것인가 하는 회한의 생각이 들었지만 몸도 피곤하고 좀 귀찮기도 했는데 아픈 딸이 좀 회복되어 옆에서 처리해 주니 역시 자식 낳아 기른 보람이 있구나... 하는 뿌듯함도 있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살기 마련인가 보다.
사람이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 낳고 키우고 출가시키고 , 또 그 자식이 자식을 낳고 기르고 키우며, 서로 힘들 때는 돕고 도와주면서 둥글둥글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나이 들어 직장도 은퇴하고, 이제 시작하는 자식들은 아이 낳고 직장 일에 육아에 살림에 너무 바쁠 때 또 우리가 투입되어 사랑으로 손주를 돌보고, 연봉이 센 자식들은 돈을 벌고, 우리는 건강이 허락되는 대로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 그것이 돌고 도는 인생의 쳇바퀴가 아닐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다. 사랑을 줄 수 있을 때 듬뿍 쏟아주고 싶다. 내 손으로 뭔가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끼지 말고 성심껏 해주고 싶다. 그래서 아기 돌보며 짬 내서 하기가 쉽진 않지만 가끔 반찬이라도 하나 더 만들고, 찌개나 국 같은 음식도 만들어 같이 저녁을 먹으며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그들과 즐겁게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냉장고가 도착하려면 몇 시간 안 남았다. 제품에 하자 없고 좋은 제품으로 우리에게 와서 또 우리와 한 십 년 이상 유용하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가전제품 연구자들도 10년 이상 쓰면 자연 고장 나게 만드는 것, 그게 연구의 핵심 포인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이 지나가면 어느 물건이든 돈이 들어가게 되고 결국은 교체하지 않으면 못쓰게 만드는 것 같다. 독일의 제품들이 너무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10년 이상 써도 끄떡없고 오래오래 쓰다 보니 회사가 망했다는 말도 일리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절약해서 오래 쓰려는 사람들을 위해전자부품들의 생산 기한을 좀 더 길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교체할 부속 제품이 단종되어 없다고 해버리면 끝이니, 순간 사람이 당혹스럽고, 큰 덩어리의 목돈이 빠져나가야 하니 뜨악해지기도 한다. 제품회사는 서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순수하게 절약해서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의 지갑도 그들이 염두에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PS: 제품 주문할 때, 물류센터에 미리 빌트인 냉장고 철거를 요청하면 같은 브랜드 제품이면 무료로 철거 후, 새 제품을 설치해 주고, 철거된 구제품은 수거해 간다.